국제유통정보의 위력..국가나 기업 운명 좌우
세계 각국, 한반도 뉴스 아직도 서방에 의존
정보식민지로 전락한 한국.."특파원 더 늘려!"
알자지라 같은 '아시아의 CNN' 한국서 나와야
(서울=연합뉴스) 권영석 이정진 기자 =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한미 양국이 서해 상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한 첫날인 지난해 11월28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24시간 보도채널인 CNN은 북한이 남한 전투기에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터무니없는 오보를 전 세계에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이에 앞서 CNN은 그 전날도 서울 국방부 앞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소화기를 분사한 것을 두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있다"며 "서울 거리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정세의 과도기 때마다 터져 나오는 외신들의 오보나 과장보도는 자칫하면 한반도를 전쟁의 나락으로 몰고 갈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서구 강대국의 거대 미디어들이 국제사회에 유통시킨 뉴스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가 항복을 선언한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97년 12월3일 공식화된 IMF 경제위기 때다.
IMF 경제위기는 1997년 11월 초 미국의 경제전문통신사가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곧 원화 환율이 폭등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비롯됐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가들은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한 달러화를 일제히 회수하기 시작했으며 AFP 통신은 11월 말 "한국이 IMF 응급실에 입원할 1순위 환자"라고 보도했다.
국제정보유통시장의 '원자탄' 공격을 받은 우리나라는 결국 수많은 회사들이 부도를 맞고 온 국민이 대량해고 등으로 고통을 겪으며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빼앗겨야만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국제정보유통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면서 "우리가 정보주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또다시 국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한국발 국제뉴스 서방 언론이 좌우
그러나 IMF 금융위기 발발 14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각국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관련한 한반도 뉴스를 우리 언론이 아닌 서방 선진국의 미디어들을 통해 접하고 있다.
왜냐하면 CNN, BBC 등 글로벌 보도채널과 AP, 로이터, AFP, 블룸버그 등 거대 통신사들이 국제정보유통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외신기자클럽에 등록된 외신기자는 총 98개 매체에 250여명으로,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외교통상부 임정택 외신과장은 "외신에서 다뤄지는 한국관련 내용은 대부분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뉴스"라며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외신기자를 상대로 간담회를 열려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말했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전후로 한국의 경제발전 등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이 외신에 실리기도 했지만, 연평도 도발이 터지면서 오래가지 못했다.
강대국 특파원들은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파견국의 자본을 빼앗아오고 시장개척의 첨병으로 활약하는 이른바 '공수부대 특수요원'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과거 16세기 식민지 쟁탈시대 원주민들의 가치관을 뜯어고치며 시장 개척에 앞장선 탐험가와 선교사들의 역할을 근대 이후에는 강대국 특파원들이 이어받았다는 것이 외국 학자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강대국 특파원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정보주권을 지키고 한국의 목소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언론 매체를 집중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서방 미디어의 일방적이고 편향된 보도행태를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한국의 우수한 면을 해외에 알리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서방 언론 의존도 2위
한국발 뉴스가 서방 강대국의 시각으로 해외에 전파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국제뉴스도 서방 강대국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강대국 언론이 생산한 정보가 일방적으로 주입되고 수입된 정보가 선진국의 시각과 이데올로기를 내포하며 이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배한다면 우리나라는 정보 식민지나 다름없다.
김성해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이 지난해 8월16일부터 2주간 한국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7개국의 대표적 신문 2종의 인터넷 홈페이지 국제면을 분석한 결과, 한국 신문이 해외언론 의존도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총 288건의 국제기사 중 74.3%인 214건을 외국 거대 통신사나 해외 언론을 단순히 인용하거나 번역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는 조사대상인 7개국 중 중국(76.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영국(6.3%), 미국(32%), 일본(35.8%) 등의 나라에 비해서는 훨씬 높았다.
김성해 위원은 "미국과 영국의 시각에서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안이 그들의 시각으로 해석돼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의 국가이익과 관련된 국제사회 현안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국제정보 파악의 신속성 여부에 따라 기업과 국가의 흥망이 좌우된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우리 특파원들이 선진국 언론을 베끼지 말고 전 세계를 누비며 뉴스를 취재하면 국가위기를 막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국제정보 쟁탈전에서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으며 경쟁력을 키울 의지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한국 언론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특파원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비용 때문에 상업언론으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며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시아 대표 보도채널 만들어야"
미국 플로리다에서 유학 중인 임성진(36) 씨는 지난 연말 한국을 찾으려고 항공편 예약까지 마쳤지만 머뭇거렸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문에 불안해서였다.
CNN 방송에서는 마치 한반도에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연일 속보를 내보내고 주위의 미국인 친구들도 "전쟁 중인 한국에 뭐하러 들어가느냐"며 만류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쳐 남북 대치상황에 익숙한 그였지만 "북한의 국지도발이 있었을 뿐 전쟁은 아니다"라고 주위에 설명하면서도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임씨는 "한국의 가족들이 '아무 일 없을 테니 예정대로 들어오라'고 해 한국에 들어왔다"면서 "한국의 분위기는 미국 언론에서 보고 듣는 것과는 온도 차가 심했다"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에 연구교수로 가 있는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업방송들은 연평도 도발을 흥미 위주로 다룬다"면서 "한국의 상황이 상당히 불안하게, 또 과장되게 인식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따라서 "한국의 실제 여론과 사회 분위기를 정확하게 세계에 알릴 통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방 보도채널들은 또 중국 문제를 보도할 때도 티베트 분리독립요구 시위를 집중 취재하며 중국의 국가 분열을 부추기고 일본에 대해서는 경제가 와해될 것이라는 식의 보도 성향을 보이고 있다.
언론 전문가들은 따라서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는 아시아 대표 뉴스채널의 탄생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그러나 중국의 경우 선전, 선동의 의도가 너무 강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아시아 각국의 거부감이 큰 만큼 아시아를 대표하는 보도채널은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yskwon@yna.co.kr
transil@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1/03 07: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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