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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부시 면담, 약일까 독일까(오마이뉴스)

말글 2007. 9. 28. 21:49
이명박-부시 면담, 약일까 독일까
야당 대선후보로서는 처음... 미국의 '대선개입' 논란 부를 수도
손병관 (patrick21)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 이종호
이명박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내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한국의 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면담이 성사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28일 "이 후보가 오는 10월 14일부터 17일을 전후로 해서 미국을 방문하고 이 기간 동안 부시 대통령을 공식 면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박 대변인은 "미국 대통령이 10월 중순에 (이 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미국이 이 후보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라며 "차기정부까지 내다본 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나라당 "미국이 이명박 위상 인정한 것"

 

두 사람이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나눌지는 알 수 없으나 남북정상회담 직후 두 사람이 만나는 만큼 정상회담 성과 및 북한 핵과 6자회담, 한미FTA 등 양국과 동북아지역의 현안들이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 측은 8월 당내 후보경선에서 승리한 직후부터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과 다른 나라 야당 대선후보의 공식 접견이 이뤄진 전례가 없다"는 답변을 받자,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와 일레인 차오 노동장관,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 등의 채널을 통해 이번 면담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멜리사 버넷 미국 백악관 의전실장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공문을 받은 뒤 구체적인 방미 일정을 짜는 데 착수했다.

 

그러나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만남이 이뤄지면 '미국의 한국 대선 개입'이라는 해묵은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주자들이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 D.C의 정·관계 요인들을 만나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대선주자들의 입장에서는 세 과시를 위해 '워싱턴 행'을 마다할 수 없었고, 미국도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관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 위상과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이러한 만남들이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87년 노태우-레이건 면담이 대선후보의 방미 '러시' 불붙여

 

대선주자들의 방미 러시를 결정적으로 부추긴 사건은 1987년 9월14일에 있었던 노태우 민정당 대선후보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면담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의 여당 후보를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자신의 공이라고 내세우지 않는 한 인간의 성취에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심장한 덕담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이 12월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분분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한국에서 정부 및 야당지도자들도 만날 것이고 여야 어느 쪽 정치 지도자라도 앞으로 미국을 방문하면 환영할 것"이라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의 대선개입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1992년에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선이 치러졌는데, 양국의 야당 대선후보였던 김대중과 빌 클린턴의 만남이 눈길을 끌었다. 클린턴은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한달 뒤 한국의 대선에서 김대중은 분루를 삼켜야 했다. 여당의 김영삼 대선후보는 1987년 미국이 노태우 후보를 지나치게 배려한 것이 역효과만 일으켰다는 판단에 따라 방미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는 미국이 한국 대선후보들의 워싱턴 방문을 버거워하게 됐다.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한국의 대선후보를 만나면 편파 시비에 휘말릴 수 있음을 우려한 나머지 한국의 대선후보가 만날 수 있는 최고위급 관리를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스탠리 로스)로 제한한 것이다. 미국이 몸을 사리자 방미 러시도 시들해졌다.

 

이회창은 2002년 미국 갔다가 되레 손해... 이명박은?

 

2002년 대선에서는 한국의 대선 후보 중 미국 대통령을 만난 사람은 없었지만, 방미에 대한 여야 후보들의 엇갈린 태도가 대선 승패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해 1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당내 경선을 하기 전에 미국을 방문해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부시 행정부의 실세를 만나는 '성과'를 올렸다. 반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국내정치용으로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대선에서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로 인해 반미 감정이 고조되자 이회창 후보는 '친미 후보'라는 낙인이 찍혀 득표에서 손해를 입었고 선거에도 졌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면담이 '이명박 대세론'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부시 대통령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정도면 남북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카드가 아니냐"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노태우·이회창의 전례를 되돌아보면, 대선후보의 방미 행보가 반드시 이로운 결과만 가져왔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이 후보가 미국 방문을 통해 국민들이 흡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올지가 주목된다.

2007.09.28 13:31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