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수원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대표공약인 경부운하를 비판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수질관리를 전공하고 있고, 이 글은 첨단환경기술 2007년 11월 호에 게재된 글로 양측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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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운하 정책검증단 참가자들이 '사기 그릇'을 깨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 오마이뉴스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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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의 남산을 파내고 그 자리에 주택단지를 만드는 가칭 '남산프로젝트' 공약을 제안하였다고 가정하자. 우리가 이러한 계획을 검토할 때에 기준은 무엇이고, 이러한 기준들 사이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기술적인 가능성이다. 남산을 파내는 공사는 조선시대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태백산맥에 터널을 뚫고, 새만금 방조제를 막는 토목기술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땅파는 공사에 특별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기준은 경제성이다. 이 경우에는 남산을 파낸 자리에 어떠한 주택을 건설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분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자리에 200평 크기의 단독주택만을 짓는다면 아마도 경제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싸라기 땅값인 남산 자리에 20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면? 여전히 경제성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40층 아파트를 짓는다면? 그래도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 비율이 1을 넘지 못한다면, 아파트 층수를 100층으로 높이면 될 것이다.
남산 파내는 공사에 든 비용과 100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해서 얻는 수입을 비교하면 아마도 경제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공사기간 동안에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도 있을 것이고 남산이 없어지면 시내 교통은 더 편리해질 것이며, 이러한 요소는 모두 편익으로 계산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남산프로젝트에 찬성하겠는가? 대부분의 독자는 반대할 것으로 생각된다. 반대하는 이유는? 남산은 경제성 분석에서 포함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다. 남산의 소나무가 보여주는 의연함은 애국가 2절에서 칭찬하고 있다.
남산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경관적인 가치, 남산의 봉수대가 지닌 역사적인 가치,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 보는 조망 가치, 녹지공원으로서의 가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여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가치 등이 모두 남산이 지닌 가치이다.
남산을 파낸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
이러한 모든 가치를 환경가치, 또는 환경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산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계획할 때에 우리는 경제성 외에 환경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발사업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서 잘 살기 위해 추진하자고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른바 개발만능시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경부고속도로(1968~1970)를 건설할 당시에는 사업의 경제성이 논란의 대상이었지 환경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없었다.
1981년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되어 환경법 상으로는 환경성이 사업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개발사업의 면죄부 정도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환경성 때문에 개발사업을 취소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새만금 사업으로서 1987년 새만금사업을 노태우 후보가 정치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1989년에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는 했지만 매우 형식적이었고 1991년에 방조제 공사가 착공되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 당시 국민의 전반적인 의식이 환경보전보다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고, 따라서 환경성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경제가 점점 발전하면서 환경보전에 대한 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환경성은 점점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시화호 오염 사건은 이미 건설이 끝난 시화 방조제(1987~1994)를 1997년에 일부를 허물고 해수를 유통시켜 시화호의 수질을 개선시킨 사례로서, 국민들은 수질개선이 간척지 개발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공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새만금방조제 건설사업(1991~2006)이 느리게 진행되던 중에, 1999년 방조제 건설을 중단하고 민관공동조사를 통하여 환경성과 경제성 등을 다시 검토하게 된 사건도 국민의 높아진 환경의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과 환경성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엉뚱하게도 전문가가 아닌 법원에 의해 내려졌다. 전문가 집단으로서는 부끄러운 사례였다.
수도권의 홍수조절과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추진하려던 동강댐은 계획단계에서부터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동강댐 계획은 경제성은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환경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심각하다는 이유로 2000년에 정부가 취소를 결정하고 동강유역의 아름다운 생태계는 보전될 수 있었다. 동강댐 계획은 환경성이 경제성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 취소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터널 공사와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공사는 환경성 검토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불교계에서 주도하여 건설을 중단시켰으나, 나중에 법원의 최종 판결로 공사를 재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경우에는 국민 여론이 환경성보다는 경제성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규모 공사가 환경성 검토의 미흡으로 인하여 착공된 이후에 공사가 중단되는 부작용을 낳게 되자 정부에서는 2006년 6월부터 전략환경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전략환경평가 제도는 개발사업이나 중요한 행정계획에 대해서 계획단계에서부터 환경성을 기준으로 삼아 검토하자는 제도로서 나중에 불거지는 환경성 시비 때문에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낭비를 미리 막아보자는 매우 바람직한 제도이다.
경부운하, 대통령 임기 내에 지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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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에 따르면 맑고 수심이 얕은 이런 달천에도 배를 띄워야 한다. |
ⓒ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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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 건설은 낙동강과 남한강을 수심 최소 6m, 강폭 최소 100m로 파고, 터널을 뚫어 소백산맥을 통과하는 장장 5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사업이다. 경부운하는 환경법에 따라 계획 단계에서 전략환경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릴 것이다. 만일 전략환경평가를 거쳐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다면, 이제는 사업자를 정하고 사업자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작성하여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이 쉽게 사업계획에 동의하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환경단체나 지역주민들이 경부운하 사업을 반대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설명회와 공청회가 열리고, 환경단체와 사업자 간에 열띤 공방과 3차에 걸친 지루한 소송이 진행될 것이고 그 사이에 세월은 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경부운하사업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4년 안에 끝낼 수 있는 사업이 결코 아니다. 이명박 후보는 건설회사에서 갈고 닦은 추진력을 발휘하여 청계천 복원사업처럼 1000번 설득하고 밀어붙이면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그가 현행법을 준수한다면 경부운하를 4년 안에 끝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경부운하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이 없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터널 노선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정되지가 않았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서는 3가지 노선을 두고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민의 70%가 운하구간에서 취수를 하고 있는데 경부운하가 완공되면 식수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원스런 답변이 나와 있지 않다. 불의의 선박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대책에 대해서도 뚜렷한 해답을 듣지 못했다. 이명박 후보가 말했듯이 100명의 학자가 10년이나 연구한 사업치고는 너무 준비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다.
이명박 후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에도 모두가 반대했지만 결국은 성공했듯이, 경부운하도 지금은 많은 사람이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호언한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던 시기는 국민 대부분이 굶주리고 도로는 크게 부족했던 시대였다.
경부운하를 논하는 지금은 국민소득 2만불 시대로서 국민의 환경의식 수준이 크게 달라졌음을 이명박 후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더라도 환경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친환경 경부운하'가 허구인 까닭
경부운하가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더라도 16조원이나 들여서 추진할 만한 사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경제성 분석은 찬반 양측이 달리 발표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로서는 어느 측의 주장이 맞는지 헷갈린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비용측면에서 총사업비 16조의 반절에 해당하는 8조원은 모래를 팔아서 충당하는 계획은 환경적 측면에서 무리라는 점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500㎞ 구간에 걸쳐서 강바닥과 강변의 모래를 모두 다 파내었을 때에 예상되는 환경적인 악영향은 재앙 수준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전공이 수질이기 때문에 경부운하가 수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경부운하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경부운하를 건설하면 오히려 수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서는 ▲첫째 오염된 강바닥을 준설하면 수질이 좋아지고 ▲둘째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남한강에서 3억톤, 낙동강에서 7억톤이 하천유지용수로서 확보되므로 희석작용에 의해서 수질이 개선되고 ▲셋째 주운선이 이동하면서 스크류의 회전에 의해서 산소를 불어넣어 주는 효과가 있고 ▲넷째 북한강은 현재 화천댐·소양강댐·춘천댐·의암댐·청평댐 등 계속되는 댐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수질을 측정해 보면 댐이 없는 남한강보다 수질이 좋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시하겠다.
첫째, 준설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1990년과 1993년에, 국립환경연구원에서 1998년에, 환경관리공단에서 1999년에, 팔당호 수질개선을 위한 준설을 검토했으나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다.
보다 최근인 2004년 경기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 역시 준설에 의한 팔당호 수질개선 효과는 미미하며 오히려 오염원 차단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준설은 준설과정에서의 수질오염, 재퇴적 가능성, 준설토 처리의 어려움, 과도한 비용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커서 효율성이 없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둘째, 증가된 하천유지용수에 의해 희석이 되므로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은 상식을 벗어난 궤변이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오염된 물 1톤에 똑같이 오염된 물 2톤을 섞어 3톤으로 수량이 늘어난다면 수질이 달라지는가? 경부운하의 경우 수량은 늘어났으나 갑문에 의해 유속이 느려져서, 이른바 부영양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속이 느려지면 수질이 악화된다는 것은 수질관리에서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비판에 대해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는 물이 고여 있어도 깨끗하다"는 발언과 "백두산 천지는 깨끗하지 않느냐"는 발언은 차라리 못 들은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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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 여주취수장-한강, 낙동강은 남한 인구의 절반 이상의 생명줄로서 강을 따라 취수장과 정수장이 있어 경부운하가 건설될 경우 상수원으로서의 역할은 큰 위협을 받게 된다. |
ⓒ 생태지평 장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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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스크류의 회전에 의한 수질개선은 인정할 수 있다. 시화호에서는 공기를 불어 넣어 성층을 깨고 수질을 개선하는 이른바 폭기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부운하에서 주운선박의 스크류에 의한 수질개선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네째, 북한강의 수질이 왜 좋은가? 북한강의 수질이 남한강에 비해 좋은 것은 연속된 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강 유역에는 인구와 산업시설이 적어서 오염물질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남한강의 수질이 북한강보다 나쁜 것은 상류 유역에 도시가 많고 축산시설과 공장 등이 많기 때문에, 즉 오염물질의 발생량이 많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어차피 물이 부족한데 계곡에 댐을 막아서 수몰지역을 만들 필요 없이 운하를 만들면 10억 톤의 물이 저장되므로 필요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 또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식을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부운하 전 구간에 저장되는 10억 톤의 물은 갈수기에 빼내어 쓸 수 있는 여유분이 아니고 바지선이 운항되기 위해서는 항상 채워 두어야 하는 주운용수로서 일년 내내 꼭 필요한 물이다. 운하가 만들어지면 쓸 수 있는 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라도 물이 추가로 필요하면 상류 다른 곳에 용수공급용 댐을 만드는 수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 필자가 수질 논란과 관련하여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다. 경부운하가 수질을 개선시킨다는 주장이 맞다면 취수장의 이동, 강변여과수의 개발, 인공함양수 등 상수원 대책이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하여 경부운하 찬성논자의 답변을 듣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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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강-경부운하 건설시 제방을 높이 쌓거나, 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지면 인근 마을과 아름다운 자연하천은 사라져 이러한 개발행위는 결국 인간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
ⓒ 생태지평 장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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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를 쉽게 설명하면, 남한강과 낙동강이 흐르는 500㎞ 구간에 19개의 갑문을 건설하여 강을 19개의 저수지로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경부운하 토론회에서 학자들이 고려하지 않거나, 놓치는 부분은 구비쳐 흐르는 강이 가진 환경적인 가치, 문화적인 가치, 역사적인 가치이다. 김소월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경부운하가 생기면 한반도의 생성과 함께 만들어진 강변의 아름다운 금모래는 모두 사라지고 갈대밭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강과 관련된 모든 역사와 문화와 놀이와 추억이 사라지게 된다. 모래밭에서 아이와 함께 더 이상 두꺼비집을 지을 수 없다.
물 속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을 수도 없다. 족대로 붕어를 잡을 수도 없다. 어항을 놓아서 쏘가리를 잡을 수도 없다. 여름에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힐 수도 없다. 겨울에 얼어붙은 강에서 썰매를 탈 수도 없다.
지역주민에게 있어서 강은 특별한 정서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강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누리는 이러한 혜택을 비용편익 분석에서 조금이라도 고려했는가를 묻고 싶다. 우리의 후손에게 오염된 운하를 물려주겠는가, 아름다운 강을 물려주겠는가?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경제성 분석을 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러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경제성 분석도 경제성이 있다, 없다 논쟁만 무성했지 일반인으로서는 논쟁에 사용되는 경제학 용어가 생소하고 어려워서 그 실체를 알기가 어렵다. 경부운하는 돈이 많이 든다는 비판에 대해 이명박 후보는, 정부예산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경제성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현대건설과 삼성건설 등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들로 하여금 경부운하의 경제성을 검토하여 보고서를 내도록 하면 된다. 경부운하가 이익이 나는 사업이라고 보고서를 내는 회사에게 나중에 경부운하 건설사업을 맡기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정말로 정부예산 투입 없이 이익이 남는 사업이라면 서로 덤벼들 것이 아닌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운하는 운하로다
여기에서 성철 스님의 유명한 법어를 인용하려고 한다. '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다. 그러면 운하란 무엇인가? '부피가 크고 값은 싼 물건을 실어 나르는 뱃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운하를 통해 실어나를 수 있는 물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농산물·자동차·텔레비전·컴퓨터 등을 운하로 실어나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화물은 도로를 이용하면 생산지에서 목적지까지 한번에 빠르게 운반할 수가 있다.
운하로 실어나르기에 적당한 물건은 목재·석탄·시멘트·비료·두루마리 화장지·뻥튀기 등이 아닐까? 경부운하를 만들어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실어나를 마땅한 화물이 없다. 부산항에 도착한 화물선의 컨테이너를 운하로 서울까지 운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뱃머리를 돌려 인천항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은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말라는 뜻이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사물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정치라는 색안경을 쓰고 운하를 보지 말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운하를 표로 보지 말고 운하로 보라는 뜻이다. 이명박 후보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운하는 운하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