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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 이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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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공약을 공약이라 부르지 못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해 서러움을 겪어야 하는 현대판 홍길동이 등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제 1공약으로 '적자' 취급을 받았던 한반도 대운하가 지금은 한나라당에서 숨겨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4·9 총선 공약 목록에서 삭제된 것이다. 인수위 시절 '어륀지'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영어몰입교육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운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프로포절(Proposal 계획, 제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뺐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영어몰입교육과 관련해서도 "사교육비 추가부담을 걱정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번 공약에서는 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잠시 소낙비를 피해보자는 속보이는 행태다. 지금은 전황이 불리하니 땅바닥에 코를 박고 납작 엎드리겠다는 심산이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있는 모습도 아니다. 또 한나라당은 지난 5년 내내 참여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얼마나 성토했던가.
우선 '이명박 운하'에 대한 한나라당의 이같은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경제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이 대통령은 "경부운하를 통해 4만불 시대를 열겠다" "경부운하는 물류혁명을 가져올 것이다"라면서 이를 제1공약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제1공약이었던 경부운하를 대선 공약집 구석에 처박아놨다. 대선 기간 내내 승승장구했던 이 대통령의 '얼굴 공약'으로 모든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찬성 여론은 이 대통령 지지율의 반토막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들과 일부 '정치학자'들이 엄청난 지원사격을 했지만, 반대론자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명분과 논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뒤 상황은 180도로 바뀌었다. 인수위에 대운하 TF가 구성되고, 장석효 팀장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 "100% 추진한다"면서 내년 2월 공사착공시기까지 못박았다. 인수위가 나서서 대형 건설업자를 만나 확정되지도 않은 건설공사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됐다. 대형 건설업자들은 컨소시엄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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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대운하 건설을 빙자한 재벌 특혜 제공 중단'을 요구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기밀을 누설한 관련자를 고발한다고 밝혔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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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에 착공하겠다고 호기 부리더니...
하지만 또다시 엄청난 반대여론에 부닥쳤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이 구성되고, 전국의 1500여명의 교수들도 나섰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등 종교인들도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대장정에 나섰다. 법조인들도 대거 나서서 법률검토에 들어갔고, 문화예술인들도 글과 그림, 사진, 노래로 맞서겠다고 천명했다. 조만간 언론인들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운하반대' 목소리가 사회 각계각층으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는 불리한 형국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자 또다시 총선공약에서는 빼겠다고 당론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최대 사업인 '한반도 대운하'를 내년 2월에 착공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이제와서 이를 공약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책임있는 집권여당의 태도가 아니다. 민주화 시대를 연상케할 정도로 사회적 분란을 일으켜 놓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오만이자, 독선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나라당이 여전히 운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두려워 잠시 숨겨놓고, 대선 직후처럼 불도저로 밀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의 땅투기꾼과 개발이익을 노린 건설업자들에게는 '운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 던지면서 표을 얻고, 운하 반대론자들의 눈은 가리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예상컨대 '운하를 숨긴' 집권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대선 직후에 보였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할 게 자명하다. 결국 총선 공약에서 빼겠다는 것은 '이명박 운하'를 기어코 살려야겠다는 역설적인 표현인 셈이다.
총선에서 당당하게 심판받던지, 아니면 '대운하 공약' 폐기하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운하 포기를 선언하라. 손바닥으로 유권자의 눈을 가릴 수 있다는 얄팍한 술수는 포기하라. 그게 그나마 공당의 체면을 살리는 길이다. 운하 공약을 빼겠다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대 목소리가 계속 확산되고 있지 않은가.
정히 운하 건설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총선 공약으로 다시 내걸어 진검승부를 벌여라. '경제대통령'이라고 자임하는 이 대통령의 성과주의적 단기 경기부양 효과에 대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를 '친환경 운하'라고 그토록 강조해왔는 데, 막상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 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일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공약을 공약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작금의 '정치 황당극'을 당장 끝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운하'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 게 정도다. 만약 유권자의 심판이 두려워 총선 공약으로 내걸지 못한다면 운하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한다. 어정쩡한 '같기도'식의 태도는 나중에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