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글

"상품강매식 단기 선교는 해외관광일 뿐"(오마이뉴스)

말글 2007. 8. 30. 14:20
"상품강매식 단기 선교는 해외관광일 뿐"
[좌담] 신앙인들의 눈에 비친 아프간 피랍 사태
텍스트만보기    안윤학(sunskidd) 기자   
▲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봉사단원들. 이 중 김경자·김지나씨는 석방됐으며, 배형규·심성민씨는 피살됐다.
ⓒ 오마이뉴스
"선교란 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훌륭한 인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의 종교는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품게 한 뒤 자연스럽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교다. 존경받는 삶 자체가 훌륭한 선교다." (모명숙씨)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들이 하나둘 석방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 서울 신촌의 한 술집에서는 선교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톨릭·개신교도와 비기독교인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선교'.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의 핵심어 중 하나다. 분당샘물교회 청년들이 '봉사활동'을 했는지, '선교활동'에 나섰던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누리꾼들은 기독교 선교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번에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분위기다.

기독교인에게 선교란 무엇일까? 다른 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종교인들은 이번 피랍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29일 밤 '신앙인 아카데미' 운영위원들을 만났다. 기자를 포함해 8명이 2시간 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신앙인 아카데미는 기독교·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종교 간 대화를 목적으로 1998년에 설립한 종교·신학 교육단체다.

기독교인 "피랍자 선교활동 혹독하게 비판해야"

▲ 29일 밤 서울 신촌의 한 술집에서 신앙인 아카데미 운영위원들이 모여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날 이야기의 초점은 단기선교, 공격적 선교 방식이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신앙인 아카데미 운영위원들에게 '이번 피랍사태를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은 "19명의 피랍자들이 살아 돌아온 것은 천만다행"이라면서도 "피랍자들의 행동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간 한국 기독교계가 벌여온 공격적인 선교 방식이 결국 사건을 일으켰다"는 분석이었다. 모명숙씨의 말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이 벌이는 선교에는 '내 종교가 더 낫다'는 우월주의가 배어있어요. 타인을 개종시키겠다는 오만한 생각이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오히려 '테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자기 성숙의 영역인데, 이를 마치 상품 강매하듯 강요하는 것은 기독교의 참뜻을 훼손하는 일이에요."

유정원씨가 모씨의 말에 살을 붙였다. 유씨는 현재 폴 니터의 <지저스 앤 아더 네임즈(Jesus and the Other Names), 의역 '예수그리스도와 다른 이름들'>)이란 책을 번역하고 있다.

"선교가 개종만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어요. 영어단어 '컨버전(conversion)'이란 말에는 개종이라는 뜻 외에도 회심·귀의라는 뜻이 있어요. 즉 선교란 타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현재 내가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계기입니다."

선교가 타인을 대상으로 한 활동만은 아니고,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반성하는 게 선교란 말이다. 유씨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고 부연했다.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는 한 제자의 경험을 전했다.

"보수적 기독교관을 지니고 있던 한 제자가 해외 선교활동을 나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다보니 '배울 게 많다'는 얘기를 하더라. 본인이 타인에게 종교를 전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선교라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하더라."

"단기선교는 관광일 뿐"

선교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 선교 자체가 나쁘다는 말들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피랍사태로 불거진 단기선교와 한국 기독교계의 공격적 선교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강창헌씨가 말을 이었다.

"선교는 선전이 아닙니다. 관광이나 농활도 아니죠. 관광을 해도 가려는 지역의 문화를 알아야 하고, 농활을 해도 농촌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하물며 종교를, 짧은 시간에 언어·문화가 다른 곳에서 전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입니다. 자기들만의 진리에 갇힌 것이죠. 선교는 자기 부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강씨의 말을 받은 이선화씨는 '상호 선교'라는 말을 썼다. 이씨는 이 말에 대해 "문화 교류처럼 서로 종교를 나누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박은조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7월 23일 오전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관련해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연스레 한국 선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강씨는 "현재 한국 기독교인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했던 선교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배운 대로 행동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강씨는 "현재 서구에서는 강압적 방식의 선교활동을 벌이지 않는다"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그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은 "선교활동에는 물론 장점도 있다"고 했다. 의료·교육사업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고 차별을 철폐하는 등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씨는 "좋은 사업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자신의 종교가 뛰어나 자선을 베푼다는 의식을 지녀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김지환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한 후배가 인도네시아로 선교활동을 하러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에 못 미치는 나라에 가서 개선의 여지를 준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이번 샘물교회 봉사단의 태도와 무엇이 다릅니까?"

"피랍 재발 방지 위해 책임 물어야"

선교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될 무렵 다시 아프간 피랍사태로 화제를 돌렸다. 기자는 '생명이 종교보다 더 소중한 것 아닌가'하는 우문을 던졌다. 일부 누리꾼들이 "국가적 망신을 시킨 이들을 전원 구속시켜라"는 등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이들은 누리꾼들의 반응에 대체로 공감을 표했다. 먼저 김씨는 "탈레반에 살해당한 2명을 두고 '잘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국민 모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한 일이다"면서 "피랍자들의 선교활동을 비판하는 것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씨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의무"라면서도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분당샘물교회 측에 책임을 묻고 피랍자들을 비판하는 것 또한 국민의 의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김씨는 "그것이 진정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강씨도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도 강씨는 "탈레반의 요구처럼 탈레반 죄수-한국인 인질의 맞교환이 이뤄졌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 생명이 소중하다면 남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말이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나님이 그렇게 옹졸해?"

▲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중에서 생존한 21명의 얼굴사진이 실린 신문을 든 한 시민이 2일 오전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앞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무사귀환과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책은? 모씨는 선교의 개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번 피랍사태와 같은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씨는 "선교란 말 자체를 폐기처분하든지,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든지 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써야 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도 "선교 개념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선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한국 기독교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선교 등 외연확장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국내에서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종교인답지 못한 행동을 했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단기선교는 해외관광이다. 선교는 오랫동안 그 지역의 문화·생활습관 등에 동화된 이후, 또는 동화되는 과정 중에 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의 변화 없이 상품 판매하듯 선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김원호씨가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의 진리를 향해 가면, 타인은 그들 나름의 또다시 진리를 향해 간다.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는 오직 자기 종교만이 유일한 진리인 양 믿고 교육한 우리나라 기독교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옹졸하고 편협하다고 믿지 않는다."
2007-08-30 11:38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