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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교육청 예시문(왼쪽)과 이를 베낀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 |
ⓒ 윤근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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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이름으로 보낸 가정통신문이 알고 보니 교육청의 '작품'이었다.
최근 8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서울지역 초중고 학부형에 일제히 발송됐거나 발송 예정인 촛불시위 관련 가정통신문이 '짝퉁' 논란에 휘말렸다. 일부 교사와 전교조 서울지부는 '대필한 가짜 가정통신문 발송 행위를 중단하라'고 13일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7개교 가정통신문 분석해보니 99% 일치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은 지난 8일 이 지역 초중고에 공문을 보내 교육청이 미리 작성한 예시문에 학교장 이름만 바꿔 가정통신문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A4 용지 1장 분량의 이 예시문 끝 부분에는 '○○○○학교장'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예시문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심야 촛불행사에서 학생의 안전 문제가 가장 우려되고 있다"면서 "심야에는 학생들이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도심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일찍 귀가하도록 가정에서 확인하고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건강 안전'을 보호받기 위해 행동하는 학생들을 겨냥해 '안전 문제'를 들어 참석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청 지시를 받은 서울 ㄱ초·ㅇ중·ㅎ고 등 상당수의 초중고 교장들은 지난 9일부터 일제히 자신의 명의로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기자가 7개 초중고 가정통신문을 입수해 분석해 본 결과 가정통신문 끝 부분에는 학교장 명의를 적었지만 99%의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의 예시문을 그대로 옮겨 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대필해준 셈이다.
지난 9일자로 가정통신문을 보낸 권아무개 교장(서울 ㅇ중)은 "교육청이 문안을 보내줘서 큰 생각 없이 날짜와 교장 명의만 바꿔서 가정통신문을 만들었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서울 ㄱ초 박 아무개 교사는 "교장 선생님이 시위에 가지도 않을 초등학생에게 촛불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교육청이 대필해 준 것"이라고 혀를 찼다.
'밤 11시 심야교습 추진'하더니, 심야 안전 걱정된다고?
서울시교육청의 앞뒤 다른 행동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학교 자율성을 들먹이던 교육당국이 가정통신문까지 대신 써주는 등 학교를 강압하면서 학부모 눈속임에 나섰다"면서 "밤 11시까지 학원교습시간을 연장해주려던 교육청이 이제는 촛불행사의 심야 안전이 걱정된다고 적은 걸 보고 기가 막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최아무개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장학관은 "가정통신문을 그대로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예시문을 참고하라고 했는데 일부 학교가 그대로 보낸 것 같다"면서 '밤 11시 학원 심야교습 추진'에 대해서도 "심야 학습과 심야 집회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집회 후에 일부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통신문에 넣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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