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르포] ‘영원한 우리 땅’…그 섬에 가다 |
‘불끈 솟아 오른 늠름한 태산.’
광복절 63주년을 앞둔 지난 9일 오후 3시 30분. 경북 울릉군 울릉도 도동항에서 2시간여 항해하며 마주한 독도는 명불허전, 듣던 바대로 장엄하고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독도의 거대한 산봉우리 2개, 동도와 서도는 150m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보며 오누이 같은 우애를 보여 줬다. 해발 98.6m의 동도가 부드러운 누이의 자태라면, 해발 168.5m의 ‘뾰족한’ 서도는 강인한 남성의 보호자 인상이었다.
한겨레 호를 타고 길이 80m, 면적 1800㎡의 좁은 동도 선착장에 내린 방문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웅장한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그 아름다움보다도 거친 풍랑을 이겨내며 오랜 세월, 우리의 염원과 역사, 혼을 품고 당당히 서 있는 독도를 밟았다는 자긍심으로 넘실댔다. 방문객들은 10여 명의 독도경비대원과 함께 마중 나온 독도의 마스코트 삽살개 ‘지킴이’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채원(7)·예원(4) 두 딸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펼쳐 들고 기념촬영을 하던 서재도(39·수원시 정자동)·이소영(32) 부부. “최근 일본의 터무니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 때문에 우리 땅 독도를 아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20여 분 만에 역사의 현장인 독도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다시 여객선 한겨레 호에 올랐다.
현재 관광을 위한 일반인의 독도 체류는 20여 분으로 제한돼 있다. 요즈음에는 하루 1000여 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독도를 찾는다. 독도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 바람과 너울이 센 탓에 한 해 배가 독도에 닿을 수 있는 날이 40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 김성도(68) 씨가 서도에서 마중을 나와 있었다. 2005년 국민들이 성금으로 마련해 준 1.58톤 소형 어선 ‘독도호’를 타고 함께 서도로 들어갔다. 그는 제주 해녀 출신 부인 김신열(70) 씨와 함께 독도리 20-2번지에서 살고 있다. ‘캬~아~악~캭~캭~캭’ 괭이갈매기 소리, ‘사~아~악~사~아~악’ 모래자갈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정겹다.
무념무생의 바위섬이 아님을 실감한다. 흰 빛줄기가 검푸른 바다를 비춘다.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국토의 막내라기보다 이 땅을 지키는 첨병이요, 길잡이임을 깨닫는다. 어업인 숙소의 기계실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잠에 빠지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은 진동하는 기름 냄새 때문이 아니라 독도의 의연함이 주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다음날 10일 오전 5시 20분. 검붉은 아침해가 떠 오른다. 동도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아침해는 독도를 밝히고 대한민국을 밝힌다. 우리 땅 독도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2005년부터 독도를 직접 드나들며, 사재를 털어 독도지도 30만 장을 만들어 나눠 주고 있는 ‘동아지도’ 안동립(51) 사장.
서도에서 만난 그는 “독도에는 현재 크고 작은 91개 섬이 흩어져 있으며 나무·물이 공존하며 한국인이 사는 엄연한 우리 땅”이라며 “어찌 이곳이 ‘록(Rock·바위)’이며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지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
다시 동도로 나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15분여를 오르자 산 정상에 독도경비대 청사가 나타났다. 독도경비대에는 현재 4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바로 그 옆으로는 등대가 보였다. 간밤에 빛줄기로 인근 바다를 비춘 그 등대다. 1954년부터 우리 선박들을 독도로 인도해 왔다.
경비대원들의 의지는 굳건했다. 매서운 눈초리는 독도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박주현(21) 수경은 “그 누구도 독도를 넘볼 수 없도록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마침 우리 해군의 해상초계기 P-3C가 독도 상공을 비행하는 가운데 해양탐사선들이 각종 해양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 땅 독도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수호 의지는 한결같고 확고하지만 아직 행동으로 실행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이용진(53·3사14기·예비역 소령) 울릉군 의회 의장이자 재향군인회장은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방파제, 항만시설, 주민 정착 공간이 더욱 확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국민들은 분노의 목소리만 있지 치밀한 연구가 없다. 전문가들 역시 연구는 하지만 따끔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도를 뒤로 한 채 나오면서 어느 독도 전문가의 항변이 가슴 속에 와 닿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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