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의정☆자치행정

"2천명 맞바꾼다"에 연말 지방공직사회 `술렁'(연합)

말글 2009. 12. 30. 20:57

"공직비리의혹 철저수사"
(태백=연합뉴스) 배연호 기자 = 14일 강원도 폐광경실련 회원들이 태백시청 주차장에서 공직비리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2007.5.14
byh@yna.co.kr

취지 공감에 부작용.실효성 지적도 나와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방 공직사회의 비리 사슬을 끊으려는 조처의 하나로 행정안전부가 고강도 비리 근절책을 꺼내 들자 지방 공직사회가 술렁거리고 있다.

   행안부는 30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를 보고하면서 광역-기초단체 간 또는 기초단체 간에 인사, 건축, 세무, 법무 등 이른바 `힘센' 보직의 인사 2천명을 맞바꾸는 인사전보 카드를 공직기강 확립 방안으로 내놓았다.

   행안부는 이를 위해 지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하고 내년 중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잇단 공직비리로 땅에 떨어진 공직사회의 신뢰를 높이려는 정부의 취지에는 일단 공감을 표시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과거에 용인되던 관행이 지금은 범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라며 "정부의 방침에 맞춰 전담반을 구성해 투명한 행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무원을 교육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충남도의 한 사무관도 "정부 방침은 공무원과 토착세력 간 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사람만 바꾼다고 공무원 비리가 근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판단착오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칫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잠재 비리집단으로 국민에게 인식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광주시청 4급 공무원은 "인위적으로 몇 사람 자리를 바꾼다고 해서 부정과 비리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므로 행안부의 방침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며 "더욱이 인사 대상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시민에게 각인돼 해당 공무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시청 5급 공무원 또한 "부정부패는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려 있는 문제로,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개선이 필요하며, 자치단체장의 근절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행안부 방침은 자치단체 공무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을 우려가 있다"라고 가세했다.

   경기도청공무원노조 김용준 위원장 역시 "공직사회 비리근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지방자치단체 간 인사교류를 강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나아가 "'비리 가능성이 있는 공무원' 선정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애매모호할뿐더러 한 자리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자체로 전출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이종철 부산시 행정자치관도 "행안부로부터 지침이 내려오면 시 차원의 후속조처를 마련하겠지만 '공직사회 비리구조 근절차원'이라는 행안부의 설명이 자칫 공직사회를 비리집단으로 몰아가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실효성에 의문표를 붙이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현행법이나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제도상 여건으로 볼 때, 특정부서의 특정 공무원을 무조건 인사조치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청의 한 간부 공무원은 "정부가 지방자치를 침해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옛날 중앙집권 시절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그러면서 "현재의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해당 공무원 자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시.도는 물론 다른 시.군으로도 전보조치가 불가능하며 도지사도 시.군 인사교류를 할 때 권고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라고 꼬집었다.

   경기도의 한 5급 공무원도 "법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자치단체 간 인사교류가 가능했다면 민선 시장.군수들이 선거 당시 자신의 반대편에 섰던 공무원들을 다른 시.군으로 전출시켰지 왜 그냥 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실제로 10여 년 전 양주시장이 비리를 이유로 공무원 한 명을 남양주로 보내려 했으나, 해당 공무원이 동의하지 않은 인사교류는 지방공무원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해 결국 시가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실패했다"라고 설명했다.

   일방통행보다는 지방 공직사회 자체의 뼈를 깎는 자정노력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쏟아졌다.

   화성시 박영식 자치행정과장은 "일정 부분 다른 지자체와의 인사교류는 나쁘지 않다고 보지만, 행안부 계획은 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라면서 "공무원 비리는 인사교류로만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자신의 '마인드' 문제"라고 강조했다.

   경기도청공무원노조 김용준 위원장 역시 "지자체에 따라 필요에 의해 전문성 있는 공무원을 한 자리에 오래 배치하는 때도 있다"라며 "인사교류를 강제하기보다는 지자체별로 비리근절을 위한 더 강력한 대책을 만들어 시행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해영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수원시지부장도 "비리 공무원을 전출시킨다고 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며 잠시 경각심을 주면서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라면서 "지자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북도의 한 3급 공무원도 "정부 방침이 공무원이 연루된 고질적인 토착 비리를 없애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공무원 조직의 자발적인 정화노력이 없으면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신정훈 김경태 전승현 이은파 이강일 기자)
sh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12/30 15:1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