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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경선 때 ‘신종 금권선거’ 판친다 [중앙]

말글 2010. 4. 29. 07:47

정당 경선 때 ‘신종 금권선거’ 판친다 [중앙]

 

2010.04.29 01:28 입력 / 2010.04.29 03:56 수정

 

휴면전화 회선 대량 구입 → 선거 운동원 휴대폰에 착신전환 → 여론조사 조작

 

전북 완주군에는 지난해 12월 30일 현재 휴면(休眠) 상태의 유선전화 회선이 4000여 개였다. 휴면회선은 전화요금을 내지 않는 등의 이유로 결번이 돼 전화번호부에만 올라 있는 걸 말한다. 그런데 얼마 전 민주당에서 완주군수 후보를 뽑기 위해 경선을 하겠다고 하자 4000여 개의 휴면회선은 모두 동이 났다.

이 중 2000개는 한 사람이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역에 사는 A씨(51·민주당원)가 북전주 전화국에서 1680회선을 싹쓸이 했고, 남전주 전화국에서도 320개를 샀다. 그는 3000만원 이상의 거액을 썼다. A씨에게 2000개나 되는 전화번호가 필요했던 이유가 뭘까.



A씨는 경선 후보 B씨의 측근이었다. 민주당 경선 룰은 ‘여론조사(50%)+당원선거인단 투표(50%)’. A씨는 2000개의 전화를 다시 30여 개의 휴대전화에 연결했다. 유선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을 때 휴대전화로 자동 연결이 되는 ‘착신전환’을 한 것이다.

정당의 여론조사는 가정의 일반 유선전화로 하게 돼 있다. 조사는 주로 낮에 하는 경우가 많아 응답률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량으로 휴면회선을 사들여 착신전환을 해 놓으면 경선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 한 명이 여러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수십 번씩 특정인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힐 수도 있다. 여론 조작을 위한 ‘작전’이 가능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전주지검은 A씨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착신전환 경선’은 완주군만의 일이 아니다. 전남도와 광주 광산구, 전남 완도군, 전북 진안군 등 곳곳에서 착신전환 문제로 잡음이 일어났다. 경남 함양군에선 최근 한나라당 경선 여론조사를 앞두고 군청 청사에서 집 전화를 휴대전화로 전환하는 방법이 새겨진 문건이 나돌아 지역선관위가 조사에 나섰다.

수도권의 예비후보들도 착신전환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기도의 기초단체장에 출마한 예비후보는 “조직력이 강한 후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여론조사 전화가 올 것에 대비해 착신전환을 하라’고 독려한다”고 말했다.

착신전환이 공천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전주지검은 완주군에서 A씨가 착신전환한 30여 개의 휴대전화로 150통의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경선에서 군 단위는 700명이 응답할 때까지 여론조사를 한다. 700개의 여론조사 표본 가운데 150개를 A씨가 미는 B씨가 착신전환으로 선점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B씨는 21.4%의 지지율을 확보한 셈이 됐다.

각 정당은 여론조사를 전략공천이나 경선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착신전환으로 왜곡된다면 공천은 정당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전주지검 이석수 차장검사는 “수사를 하다 보니 여론조사 경선에 위험요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당의 경선을 왜곡하는 행위는 유권자에게 기부나 향응을 제공하는 것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