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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박지원, 벌써 '오만'에 빠졌나?(대자보)

말글 2011. 5. 4. 15:04

손학규-박지원, 벌써 '오만'에 빠졌나?(대자보)
"야권연대 합의문? 어제 읽어봤다"‥한나라당과 '한-EU FTA 비준' 합의
취재부
박지원의 오만방자한 독주, 손학규 상승세 '찬물'

민주당이 벌써부터 오만해지고 있다.

4.27 재보선에서 진보정당들과 연대를 통해 대승을 거둔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야권연대의 전제조건이었던 정책 합의문을 파기해 버렸다. 한-EU FTA 처리 문제를 다른 야당과 충분한 상의도 없이 국회에서 비준해주기로 한나라당과 전격 합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 4당은 지난 4월 13일 4.27 재보선 승리를 위해 야권연합 타결을 선언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정책연합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 6조는 "한미-한EU FTA 비준 저지와 전면적 재검토-한미FTA 재협상안 폐기,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 한미-한EU FTA의 독소조항 등에 대한 전면적 검증 실시, 통상절차법 제정,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 조항 신설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 저지"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2일 오후 '여·야·정 한-EU FTA 회의'에서 충분한 검증 절차도 없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말'만 믿고, 4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주기로 전격 합의해 버렸다. 재보선 합의문이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이를 묵살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약속 파기를 주도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권연대 정책 합의문을 어제서야 봤다"고 말해 진보진영을 더욱 경악케 했다. 애초부터 정책 따위엔 관심없고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정당들을 이용만 했다고 자인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3일 한-EU FTA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야권연대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을 어제서야 봤다"며 "물론 어제서야 본 것은 내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의원총회에서 이런 논의가 구체적으로 없었고, 최고위에서도 있었는가 하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박 원내대표가 정부 여당과 합의하기 전인 2일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은 "4.13 야권연대 합의문에 명백히 한-EU FTA 저지, 전면적 재검토가 명시돼 있다"며 "비준을 전제로 한 논의는 야권연대 합의 정신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손학규 대표도 '정부의 말'만 믿고 동의

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야권연대 정책 합의문 내용은 굉장히 좋은 것"이라면서도 "되면 되는데 어려운 것도 있다"며 합의문대로 실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 민주당은 서생적 문제의식도 가져야 하지만 현실적 상인 감각도 가져야 한다"며 "국익 차원에서 한-EU FTA는 국민의 70~80%가 지지하고 있고, 한미FTA와 달리 훨씬 이익이 많기 때문에 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 소신이었다"고 강변했다. 마치 자신의 개인적 소신이 옳기 때문에 야권연대 합의문은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었다.

그는 3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좋은 협상이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FTA는 정부 차원을 떠나 국가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국회가 협력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익 차원에서 모든 것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전형적인 한나라당의 논리이자 관료주의적 발상이다.

분당을 승리로 한창 주가가 오른 손학규 당 대표도 박지원 원내대표의 합의에 동의했다. 박 원내대표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대표에게 유선상으로 협의를 했고 보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위원들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다수가 FTA를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특보단 회의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합의안에 '한-EU FTA 재협상을 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으니 보완하고 국민을 설득해 나가자"는 특보단 의견을 청취한 뒤 "심사숙고해 보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대표측 역시 정부의 말만 믿고 한-EU FTA 비준에 사실상 동의를 해준 것이다.

정동영·천정배 강력 반발, "야권연대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러나 이들의 밀실 합의는 즉각 당 안팎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대다수,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은 3일 하루 종일 벌집 쑤셔놓은 듯 민주당과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으며 '합의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 민노당 권영길 원내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등 40여 명의 야당 의원으로 구성된 '한미FTA 전면 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와 한미·한EU FTA 저지 범국본,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3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한-EU FTA 국회 통과를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자보

이들은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한-EU FTA 비준을 합의해준 것은 4.27 재보선 야권연대 정책연합 합의문을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파기한 것이며, 이는 다른 야당에 대한 기만이자 승리를 안겨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한-EU FTA 비준안이 통과되면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SSM 규제법'이 무력화될 뿐더러, 정부와 한나라당이 약속한 대책들도 실효성이 없거나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향후 야권통합 논의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한-EU FTA 비준 저지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이들은 평소 야권통합을 강조하면서 한미FTA, 한-EU FTA 등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통상 정책에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정 최고위원은 3일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민주당 협상팀이 한-EU FTA를 합의해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연대 합의문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FTA 합의하는 것은 연대 파기 행위임을 경고했음에도 덜컥 한나라당과 타협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애석한 일"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거 뒤집도록 해보겠다"며 당내에서 '합의 철회'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명박 정부·한나라당과의 타협보다는 야권연대 합의, 국민적 요구, 자영업자들의 4.27 재보선에서 나타난 반란의 의미를 충분히 새기는 것이 민주당이 앞으로 계속 국민의 지지를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천 최고위원도 3일 미투데이에 글을 올려 "한-EU FTA는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은 것을 결코 저버려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동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 최고위원, 민노당 권영길 원내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등 40여 명의 야당 의원으로 구성된 '한미FTA 전면 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와 한미·한EU FTA 저지 범국본,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3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한-EU FTA 국회 통과를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야4당은 4·27 재보선 승리를 위한 정책연합 합의문에서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에 합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며 "민주당이 어떻게 야4당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를 파기하고, 600만 중소상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유통법·상생법을 무력화하며, 320만 농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는 FTA 속도전에 동참할 수 있는가"라며 강력 비난했다. 그러면서 통상절차법 제정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즉각 해임을 요구했다.

재보선 승리 일주일 만에 민주당 '배신', 야권연대 '파국'

민주당에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진보정당들은 3일 하루 종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 논평도 부족해서 당 대표까지 개인 성명을 잇따라 내며 민주당을 집중 성토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오후 소속 의원 전원이 국회에서 한-EU FTA 국회 비준 저지와 통상절차법 제정을 요구하며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철야 농성에 앞서 "국민들 앞에 서민을 위해서 일하자고 했던, 눈물짓는 사람이 없게 만들자고 했던 야권연대의 정신이 이 시점에 이렇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에 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민주노동당은 철야 농성 성명에서 "민주당의 행보는 4.27 재보선을 위해 야4당이 합의했던 내용을 백지화하자는 것이며, 야권연대를 지지해 소중한 한표를 기꺼이 행사해 주었던 국민에 대한 배신이요, 적극적인 지지에 나섰던 연대 야당에 대한 기만"이라며 맹비난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4.27 재보선에서 야4당의 합의는 공동의 정책의제에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이 없었으면 민주노동당은 어떤 야권연대에도 응할 수 없었고,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합의와 야권연대의 약속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승리로 환호하던 민주당이 7·28 재보선에서 야권연대의 실패로 휘청거렸던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진보신당도 3일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한-EU FTA 합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나라당은 4.27 재보선에서 국민이 보낸 경고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무시한 것이고, 민주당은 재보선 승리를 안겨준 국민을 역시 일주일도 안 지나서 배신한 것"이라며 양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특히 민주당 내에서 4.27 이후 야당통합에 대해 부쩍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래서는 야당통합은커녕 야권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승수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EU FTA 여야 합의는 국민 기만이자 4.27 야권연대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했다. 조 대표는 4일 손학규 대표의 처신에도 일침을 가했다. "4.27 재보선 합의문 작성 때는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달려왔던 손학규 대표가 이번 비준안 처리 합의 관련해서는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합의 따로 행동 따로라는 민주당의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했다"고 힐난했다.

진보신당은 또 '정책연합 합의문을 어제서야 봤다'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진보신당은 "야권 연합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그야말로 위선이었을 뿐'이라며 "민주당은 보수정당답게 처음부터 선거 승리를 위해 다른 야당을 이용했을 뿐이지, 진보정당들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고 맹비난했다.

4일에는 국민참여당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EU FTA 합의는 여야 간의 합의가 아니며, 모든 야당의 뜻을 왜곡한 민주당의 반칙행위일 뿐"이라며 "민주당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향후 야권연대의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야3당 역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자유선진당마저‥"배신한 민주당이 더 밉상"

심지어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마저 한-EU FTA 여야 합의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자유선진당은 3일 논평을 내고 "온 국민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한-EU FTA 문제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한 밤중에 군사작전을 하듯이 밀실야합으로 해치웠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피해대책 분야에 대한 정부 대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본회의 개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최고위원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구태여 5월 중에 한-EU FTA를 강행하려 한 한나라당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더욱 밉상스러운건 민주당"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제1야당인 민주당이 농민을 배신하고 야당들과의 약속도 저버린 채 정부 여당과 손잡은 것은 그야말로 배신이고 야합"이라며 비난했다.

한편, 대한양돈협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3일 연쇄적으로 성명을 내고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일제히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용"이라며 근본적인 지원대책을 촉구했다. 반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5단체장들은 3일 박희태 국회의장 초청으로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EU FTA와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FTA는 이처럼 재벌대기업과 서민·농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인 것이다.

'열린우리당·MB 몰락 이유' 벌써 잊었나?

한-EU FTA 합의에 대한 거센 반발이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야권 전체로 확산되면서 4.27 재보선 야권연대는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파국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분당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야권의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한껏 높이려던 손학규 대표에게도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야권연대 합의문 파기' 논란으로 번지면서, 민주당 안팎에선 지난 2004년 총선 압승 직후 총선 공약이었던 분양원가 공개를 철회하며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던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4.27 재보선에서 참패한 것도 세종시 행정부처 이전 철회 논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 잇따른 약속 위반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한 것이 큰 원인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고통받는 서민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복지를 내세우며 '좌클릭'하고 있지만, 한미FTA 추진 장본인인 친노 세력과 친기업적인 관료 출신 의원들이 민주당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한 이들의 뼈 속 깊이 박혀 있는 친대기업-신자유주의 체질 때문에 경제정책에서 한나라당과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미 한미-한EU FTA 폐기·전면 재검토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선대책-후비준'이라는 한미FTA 찬성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한-EU FTA, 한미FTA 비준을 적극 밀어붙이는 이유도 이처럼 민주당 내 든든한 지원군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민주당이 복지와 좌클릭을 제대로 하려면,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 상당수를 물갈이하고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만 가능하다는 혹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4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한-EU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승리로 환호하던 민주당이 7·28 재보선에서 야권연대의 실패로 휘청거렸던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는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예사로이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기사입력: 2011/05/04 [13:28]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