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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에 지지율 뒤지는 박근혜…문제는 ‘박근혜’다(한겨레21)

말글 2012. 1. 22. 22:08

‘유령’에 지지율 뒤지는 박근혜…문제는 ‘박근혜’다(한겨레21)

 

[2012.01.30 제895호]

[표지 이야기] 돈봉투 엄벌해야 하나 자신도 의혹에 시달리고, 쇄신해야 하나 스스로 대상되는 ‘박근혜 딜레마’…정체된 지지기반 확장하지 못하고 정치인도 아닌 안철수에 지지율 뒤지는 ‘박근혜의 전쟁’

 

 

»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대와 달리 한나라당을 쇄신하기는커녕, 당의 위기를 수습조차 못한다는 비판에 내몰리고 있다. 박 위원장이 1월8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명대사다. 지금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처한 상황에 이 대사를 대입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지금까지 박 위원장이 집어든 초콜릿은, 죄다 겨자나 까나리액젓이 가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테러 사건에 이어 박희태 국회의장 쪽이 2008년 전당대회 때 조직적으로 돈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한나라당은 공황 상태다. 홍준표 전 대표와 원희룡 의원은, 박 위원장 쪽도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돈선거’를 치렀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을 쇄신할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쇄신파의 요구를 받아들여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지만, 20여 일이 지난 지금 한나라당은 더 심한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대체 ‘박근혜’는 무엇인가. 그와 한나라당을 빼놓고 총선과 대선을 한꺼번에 치르는 이 정치적 격동의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먼저 박 위원장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고,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박근혜의 전쟁’이다. 그에게 남은 초콜릿 속에 든 것은 독약일까, 부활의 명약일까.

대체 ‘박근혜’는 무엇인가. 그와 한나라당을 빼놓고 총선과 대선을 한꺼번에 치르는 이 정치적 격동의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먼저 박 위원장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고,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박근혜의 전쟁’이다.

박근혜 대 돈봉투

이번에도 돈이다. 2004년 검찰 수사로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 드러나자 한나라당은 초토화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자초해 한나라당은 궤멸하는 듯했다. 그때 당 대표로 나서 충남 천안 연수원을 헌납하고, 천막당사 ‘세리머니’를 벌여 총선에서 121석을 이끌어낸 주체가 박 위원장이었다.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가 폭로된 초반만 해도, 한나라당 안팎에선 박 위원장의 ‘전력’을 떠올리며 당을 구해내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일이 더 꼬이고 있다. 박 위원장은 검찰에 수사의뢰한 뒤 사실상 이 사건에서 손을 놓았다. 하지만 “박희태만 문제냐”며 이 정부 들어 치른 한나라당의 세 차례 전당대회가 모두 돈선거라는 의혹도 여기저기서 불거진다. 한 전당대회 출마자 쪽은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들거나, 버스로 실어나른 후보 쪽은 대부분 돈을 주고 동원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박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처절한 전쟁을 치른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도 돈을 뿌렸다는 말이 나온다. ‘해결사’ 역할을 맡은 박 위원장도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호남 사정에 밝은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경선·전당대회 때 민주당은 영남에, 한나라당은 호남에 돈을 뿌리는 건 이 바닥의 ‘상식’ 아니냐”며 “후보들이 몇백만원씩 건넸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 쪽은 그의 대학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경선을 앞두고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2007년 경선에 직접 나섰던 홍준표 전 대표와 원희룡 의원도 돈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오계로 알려진 안병용씨가 박희태 의장이 당대표 후보로 나선 2008년 전당대회 때 구의원들을 통해 2천만원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자, 이재오계의 한 인사는 “박근혜 위원장의 경선자금도 폭로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1월11일 “그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계인 홍사덕 의원은 이튿날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시답지 않은 얘기”라며 “다른 캠프의 운영 방식으로는 본부에서 돈이 내려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대위원장인 내가 어디에서 돈을 마련해가지고 내가 보내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도 ‘지뢰’는 존재할 수 있다. <한겨레21>은 박 위원장의 ‘그림자 측근’인 홍아무개씨가 사업가 최아무개씨에게서 경선자금 6억원을 불법 모금한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867호 줌인 ‘그림자 최측근의 비밀스런 모금?’ 참조). 홍씨는 지난해 11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홍씨는 박 위원장의 외곽조직인 한강포럼을 조직·운영했고, 경선캠프에서 박 위원장의 특보와 전문가네트워크위원장 등을 지냈다. 또한 경선 선거인단을 상대로 박 위원장 지지 활동을 벌였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홍씨가 최씨에게서 받은 6억원은 모두 현금인 탓에 용처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최씨에게 경선자금으로 쓰겠다고 말한 사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이 “경선 때 홍씨는 박 위원장을 위해 자기 돈을 털어가며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말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홍씨가 이 돈을 모두 ‘개인 용도’로 썼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정두언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쓴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국면이다. 이 상자 안에 희망이 남아 있을까? 이 투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누구일까?

 

» 3년 전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쪽으로부터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전달받았다고 폭로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1월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박근혜 대 쇄신파

선관위 사이버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 직후 쇄신파는 재창당을 요구하며 박 위원장의 ‘전면 등판’을 압박했다. 박 위원장은 이를 수용했고, 쇄신파를 ‘쇄신의 파트너’로 선택했다. 하지만 양쪽은 정치적 동지일 수 없었다. 쇄신파는 박 위원장의 힘이 필요했고, 박 위원장은 이들의 ‘쇄신 이미지’가 필요했을 뿐이다. ‘박정희의 딸’인 박 위원장과 쇄신파 주축인 과거 군사독재에 맞선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삶의 이력의 차이도 둘 사이의 화학적 결합을 어렵게 하는 작지 않은 심리적 장애물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계가 비대위에 전권을 줘야 한다고 요구하자 김성식·정태근 의원이 탈당했다. 남은 쇄신파는 박 위원장을 만났고, ‘재창당을 뛰어넘는 개혁’에 합의했다. 박 위원장은 “당이 잘못했다고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은 국민이 눈속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들의 재창당 요구를 일축했다. 쇄신파 사이에선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지만, 그렇게 재창당 논의는 힘을 잃는 듯했다.

 

‘비겁하다’는 욕을 자주 먹는 쇄신파는 이 때문에 더욱 궁지에 몰렸다.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는 데 저마다 힘을 보탰고, 한때는 ‘정권 실세’로까지 불리던 이들이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누구에게 쇄신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정당한가는 곱씹어볼 문제겠지만, 적어도 주류들보다는 이들이 부글부글 끓는 민심에 민감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재창당 요구가 또다시 불거진 건 돈봉투 사건 때문이다. 쇄신파 정두언 의원은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한다길래 여태까지 기다렸는데, 당은 더 엉망으로 되고 있다. 이제 한나라당의 수명이 다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재창당부터 해야 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최근 김종인 비대위원을 만나 이런 의견을 전달하며 박 위원장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파 가운데선 ‘재창당의 밀알’이 되겠다며 또다시 탈당을 고민하는 이도 적지 않다. 박 위원장이 쇄신은커녕 수습조차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쇄신파들은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일까? 초점을 ‘쇄신’이 아니라 ‘총선’으로 바꿔 보면, 이들이 처한 현실에 가장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근혜’라는 간판으로 자신들이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궁극적인 고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박 위원장이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박 위원장의 재창당 거부에 동의한 것도, 또다시 탈당과 재창당을 거론하는 것도 여론의 향배에 ‘안테나’를 바짝 세우기에 가능한 것이다. 좀더 넓게 봐도 마찬가지다. 쇄신파 일부를 포함해 적지 않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역구에 배포하는 의정보고서에서 한나라당 당명과 로고를 지운 것은 이들의 ‘생존 본능’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1월1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회의에서 “이 문제는 비대위가 출범하기 전에 의총을 통해서 ‘재창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쇄신’이라는 합의를 이미 했다”며 “국민들은 재창당이냐 아니냐 하는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쇄신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이것을 보고 한나라당의 변화를 평가할 것이다. 내용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간판만 바꾸었다는 것은 국민들이 더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창당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못박은 것이다. 또한 그는 재창당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을 겨냥한 듯 “쇄신 자체를 가로막는 언행, 비대위를 흔드는 언행은 자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양쪽은 위기 극복의 전략·전술이 크게 다르다. 갈등의 이유다. 그러나 결별하기는 쉽지 않다. 박 의원으로선 쇄신파의 ‘쇄신’ 이미지가 필요하고, 총선에서 살아남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인 쇄신파로선 당내 독보적 대선 주자인 박 위원장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 위원장과 쇄신파는 서로를 계륵으로 여기는 오월동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대일 대결을 펼칠 경우 박근혜 위원장은 안철수 원장을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안 원장은 여전히 정치 입문을 놓고 “고민 중”이라는 말만 거듭하고 있다. 어찌 보면 박 위원장은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 ‘유령’

“이래서 박 위원장이 조기 등판하면 안 되는 거였다. 비대위 하는 꼴도 그렇고…. (총선) 공천 막바지에 나와야 했는데 너무 빨리 나왔다.” 박근혜계 한 의원의 얘기다. 이 의원 말고도 박근혜계에선 박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맡은 게 그의 대선 가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당 쇄신이 제대로 안 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은 오롯이 박 위원장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엔 지난해 여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급부상하며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한몫한다.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대일 대결을 펼칠 경우 박 위원장은 안 원장을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안 원장은 여전히 정치 입문을 놓고 “고민 중”이라는 말만 거듭하고 있다. 어찌 보면 박 위원장은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아직 링 위에 올라오지도 않은 선수만 문제가 아니다. 안 원장을 빼면, 아직 야권의 대선후보군 가운데 박 위원장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 원장이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야당 후보를 지지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해 12월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경우 야당 후보가 39.5%를 얻어 45.4%의 박 위원장과 오차범위(±3.1%포인트)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를 특정하지 않은 가상대결에서조차 박 위원장이 박빙의 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박 위원장의 지지 기반 확장 가능성이 낮다는 방증이다. ‘이명박은 싫어서 안 찍고, 야당엔 찍을 사람이 없어 못 찍는다’며 지난 대선 때 대거 투표에 불참한 유권자에게 박 위원장이 별다른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유령’은 한나라당에도 존재한다. 보통은 강력한 복수의 경쟁자가 존재하고, 이들이 구심점 역할을 하며 세력을 키우고, 서로 경쟁하고 견제해야 ‘싸움’이 된다. 그런데 박 위원장에겐 그런 ‘맞수’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내부의 저항에 시달리고 있다.

 

박 위원장도 자신의 ‘대세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모험을 걸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대세론을 흔드는 실체가 야권의 대선후보로 구체화하지 않은 ‘유령’인 까닭일 터. 박 의원장은 ‘유령’을 상대로 정치적 명운을 걸기엔 자신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쇄신파는 ‘필요조건’만을 교환했던 것 같다. 지난해 12월2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 비대위원장과 정두언 의원(오른쪽). <한겨레> 강창광

박근혜 대 박근혜

4년 내내 지지율 1위 자리를 고수하던 박 위원장이 어쩌다 이런 곤란한 처지에 몰렸을까?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바로 ‘박근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박정희의 딸’ 또는 ‘유신공주’라는 태생적 자산과 부채를 벗어던질 수 없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이라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사고체계에서, 아버지를 전면 부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하고 그 사과를 정치적 실천으로 구체화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공학적으로도, 그랬다가는 그의 가장 공고한 지지층이 반발할 위험이 있다.

 

박 위원장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자 한계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은 이미지다.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왕족의 기품’을 풍기는 탓에 사람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다른 정치인들의 지지자가 팬덤이라면, 박 위원장 지지자들은 신앙이나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권위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난다. 박 위원장은 박근혜계 의원들에게도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무슨 일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는 의원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기만 하는 것으로 ‘질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보름 가까이 한나라당 비대위 회의는 박 위원장 혼자 인사말을 한 뒤 비공개로 진행됐다. 보통 당의 아침 회의는 들머리 부분을 언론이 취재할 수 있도록 해 여러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곤 한다.

 

이런 한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에게 정치 개혁의 꿈을 투영했다. 대통령 당선 뒤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이 대통령도 당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선 개혁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에선 그가 한나라당 경선후보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할 정도였다. 2008년 총선 당시엔 ‘공천 학살’을 통해 박근혜계 의원들을 과도하게 쳐내 계파 갈등이 더욱 심화됐지만, 정권 창출의 핵심 인사인 박희태 의장조차 낙천시키는 등 그 나름대로는 개혁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의 측면에서 ‘박정희의 딸’일 수밖에 없는 박 위원장은 그 스스로가 개혁돼야 할 대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당 관행이나 사람들 못지않게 박 위원장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나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과거의 모든 구태와 단절하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박 위원장은 1월13일 한나라당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모르긴 몰라도 박 위원장이 생각하는 ‘모든 구태’에 ‘박정희의 유산’과 박 위원장 자신은 들어있지 않을 터.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