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문화원 김영섭 전 원장, ‘동대문 문화의 길’을 열다
- ‘동대문 문화를 만든 문화계 지휘자’..문화원 ‘단독 원사’ 못 만든 것이 가장 큰 아쉬움..“동대문구의 영원한 ‘문화인’으로 남을 것”
2019. 3. 24.(일)
대한민국 근현대사 중 가장 큰 경제적 재앙이었던 IMF가 한창이었던 1997년. 당시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의 붕괴와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해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나 다름이 없었다.
동대문구는 특히 더 했다. 서울에 중심이지만 저소득층이 많았던 강북에 대표적인 지역이었던 동대문구는 IMF 충격에 그저 먹고살기 바빴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오직 ‘삶을 보다 좋은 질을 위해 살아보자’는 뜻을 위해 동대문구에 ‘문화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찌 보면 IMF 직후인 “왜 하필 이때인가?”라는 의문점이 있었겠지만, 오히려 이들은 “이럴 때 일수록 ‘문화’로 경제상황을 이겨보자”는 역발상으로 이듬해인 1998년 12월 28일 정식으로 ‘동대문문화원’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동대문문화원은 설립추진위원들이 생각했던 대로 꾸준한 성과를 냈다. 아울러 그런 성과가 있기까지는 초대원장부터 지난 2월까지 동대문문화원 수장으로 이끌었던 김영섭 전 원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김영섭 전 원장은 동대문구에는 전무했던 ‘문화’를 새 생명이라도 불어넣듯 ‘문화’를 생산했다. 그것도 ‘문화’와 관련된 모든 분야의 문화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한 악기 한 악기 음을 모두 들으며 조화를 이루듯 ‘문화’라는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에 본지를 비롯한 동대문구지역신문협회는 평생 동대문구 발전과 20여 년간 동대문문화원 한 길을 위해 희생한 김영섭 전 원장의 20여 년간 문화원을 위해 달려왔던 흔적들과 이임 소감을 들어보았다. <동대문구 지역신문협회 공동취재>
▲김영섭 전 원장
■ ‘관’ 주도 아닌 ‘민간’ 주도로 동대문문화원 설립
동대문문화원 설립 당시에는 지방문화원진흥법이 개정되고 서울시에서도 몇몇 문화원이 새롭게 개원하던 시기였다. 이때 동대문구도 민간차원에서 뜻있는 몇 사람이 모여 문화원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문화원이 개원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숱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근의 몇몇 문화원은 구에서 모든 예산을 지원하는 가운데 설립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동대문문화원은 민간에서 설립을 주도했던 만큼, 추진위원회에서 동대문구 주민과 각종 단체와 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화원의 가치를 역설하고 설득해 십시일반 기금을 모금했다.
이에 당시 민선 2기 구청장이었던 유덕열 구청장도 동대문문화원 설립에 힘을 실어 주어 2년여에 걸친 준비를 마치고 동대문문화원을 개원했다.
당시 추억을 떠올리던 김영섭 원장은 “문화 창달이라는 목표로 문화원 설립을 준비했는데, 설립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화원 개원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어렵게 개원해서인지 더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더 발전시키고자 했던 열정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라며 문화원 설립 후 가졌던 다짐을 회상했다.
■ 동대문에 없던 ‘문화’ 문화원이 발굴
막상 문화원이 개원했지만 처음에는 힘들었다. 당시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의식이 그리 높지 못했고 설사 관심이 있다 해도 IMF 등 경제상황도 좋지 않아 생업이 우선이었기에 직접 참여가 어렵다는 사실을 마주하고는 참으로 난감했다. 더군다나 문화원 설립초기에는 촬영소 고개가 교통편도 열악했고, 옆의 체육관도 당시에는 산이었기 때문에 눈에도 띄지 않고 접근성이 매우 나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구민들도 문화원이 무엇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김영섭 원장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주민을 기다리기 보다는 무대를 들고 직접 주민들의 곁에 가서 문화의 장을 펼치자’라는 생각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시작했다.
바로 지역문화원 최초로 지역방송 미디어와 결합한 ‘찾아가는 문화 활동’을 시작해 구민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찾아가는 문화 활동’은 심지어 중국연변위성방송에서 직접 찾아와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현재까지도 같은 포맷으로 중국 동북지방 전체에 방송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구민들을 위해 ▲어린이 국악교실 ▲청소년 유스페스티벌 ▲역사문화탐방 ▲향토문화탐방 ▲해외문화탐방 ▲주부백일장 ▲아카시꽃큰잔치 ▲선농제 ▲청룡문화제 ▲한가위민속큰잔치 ▲가족여름캠프 ▲주민문화강좌 ▲청소년 향토사 역사영화 만들기 ▲숲속콘서트 ▲팝스오케스트라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주민을 위한 오페라와 뮤지컬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와 수많은 문화행사를 통해 동대문구를 ‘문화 선진구’로 도약시켰다.
뿐만 아니라, 동대문구 향토사 외에 다수의 출판물을 간행했으며, 김 원장의 자비를 들여 동대문문화포럼을 만들어 국내 다수의 유명인사와 명인들을 초청해 지역주민들의 인문소양을 함양시켰다.
김영섭 원장은 “주민들 곁으로 먼저 다가가니 훗날 문화원에서 하는 교육이나 행사를 개최하면 주민들이 먼저 문화원을 찾았습니다. 그런 소문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문화원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 각 지역의 문화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부각됐고, 이는 국내에 그치지 않고 해외에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며 동대문문화원이 동대문구 홍보외교관이 된 것에 대해 설명했다.
▲2017년 청룡문화제 전야제에서 김영섭 전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동대문 이슈)
■ ‘전문 문화인’ 배출한 동대문문화원
동대문문화원의 업적은 그동안 받은 수상 소식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김영섭 원장의 열정과 노력 때문인지 동대문문화원은 개원 첫 해부터 어린이대상 프로그램으로 우수문화원상을 수상했고, 연이어 다음해에는 지역전통문화축제인 청룡문화제의 고증적 논문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했다.
특히, 김 원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문화단체와 교류,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려, 중국 용정시 여성교육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또한, 문화원의 문화강좌를 통해 시인, 방송작가 등 전문 문인들을 배출했으며, 어린이국악교실에서는 우리국악 전공자를 다수 배출하기도 했다.
아울러 동대문문화원은 동대문문인협회를 결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실버문화교실에서는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왕언니 클럽을 만들었고, 문화원 예술공연단들의 활동은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복지를 실현하는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그 결과 ▲성균관을 비롯한 ▲철도공사 ▲미국 LA한인회 ▲세계한인재단 ▲오렌지카운티 시장 ▲룩셈부르크 한인문화협회 ▲중국 용정시여성교육회 ▲베트남 한인총연합회 ▲해병대전우회 ▲대한의병정신선양회 등 수많은 단체의 감사장 수상과 ▲서울문화가족 국악, 무용경연대회대상을 비롯해 ▲대한민국지방자치경영대전 대상 ▲대한민국과일산업대전 대상 ▲금산인삼축제 대상 ▲실버문화페스티벌 대상 ▲전국아리랑 페스티벌 대상 ▲강원도 어르신문화축제 ▲전국노래자랑 등에서도 수상했으며, ▲문화창달분야 대한민국문화원상을 2회나 수상했다.
한편, 수많은 수상을 위해 진두지휘한 김영섭 원장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수훈의 영광도 얻었다.
■ 20여 년 문화원 이끌었지만 ‘원사’ 갖지 못해 아쉬워
김영섭 원장은 취임 이후 1대와 2대를 연임하고 3대의 잔여임기와 4~5대까지 20여 년간 동대문문화원을 이끌다가 지난 3월 1일부로 윤종일 신임 원장에게 그 배턴을 넘겼다.
김 원장은 “되돌아 추억해 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한편 저에게는 일생을 통해 가장 찬란하고 빛이 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와 함께 문화 동대문구를 만들어 가고자 애쓰시다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면면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다시 한 번 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그동안의 영광과 아쉬움을 남긴 듯 했다.
그래서 가장 큰 아쉬움을 물었더니 바로 ‘동대문문화원 단독 원사’였다. 그는 “동대문문화원은 전국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1등 문화원인데 비해 원사가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20여 년 동안 문화사업을 하면서 원사를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만약 원사가 있었다면, 우리 구민들에게 문화에 대한 더 많은 혜택을 드렸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김 원장은 “우리 동대문문화원은 민간에서 주도해 개원한 만큼, 가급적 구에 부담을 주지 말고 운영해 나가자는 방침을 세우고 기본 재산의 이자와 회비를 가지고 운영하려고 애썼습니다. 후임 윤종일 신임 원장님은 유능한 분이시기에 윤 원장님께서 가급적 동대문문화원의 민간설립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재임 시기에 꼭 동대문문화원 단독 원사를 세우시길 바랍니다”며 후임 원장에 대한 당부도 말했다.
한편, 김영섭 원장은 20여 년간 문화원을 이끌며 마지막으로 구민들에게 “인간의 수명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어야 100년 남짓한 시간을 살다가 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동대문구의 문화발전을 위하여 남긴 일련의 일들은 영원히 후세에 전해질 것이며, 그 가운데 우리 문화가족과 동대문문화원이 있을 것입니다”며 “그동안 저에 대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모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지만, 저는 죽을 때까지 동대문구의 문화DNA를 가슴에 품고 동대문구 문화발전을 위해 묵묵히 협조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며, 동대문구의 영원한 문화인으로 남을 것입니다”며 그동안 문화원을 아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2018년 동대문문화원 20주년 행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사진=동대문 이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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