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대표 최측근인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 박 전대표가 총리를 맡는 전제조건으로 쇠고기 재협상, 한반도 대운하 포기 및 대북-교육정책 등의 전면 전환 및 '책임 총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요구는 사실상 박 전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2의 6.29선언'을 요구하는 것과 진배없어, 이명박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유승민 "박근혜, 허수아비 총리는 안한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박 대표에게 총리를 제안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 한 분밖에 없는데, 우리들이 확인을 한 결과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대통령이나 대통령 바로 가까이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유 의원은 그러나 총리직 제안이 올 경우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한 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두 분 사이에 신뢰가 워낙 없고, 또 두 분이 각종 중요한 정책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다르다"며 "이 두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 거기에 따라서 결론이 달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양자간 불신과 관련, "지금 국민도 대통령을 못 믿고 지금 위기의 본질이 대통령의 신뢰 부족인데, 국민도 대통령 못 믿지만 두 분 사이에 불신도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며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이렇게 못 믿는 사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지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 이런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책 이견과 관련, "정책에 대한 생각 이건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막연히 총리를 하고 안 하고보다 이런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게 문제"라며 "당장 쇠고기 재협상 문제만 하더라도 박 대표는 불가피하다면 재협상을 하자라고 이야기했고 대통령께서는 며칠 전에 재협상은 안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며 쇠고기 재협상을 둘러싼 양자간 극심한 견해차를 지적했다.
그는 또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180도 지금 생각이 다르고, 공기업 민영화나 교육정책, 복지정책, 대북정책, 이런 것도 분명히 두 분 사이에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정책이슈에 대해서는 만약 총리를 맡는다면 맡기 전에 대통령하고 큰 틀에서 합의가 있어야지 총리를 맡더라도 국정이 좀 삐거덕거리는 그런 소리가 안 나고 나라가 좀 안정될 것 같다"며 이 대통령에게 대운하 포기를 비롯한 제반 정책의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대운하 문제와 관련, "대운하 문제는 정말 철학과 소신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또 국민이 많이 반대하지 않느냐. 그런 부분은 그냥 1년, 반년, 이렇게 연기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니까 만약 총리직 제안이 오고 그게 의견 접근이 만약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러면 대운하 문제 같은 건 그냥 연기가 아니라 분명한 결론을 갖고 출발하는 게 맞다"며 이 대통령에게 대운하 포기를 거듭 압박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박 대표가 총리를 한다고 그러면 지금까지 총리직하고는 다를 것 같고 달라야 된다"며 "박 대표가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제대로 해야지 허수아비 총리나 일회용 총리, 이런 건 안 할 것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대운하 문제 같은 것만 하더라도 그냥 미봉책으로 덮어놓고 그냥 하자, 이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며 박 전대표가 실권을 갖는 책임총리를 약속받을 때만 총리직을 수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李대통령의 고민, '아직 4년8개월 남았는데...'
유 의원의 요구는 단순히 개인 의견이 아닌 박 전대표의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박근혜계에선 허울뿐인 총리가 될 경우 박 전대표가 성난 민심의 총알받이가 되면서 이 대통령과 공도공망할 것이란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이 대통령에 대한 박 전대표측 요구가 사실상의 대국민 항복선언인 '제2의 6.29선언'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의 선언이 나오지 않고는 작금의 극심한 민심이반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1987년 6.29 선언은 정권말기에 나온 선언으로 노태우 후보를 차기대통령으로 만들어 정권 재창출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칫 박 전대표측 요구를 수용할 경우 이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더라도 그후 권력의 무게중심이 박 전대표측으로 급속히 쏠리면서 유사 레이덕 상태에 빠지지 않겠냐는 우려다.
하지만 이같은 청와대 고민에 대해 여권 일각에선 작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박 전대표와의 '권력 분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이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 김동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