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영화포스터展' 개막…
테마 카페·조각공원 등 복합영화체험공간 만들기로
"답십리 촬영소 가는 길 주변은 온통 연탄 공장이었어요. 흰 구두를 신고 촬영소로 가다 보면 어느새 검은 구두로 변해 있었죠."지난달 30일 동대문구청 2층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추억 속의 영화 포스터전(展)' 개막식에 참가한 여배우 최지희(70)씨는 40년 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 '김약국의 딸들(1963년)' 주인공을 맡아 당시 보기 드문 도시적 이미지와 관능미로 1960년대 청춘을 대변한 그는 '한국의 브리지트 바르도'라 불리던 여배우답게 강렬한 붉은색 코트 차림이었다. 영화 '변강쇠(1986)'로 유명한 '강한 남자'의 원조 배우 이대근(69)씨는 "어휴, 장화 없이는 걸어 다니지도 못했지. 하지만 그땐 정말로 밥보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에 미쳐서 일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에는 두 배우와 호흡을 함께했던 고응호(69)·김기(81)·김기덕(76)·김양득(62)·설태호(87)·심우섭(77)·이은수(75)·황동주(68)씨 등 원로 감독 8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전시회는 동대문구가 주최하고 한국영화기념사업회(회장 고응호)와 답십리영화문화보존회(회장 정재식) 후원으로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동대문구는 "1960년대 극영화의 산실이었던 답십리 촬영소를 복원하고 당시 영화 자료를 기반으로 테마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이번 전시회는 답십리에 얽힌 옛 영화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 ▲ 지난달 30일 동대문구청 2층 아트갤러리에서 열린‘추억 속의 영화 포스터전’을 찾은 배우 이대근씨, 여배우 최지희씨, 방태원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 원로 감독 고응호씨 (왼쪽부터)가 1950~80년대 영화 포스터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많은 사람이 향수에 목 말랐던 것일까. 전시회를 찾은 800여명의 관람객들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등 1950~80년대 영화 포스터 67점과 50여명의 배우·감독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빠졌다. 고응호 감독은 "1960년대는 보릿고개 시절이라 못 먹고 사는 불쌍한 여공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공감을 얻었고, 1970년대에는 액션 코미디 장르가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은 시민 김행자(62)씨는 "'빨간 마후라(1964년)' 포스터를 보니 영화 내용이 떠오르면서 큰 맘 먹고 극장을 찾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김기덕 감독은 "예전 포스터들을 오랜만에 보니 어렵게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면서 "피땀 흘려 영화를 만들던 추억의 명소인 답십리 촬영소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1970년까지 영화 90여편 제작
답십리 촬영소의 정식 명칭은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로 1964년 3월 동대문구 답십리동 산 12번지(현 동대문구 체육관과 동답초등학교 일대)에 들어섰다. 스튜디오 2개와 연기실·연기자 대기실·녹음실·현상실·변전실에 식당·커피숍·욕실까지 갖춘 당시로선 최첨단 영화 촬영소였다.
당시 다른 영화 촬영소는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임시로 쓰던 시절이었다. 1965년 8월 발행된 영화 잡지 '실버 스크린'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한 배우가 답십리 촬영소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으며 '안정적인 전기 공급으로 조명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맡은 역할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연기실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역 헌병 대령이던 홍의선씨가 '영화산업의 육성'을 외치며 사재를 털어 단층 건물(연면적 1157㎡·350평)로 지은 촬영소는 한국 영화계의 '사건'이었다. 그는 국내 최초의 여류 촬영소장인 전옥숙씨의 남편이자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1970년까지 총 90여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대표적 작품으로 김진규·김보애 주연의 '부부 전쟁(1964)'을 시작으로 이만희 감독의 '기적(1967년)', 최무룡 감독의 '나운규 일생(1966년)', 오승호 감독의 '사랑아 울리지 마라(1965년)', 전범성 감독의 '바보(1965년)' 등이 있다. 60년대 영화 부흥기를 풍미한 촬영소는 1970년 철거됐다.
- ▲ 1965년 영화 잡지‘실버 스크린’8월호에 실린 답십리 촬영소 전경. / 동대문구 제공
동대문구는 오는 2013년까지 답십리 사거리 일대에 '답십리 촬영소'를 복원할 계획이다. '한국 명화 콤플렉스(Complex·복합단지)'로 명명된 이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6층(연면적 1만6000㎡) 규모에 영화 상영관과 박물관, 특별전시장, 제작 스튜디오, 영화아카데미 등이 들어서고 '영화 테마 카페'와 '영화인 조각공원' 등 부대시설을 갖춰 복합 영화 체험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또 영화 특화거리를 만들고, 각종 영화 문화행사도 유치할 계획이다. 구는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거쳐 최종 보고회까지 마쳤다.
방태원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은 "영화 촬영소 복원을 계기로 답십리 사거리 인근을 영화 특화거리로 만들고 각종 문화행사를 유치해 '극영화의 중심지'였던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