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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부사장 투신 전 심경 토로(조선)

말글 2010. 2. 4. 11:20

삼성전자 부사장 투신 전 심경 토로(조선)

 

입력 : 2010.02.02 14:51 / 수정 : 2010.02.04 10:34

"반도체 기술 유출 수사중 부임…책임 느꼈을 수도"
"곳곳이 지뢰밭… 도처에 폭탄…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9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10시30분경 숨진 채 발견된 삼성전자 부사장 이모(51)씨가 자신의 생일이자 사고 전날인 25일 밤 유서를 작성해 자택 서재에 남겼으며, 이 유서에는 ‘업무에 대한 중압감’ 외에 ‘회사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주변의 한 관계자는 “‘업무 부담이 너무 과중해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가까운 주변에 ‘곳곳이 지뢰밭’ ‘도처에 폭탄’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경영진이 (나를)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다”고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선 “고인이 책임을 지고 있던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반도체 기술 유출사건과 관련, 검찰이 강도 높은 내사를 벌인 데 대한 심적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검찰은  삼성전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반도체 핵심기술이 경기도 성남의 한 외국계 장비업체로 유출된 혐의를 잡고, 지난 연말 이 장비 업체를 압수수색 한 뒤 관계자를 출국 금지시켰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사건은 고인이 공장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발생한 것이지만 연구소장에서 공장의 책임자로 발령받아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던 고인이 부임하자마자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게 된 데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괴로워 했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모습. / photo 연합뉴스

고인이 작성한 유서는 현재 유가족이 보관하고 있으며, 유가족은 유서의 내용이나 사망 동기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빈소 중앙엔 ‘근조 이건희’ 조화

고인의 빈소는 서울 삼성동의 한 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전날인 27일 밤, 빈소 분위기는 숙연했다. 중앙엔 ‘근조 이건희’라 쓰인 화환이 놓여 있었고, 한편엔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명의의 화환과 고인이 다녔던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명의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빈소 벽면엔 삼성SDI, 삼성중공업, 삼성선물, 삼성증권 등 삼성 각 계열사 대표이사 명의로 된 리본들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C모 세미 콘덕터, F모 반도체, A모 칩스, H모 램, S모 반도체통신 등 반도체 관계사 대표들 명의의 리본이 100개 이상 걸려 있었다. 대일본인쇄, 대일본스크린제조, 일본삼성 등 외국 유관사 대표들 명의의 리본도 눈에 띄었다.

 

방문객도 끊이지 않았다. 고인과 같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삼성 계열사 사장단 20여명 등 최소 100명 이상의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분위기는 침울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었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삼성 임직원들은 나직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얘기하며 소줏잔을 주고 받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회계팀의 한 직원은 “한 마디로 허탈하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신경질이 난다”고 했다. 

 

“연구소장 → 공장장 굴욕적 인사 아니다”

이날 문상을 온 삼성 임직원들의 주요 화제는 인사 문제였다. “엔지니어이자 연구자로서 반도체연구소를 이끌었던 고인이 기흥공장장으로 발령난 데 대해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견도 적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기흥 팹(fab·반도체 직원들이 반도체 공장을 일컫는 표현)은 지리상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 중요성이 높아 가장 좋은 팹으로 꼽힌다”며 “연구소장이 기흥공장장으로 가거나 기흥공장장이 연구소장을 맡는 경우는 절대 드문 케이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연구소장에서 공장장으로 갔다고 해서 굴욕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삼성 안팎에서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며 ‘경영진이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는 주장은 이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삼성그룹은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중폭 이상의 세대 교체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이때 삼성전자의 단독 CEO에 오른 사람이 1951년생인 최지성 사장이다. 최 사장은 윤종용, 황창규, 진대제 등 쟁쟁한 이공계 출신 CEO들이 즐비한 삼성전자에서 보기 드문 인문계 출신이다. 그는 1980년대 유럽 전역을 혈혈단신 돌면서 매년 판매신장률 500%를 달성, 1988년 1억2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기록의 소유자다. 이로 인해 최 사장은 삼성 내부에서 ‘장사꾼’이란 별명을 얻었고, 단독 CEO 취임 후 성과 중심주의로 조직을 이끌었다.

 

“성과 중심주의 적응 쉽지 않았을 것”

한 관계자는 “그전까지는 ‘좋은 물건을 만들고 팔아 회사 이미지를 높이자’는 측면이 강했던 반면, 최 사장 부임 이후에는 ‘브랜드 이미지는 이미 높아졌으니 판매를 강화해 시장 저변을 확대하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스탠퍼드 박사 출신으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고인이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맡았던 업무는 ‘파운드리(foundry) 개발 총괄’이었다.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반도체를 제작해 주는 업무다. 주요 고객은 퀄컴이나 자일링스 같은 굵직한 국내외 전자회사들. 따라서 영업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사장단의 업무는 초인적이라 할 만큼 고되다. 오전 7시에 출근해 팀장들과 미팅을 하고, 간부 경영회의를 한 뒤, 20~30분 단위로 짜여진 일정을 따라 빽빽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루에 점심식사 2번, 저녁식사 2번은 흔한 일이다. 심할 경우엔 하루에 저녁 식사 약속을 4회까지 잡기도 한다.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크고 작은 행사와 골프 약속이 6개월~1년 뒤까지 잡혀 있다.

 

고인의 일과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고인이 내성적이며 술도 못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과 약간 다르다”며 “고인은 모나지 않은 원만한 성품을 지녔으며, 술을 잘하진 않았지만 못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사망 전 술에 취해 귀가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계자는 “성격이 좋았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않고 품고 살았다는 얘기 아니겠느냐”며 “업무상 빚어진 갈등과 인사문제가 겹쳐 비극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서의 분량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A4 용지 10장이 아니라 3장 분량이며, 서울 삼성동의 한 고층아파트 4층에서 투신했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24층 옥상에서 투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사장은 또 술병을 손에 들고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적잖은 분량의 술을 마신 뒤 술병을 옥상에 놔 두고 몸을 던졌다. 그가 뛰어내린 아파트의 보안업체는 아파트 옥상에서 절반쯤 비워진 양주 한 병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양주병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고인이 자택에서 들고 나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1월 27일 “이 부사장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 화면에 잡혔으며, 별다른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검은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지난 26일 고인의 시신을 인도 받아 28일 새벽 6시 발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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