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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몽준 루비콘강을 건넜나(주간조선)

말글 2010. 2. 4. 11:30

박근혜-정몽준 루비콘강을 건넜나(주간조선)

▲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정몽준 대표의 ‘미생지신’ 발언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장충초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날 졸업했다. 둘 다 테니스를 좋아한다. 현재 ‘같은 회사’를 다니며, 하고 있는 일도 비슷하다. 인생의 목표도 비슷해보인다.

보통의 경우 이런 인연이면 ‘절친(절친한 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들은 오랫동안 서먹한 관계였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보겠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한나라당 정몽준 현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이야기다. 

세종시 놓고 사사건건 감정 싸움

지난 1월 20일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당론 변경 논란과 관련해 “미리 결론을 다 내놓고 정부 수정안을 확정 짓기 위해 하는 토론이 무슨 토론이냐. 그건 투표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정 대표가 당 회의에서 “원안과 정부안 중 어떤 게 당내 공감대가 큰지 민주적 방식과 정해진 절차에 따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서다. 박 전 대표는 정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세종시 수정 추진을 위해 당론을 바꾸는 논의를 본격화하는 데 맞서 거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세종시 논의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반면 정 대표는 전날 라디오 연설에 이어 이날도 세종시 수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절차에 나서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 문제를 둘러싼 정 대표와 박 전 대표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신뢰와 원칙’이라는 자신의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가치를 세종시 문제와 결부시켜 정몽준 대표,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정운찬 국무총리, 현재의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다. “확실한 지지층인 영남에다 충청까지 잡아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친이직계 의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소액주주로 집권 여당의 CEO가 된 정 대표는 2012년 대선까지 폭발력을 미칠 세종시 문제를 잘 처리한다면 여권 주류의 확실한 대권 후보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최근 사무총장 인선 논란 등 당 안팎으로 어려운 정 대표가 이번 세종시 수정안을 계기로 친이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싸움을 걸고 있다”(친박계 초선의원)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을 위해 세종시 문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순 있어도,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치 양보없는 대권 잠재후보들

▲ 지난 1월 20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정몽준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photo 조선일보
지난 1월 18일 박 전 대표는 정 대표를 겨냥한 듯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 것은 애국이고, 원안을 지키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각인데 크게 잘못됐다. 사고 자체에 판단오류가 있다”며 비판했다. 그는 “정 대표도 불과 얼마 전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는 것은 변함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지금은 안 된다고 하느냐”며 “당대표가 이런 식으로 해서 당이 신뢰를 잃는다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강한 비판에 정 대표 측은 상당히 불쾌해 했고, 친박 진영은 “싸움은 정 대표가 먼저 걸었다”고 했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기자들이 “정 대표가 중국 고사인 미생지신(尾生之信)을 인용해 박 전 대표를 (융통성이 없다고) 비판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미생지신은 정 대표가 지난 1월 14일 당 회의에서 끄집어낸 중국 고사다. 정 대표는 “집권여당인 우리 당이 세종시 문제와 같은 주요 국정 현안에 있어 심각한 내부 갈등을 보인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결국 익사했다”고 했다. ‘정치적 신의와 약속’을 강조하며 세종시 원안 입장에서 미동의 변화가 없는 박 전 대표를 ‘미생’에 비유해 비판한 것이다.

당시 당 안팎에서는 “정 대표가 박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당내 입장이 점차 양극화되고 있어 중도적인 입장이 설 곳이 없는 상태로 변하고 있는 만큼, 주류 측의 확실한 지원을 받기 위해 박 전 대표와의 대립을 무릅쓴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정 대표의 ‘미생지신’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미생은 (비가 와서 떠내려가더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진정성이 있어 죽었어도 귀감이 됐다. 그 애인은 평생을 괴로움 속에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2002·2007년 대선 때도 ‘앙금’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날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 대표와 박 전 대표.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2002년 남북통일축구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회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성사된 것이다. 정 대표는 당시 축구협회장으로 경기를 주관했다.

그 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정 대표는 박 전 대표에게 ‘공개 러브콜’을 보냈지만 거절 당했다. 두 사람은 그해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명예선대위원장(정 대표)과 한나라당 선대위원장(박 전 대표)으로 맞붙었다.

4년 뒤인 2006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한나라당 대표직에 오른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 영입을 위해 정 대표 측과 접촉했지만, 2002년 ‘앙금’ 때문인지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박 전 대표 측은 정 대표를 캠프에 끌어들이려 물밑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중립을 지키다 대선 직전 이명박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두 사람의 최근 접촉은 지난해 9월 정 대표가 당대표로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정 대표는 박 전 대표를 만나기 전에 구내 이발소에 들러 머리정리도 다시 하고, 장소 선정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단독회동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10월 재보궐 선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고, 심지어 ‘정정 브리핑’까지 해야 했다. 정 대표 측은 박 전 대표가 정 대표에게 “(당 운영을) 잘하고 계시다”는 말을 했다고 언론에 알렸지만, 곧바로 박 전 대표는 측근을 통해 “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앞으로 잘하시라고 했다”며 정정을 요구했다.

2개월 뒤에는 박 전 대표가 기자들에게 “정 대표와 전화하기도 겁난다. 제가 안한 이야기가 자꾸 (정 대표 측을 통해 기사로) 나가서”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내 ‘세종시 여론수렴특위’에 친박 인사들을 참여시키려고 정 대표가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했는데, “나와 의논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박 전 대표의 답변이 “알았다”로 일부 언론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 대표 측은 “다른 의원이 언론에 잘못 알린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해 박 전 대표 쪽과 접촉할 계획이 없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쪽과 만나기만 하면 말이 잘못 나갔다고 혼나고 해서, 무서워서 못하겠다”며 ‘앙금’을 감추지 않았다. 


/ 신은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momof@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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