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2.09 02:44
鄭총리 해임안 들고 親朴에 손짓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野圈)이 꺼내 든 '정운찬 총리의 해임건의안 카드'는 다목적 카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념적 기반과 지지 기반이 서로 다른 야당들이 한 가지 이슈를 놓고 결집하는 효과를 낳을 뿐 아니라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간의 분열을 겨냥한 전략이 내포돼 있다. 민주·자유선진·친박연대·민주노동·창조한국·진보신당 등 야 6당 의석을 다 합해도 119석으로 해임건의안 의결정족수(149석)에 턱없이 모자란데도 이를 밀고 가는 것은 '야는 뭉치고, 여는 분열시킬 호재'라는 판단 때문이다.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한나라당 내 친박계와는 어떠한 형태의 공조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남의 당 내분을 이용하는 것은 정치 도의상 맞지 않다"고 했다.
- ▲ 머리 맞댄 野 4당 야 4당 대표들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나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 문제를 의논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창조한국당 송영오 대표./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그러나 내부 기류는 다르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정 총리 해임건의안은 우리보다 저쪽(한나라당)에 결정적인 흠집을 낼 수 있는 게임"이라고 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저러고도 같은 당이고 동지라 할 수 있나. 깨끗이 갈라서는 것이 국가 발전에 옳은 것 같다"고 했다. '친이·친박은 헤어지면 공멸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못 갈라선다'는 전제가 깔리긴 했지만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을 파고든 언급이었다.
여기에 2012년 대선 경쟁구도의 변화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 관계자들은 현재의 차기 주자 구도론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여당 내 친이·친박 싸움이 격화돼 갈라서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야 관계자들의 솔직한 속내다. 그리고 야 일각에선 여권이 분열돼 박 전 대표가 독자 노선을 걷게 될 경우 연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저울질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야권에 유력한 차기 주자가 부상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막판에 박근혜와 함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박 전 대표 의중과는 무관한 일방적 구상이고, 대다수 민주당 관계자들도 "혈액형(정체성)이 다른데 어떻게 피를 섞을 수 있느냐"며 "가능성 0%"라고 펄쩍 뛰고 있다.
아울러 "이번은 우리가 빚을 갚을 때"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무총리는 아니었지만 국무위원의 해임건의안 통과로 인해 곤경에 처했던 경험을 민주당도 갖고 있다. 지난 2001년 9월 한나라당은 당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대북정책 기조를 문제 삼아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자민련 소속 의원 대다수가 한나라당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그 결과 3년7개월여간 지속됐던 'DJP(김대중 김종필) 공조'가 붕괴되고 이후 DJ정권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주당에는 뼈저린 기억인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해임 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만 된다면 2001년 상황이 재연되고 정국은 폭발할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가 박 전 대표의 유력 경쟁자를 탈락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현재 의석 분포상 한나라당이 끝까지 상정을 막는다면 동원할 방법이 없다는 게 민주당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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