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달고 시장실 없애고… 청탁 방지 대책도 가지가지 "대책이 있나… 양심의 문제"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집무실로 찾아와) 귀엣말을 하며 봉투를 꺼내주려 한다"며 "(일일이) 말하기 어려워 아예 CCTV를 달았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지난 3월 초 녹음 기능을 갖춘 CCTV를 집무실 천장에 설치해 면담 장면과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이런 사례는 성남시뿐만이 아니다. 각종 인·허가권을 시·군·구에서 쥐고 있고, 그 정점에 기초단체장이 있다 보니 상당수 시장·군수·구청장들도 이런 유혹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과 비슷한 권한을 가진 기초단체장 중 본지 설문조사 응답자의 80%(134명)는 금품 유혹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응답했다. 일부는 "서울이나 수도권 등 규모가 큰 대도시 이야기지 시골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춘석 경기 여주군수는 "한 기업체 사장이 와서 자료를 주고 갔는데 열어 보니 100만원가량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며 "비서실 직원을 통해 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성 서울 구로구청장은 "작년 7월 취임 후 관내 사업체 사장들이 '후원하겠다'며 돈을 주려 했다"며 "그 돈으로 구민들 취직이나 시켜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은 "작년 11월 관내 한 단체 이사로 있다는 중년 여성이 찾아와 '뭘 좀 준비했다'며 가방에 손을 넣기에 '그거 가방에서 꺼내면 앞으로 안 만나겠다'고 호통쳤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강원도 한 시장은 "건설업체에서 관내 사업을 수주했다고 찾아와 300만원이 든 봉투를 줬다"며 "시 향토장학금 담당자를 불러 장학금으로 넣고 영수증 처리했다"고 말했다.
송숙희 부산 사상구청장은 "청소·환경업체에서 명절날 떡값 정도 돈 봉투를 들고 오기에 돌려보냈다"고 했다.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도 "지역 유지가 '용돈이나 쓰라'며 후원금을 주겠다고 해 정중히 사양했다"고 말했다. 경북의 권영세 안동시장과 최병국 경산시장, 임광원 울진군수, 이중근 청도군수, 한동수 청송군수도 "(내게) 금품을 전달하려는 사람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북의 이한수 익산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 김호수 부안군수 및 서울의 박홍섭 마포구청장과 김우영 은평구청장도 수차례 '돈 봉투 거절'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나동연 경남 양산시장은 "취임 초 축하 인사한다고 1000만원과 500만원을 각각 건네시려는 분들이 있어 장학재단에 기부하도록 권유했다"며 "나중에 이 기부 내용을 시보(市報)에 실었더니 소문이 나 이젠 돈 봉투 내미는 사람이 아예 없어졌다"고 했다.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은 "집무실에서 외부인과 면담할 때 무조건 담당 공무원을 배석시키고 기념촬영을 해 방문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와 전북 김제시는 구청장과 시장 집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밖에서 볼 수 있게 유리로 벽을 만들었다. 이건식 김제시장은 "복도에서 언제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어 부정행위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고남석 인천 연수구청장은 구청장실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이인재 경기 파주시장도 "외부인이 오면 방문을 열고 얘기 나눈다"고 했다.
- ▲ 권민호 경남 거제시장이 민원실 한쪽 탁 트인 공간에서 직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권 시장은 올해 초 시장실을 없앤 뒤 민원실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그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뇌물 전달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거제시 제공
◆"청탁 안 통하는 분위기 조성이 근본 대책"
기초단체장들은 근본 대책으로 "청탁이 통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광준 강원 춘천시장은 "워낙 깐깐하다고 소문이 나니 아예 찾아오지도 않더라"고 했다. 양기대 경기 광명시장은 "뇌물이건 인사청탁이건 들어오는 즉시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더니 아직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홍섭 서울 마포구청장은 "아직도 '공무원들이 다 그렇지'라며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외부 업자들이 많다"며 "내부 자정(自淨) 분위기가 확산되면 이런 뇌물 시도조차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민호 경남 거제시장은 올해 초 시장실을 없애고 민원실 한쪽에 탁자를 놓은 뒤 그곳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 이기순 강원 인제군수는 군수실과 관사 입구에 '감사한 마음만 받겠습니다'라고 써 붙였다.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건설 관련 민원인이 오면 아예 만나주지 않는다"고 했다. 김호수 전북 부안군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깨끗하게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니 자연스레 아무도 오지 않더라"고 했다. 나소열 충남 서천군수는 "별도 대책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양심의 문제"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