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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취임 1년’ 서울시장 오세훈의 리더십(조선일보)

말글 2007. 7. 23. 00:17
[포커스] ‘취임 1년’ 서울시장 오세훈의 리더십

  • 오세훈 서울시장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6월 25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시정 질문에 나선 김현기 서울시의원(한나라당)은 서울시의 소각장 광역화 정책을 “군사독재 때도 없던 신종 21세기 독재적 발상”이라면서 오세훈 시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이 정책은 강남구·양천구 등 소각장이 설치돼 있는 곳이 인접한 자치구의 소각 쓰레기를 처리하는 대신 시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한 것으로, 일부 주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추진 중이다.

    오 시장은 잇단 질문에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동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김 의원이 “자만이 넘쳐 합리적 판단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하자 오 시장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자제하라”고 했다. 두 사람 간 고성이 오갔고 의장석에 있던 김기성 부의장이 중재에 나섰다.

    평소 오세훈 시장의 스타일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날 상황이 놀라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 시장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굽히거나 대충 타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결정하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소각장 광역화’ 문제도 그렇다. 오 시장은 소각장 광역화로 쓰레기량을 줄이면 2022년 수명을 다하는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이 2044년까지 연장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실은 한번 결정한 뒤 밀어붙이는 스타일 때문에 이뤄낸 것도 많았고, “융통성이 없고 정치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은 7월 1일 시장으로 취임한 지 1주년을 맞는다. 실험대에 오른 ‘서울시 CEO 오세훈’이 보여준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시장으로 취임한 뒤 첫해 치른 ‘신고식’ 치고는 1년간 굵직굵직한 사안이 많았다. ‘무능 공무원 3% 퇴출’ ‘은평 뉴타운 분양가 논란’ ‘용산민족 공원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담판’…. 어느 것 하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취임 때부터 오 시장이 강조해온 ‘창의(創意)시정’ 역시 공무원의 마인드를 바꿔야 하는 간단치 않은 작업이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오세훈 시장은 지난 6월 27일 “3년 안에 1만여명의 서울시 본청 소속 공무원 중 13%인 1300명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퇴직 등으로 줄어드는 인력 중 상당 부분을 충원하지 않는 ‘소극적 의미의 인력감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무능·태만 공무원 퇴출제’에 따른 서울시의 ‘인사개혁 2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시가 포털사이트 다음·파란과 벌인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은 오 시장이 추진한 정책 중 ‘무능 공무원 3% 퇴출’을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로 꼽았다. 하지만 시청 내부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측근 중에도 “오 시장의 젠틀맨 이미지나 인간 존중 리더십이 훼손을 당할 것”이라거나 “내부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한두 달 정도 매맞고 가자”고 했다. 취임한 뒤 첫 6개월 동안은 창의시정으로 마인드 혁신을 꾀하며 ‘당근’을 써온 그가 ‘채찍’을 들고 나선 것이다.

    요즘 서울시는 도시경쟁력 강화와 서울시민의 행복 증진을 목표로 한 ‘창의시정’이 체질화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초기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공무원 마인드를 바꾸겠다는 발상은 좋지만 비현실적”이라거나 “당장 실효를 거두기 어려우니 고생만 하고 티도 안 날 것”이란 내부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오 시장은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없더라도 내가 4년간 터를 닦아놓으면 다음 분이 안 할 수 없지 않겠냐”고 했다.

  • 지난 5월 중순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대도시 기후변화 리더십 그룹 (C40) 총회에서 오세훈 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서울시)
  • 그는 한번 결정한 것은 집요하다 싶을 만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한번 한 말은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바꾸지 않기 때문에 지인들은 그를 ‘확신범’이라고 부른다. 오 시장은 2000년 5월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심사숙고, 또 심사숙고해서 결정한다. 결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진하는 게 내 모토”라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가 “중요하다”고 말한 사안은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디자인 경쟁력을 얘기하건, 장기 전세주택 개념을 얘기하건, 상대방을 설득하고 주장하는 논리가 명확히 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을 세계 10대 도시로 거듭나게 하려면, 서울시를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공무원 개인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식이다. ‘창의시정’이나 ‘무능 공무원 3% 퇴출’ 모두 한 가지 맥락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해선 ‘말에 대한 편집증이 걸렸다’ 싶을 정도로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를 시장으로 맞이한 서울시 공무원은 ‘시민 고객’ ‘창의 유전자’ ‘디자인 혁명’ 같은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야 했다.

    그는 지난 1월 인터뷰에서 “리더가 열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부르짖으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따라오게 돼 있다”라며 “속도가 더뎌질지는 몰라도 반복해야 하고, 그러려면 본인 스스로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결정한 사안을 밀어붙이긴 하지만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아니다. 수차례 거듭되는 합의과정을 거치고 자발적 참여를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일 처리가 늦어지고 때론 지지부진해 보이기도 한다. 시청 공무원 사이에선 “차라리 명령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게 더 편하다”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 지난해 9월 오 시장은 은평 뉴타운의 후분양제 전환을 발표하면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발표 같아 보였지만 실은 오랜 소신의 반영이었다. 그는 2004년 초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변호사로 지내던 2005년 하반기부터 후분양제나 원가공개 등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는 사석에서 “몇억원짜리 집을 구입하면서 직접 보지도 않고 고를 수 있겠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시청 공무원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고 지시하진 않았다. 취임 후 주택국에 “검토해보라”는 주문만 했을 뿐이다. “어렵겠다”는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가 올라오면 “다시 이런 식으로 검토해보라”고 했다. 그래도 논의가 제자리걸음일 때는 담당부서나 담당자를 바꿔가며 토론 과정을 거쳤다. 결국 수개월 후에 원가공개와 후분양제 안을 발표했다. 발표 직전엔 회의를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고, 월요일 발표를 앞두고선 일요일 밤 늦게까지 회의를 열었다. 최종 발표문안이 만족스럽지 않자 예정 발표 시각인 오전 10시를 11시로 1시간 미뤘다. 그리고는 1월 2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서울시 종합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논의와 분석 과정에서 일 처리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주택국과 SH공사 라인의 일부 담당자가 교체됐다.

    오 시장은 부드러운 겉모습과 달리 철저한 원칙론자다. 지난 6월 18일 그는 서울시에서 열린 ‘창의시정 실행보고회’에서 기초질서 지키기를 강조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기초질서 지키기가 느슨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기초질서 위반과 타협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여러분이 보여주십시오.” 그는 ‘타협은 없다’는 식의 표현을 곧잘 쓴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앞둔 오세훈 시장 후보의 캠프엔 ‘3무(無) 캠페인’이란 게 있었다. 밥, 종이컵, 담배가 없는 캠프란 말이다. 유권자에게 밥을 안 사고, 환경보호를 위해 종이컵을 안 쓰고, 금연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내린 ‘종이컵 금지 명령’ 때문에 플라스틱 컵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닦는 자원봉사자를 따로 둬야 했다. 국회의원이던 2004년 초 “당이 거듭나기 위해선 인적 청산이 불가피하다”면서 “나부터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도 원칙론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매사 업무를 꼼꼼하고 치밀하게 챙기는 편이다. 서울시의 한 국장급 간부는 “변호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시정 업무도 사건 수사기록을 챙기듯 한다”고 했다. 학습능력이 워낙 뛰어난 데다 사안별로 다 꿰고 있어서 “시장이 너무 자잘한 것까지 챙기다 보면 큰 사안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수위를 낮추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6월 19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시민고객과 시장과의 대화’ 자리. 시민 대표들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통 안내를 받으려고 교통방송 라디오를 틀어보면 대담 프로그램이 방송 중일 때가 많아요. 이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셋째 아이를 낳으면 무엇을 해주겠다는데, 보육 지원은 거의 없습니다” “장기전세주택 가구 수를 확대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는 이미 예상 답변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료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수치까지 대가며 술술 답했다. 오 시장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국정감사를 법률 소송하듯 준비하는 바람에 보좌진이 보통 애를 먹은 게 아니다. 질문 1개당 준비하는 자료가 A4 용지로 30쪽이 넘었다. 예상 답변 한두 가지를 써내면 그는 “이럴 땐 어떻지?” “저런 경우엔 뭐라고 답해야 하지?” 라며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했다. 그의 한 보좌진 출신은 “재판 받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1996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당시, 아파트 일조권 관련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낸 것도 이런 끈질긴 독종 스타일 덕분”이라고 했다. 16대 국회 때 돈 안 드는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법, 일명 ‘오세훈법’을 통과시킨 것도 이것과 맥을 같이한다. 서울시 창의시정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았던 삼성테스코의 이승한 사장은 오 시장에 대해 “굉장히 질긴 ‘질경이’ 같은 리더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년간 서울시가 진행한 일을 돌아보면 이해 당사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갈등을 벌여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오 시장의 측근들은 “ ‘좋은 게 좋다’는 식이 아니라 ‘옳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식이라서 솔직히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매연을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 차량을 보급하고, 이를 위해 가스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문제도 그랬다. 서울 평창동 주민 일부가 반대하자 오 시장은 직접 이들을 만나 천연가스 충전시설의 안전성과 필요성에 대해 설득했다. 지난 5월엔 “아예 시청 별관에 천연가스 충전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안전성을 알리자”고 했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의 ‘서울추모공원’ 묘지 건립 문제도 지역민과 충돌이 있었다. 일부 주민이 반대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는 1심, 2심에서 승소했고 지난 4월 12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오 시장은 “서울시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며, 다만 추진 시기와 방법 등의 사항에 대해 주민과 충분히 대화해나갈 것”이란 입장이다.

    건설교통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산공원 전체를 녹지화해야 한다”는 서울시 입장도 관철시켰다. 오 시장은 국회의원 때부터 추진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 반발을 사면 ‘이러저러한 점은 일단 유예하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밀고 당기기’를 한 뒤 추진하는 바를 이뤄왔다. 지난 1월 말 오세훈 시장은 인터뷰 자리에서 “리더가 리더인 이유는 어려운 일을 뚫고 하기 때문”이라며 “하기 쉬운 것을 찾아다니며 일하는 건 리더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서울을 홍보해달라” “더 많은 분이 서울에 와서 돈 많이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서울시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서울시장으로서 첫 1년은 일단 합격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이나 세운상가 재개발로 인한 노점상 철거 문제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서울시 CEO 오세훈’의 리더십이 어떻게 진화하고 서울시의 경쟁력을 키워낼지 그의 ‘시민고객’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


    인간 오세훈은

    언성 높이지 않지만 질책할 땐 강하게

    훤칠한 외모에 언변이 뛰어난 오 시장은 ‘연예인’ 대접을 받는 인사로 통한다.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에도 “공약은 필요없다. 오세훈 오빠를 지지한다”는 여성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 대목을 그는 가장 부담스러워한다. ‘이미지 정치인이라 콘텐츠가 없어 보인다’는 표현을 제일 싫어한다. 실제 그는 이벤트 같은 보여주기에 약하다. 한 측근은 “가톨릭 신자라서 선거 때 성당에 가자고 하면 ‘평소에도 잘 안 가는데…’ 하고 못 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때문에 오래된 지인은 “저렇게 임기응변이 잘 안 되는 정치인도 드물다”고 한다.

    그는 배우는 걸 체질적으로 즐기는 전형적인 ‘범생이’다. 시장으로 취임한 뒤로는 못 나가지만 와인모임, CEO모임, 교수모임 등 수많은 모임에 나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발표를 듣고 ‘배우기’를 즐겼다. 요즘 영어 실력이 부쩍 는 것도 영어 개인레슨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해외 순방에서도 다음 방문지로 옮기는 차 안에서 자료를 챙기고 공부한다.

    여간해서 언성을 높이는 법은 없지만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하는 편이다. 서울시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의 발언은 “지난번 보고와 바뀐 게 없네요”다. 웃음기 없이 “무슨 일을 이렇게 하십니까” 정도로 말하면 그가 굉장히 강하게 질책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 시장은 정치인이라는 잣대로 볼 땐, 감점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는지 모른다. 카리스마나 인간미로 상대방을 휘어잡는 스타일이 아니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부족하다”는 평이 늘 따른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상갓집을 찾아가거나 경조사에 화한을 보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주변에서 나온다. 그의 지인은 “사소한 일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자기 위치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임하는 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