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23일 당의 4·9총선 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라며 “과거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해 얻은 천금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어리석은 공천”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국회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힌 뒤 “작금에 한나라당에서 일어나는 공천파동과 당 개혁 후퇴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책임은 당을 더 개혁하지는 못할망정, 이미 개혁되어 있는 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시킨 당 대표와 지도부가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올해초 공천시기 논란과 당 지도부의 공정 공천 약속을 언급한 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속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다”면서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다. 국민도 속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공천 결과를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의 공천은 국민들에게 3가지 중대한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준 계기였다”며 “우리 정치의 수준, 경선에서 지면 끝이라는 것, 그리고 능력이나 국가관보다는 어떻게 해야 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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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조선일보 사진부 VJ 이재호 기자superjh@chosun.com
박 전 대표는 “저는 대표시절 정치발전을 위해 힘들었지만 당 대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주었다”고 강조한 뒤 “하지만 이번 공천에서 상향식 공천은 사라지고, 경선은 한군데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헌당규는 무시되었다. 당권-대권 분리도 지켜지지 않았다. 불공정한 공천문제로 당이 아우성인데, 심지어 당 대표가 비례대표 영입에 대해 대통령에게 칭찬받았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실 것”이라고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우회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당의 공천이 이렇게 잘못되게 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했어야 할 의무가 있는 당 대표와 지도부가 정치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없고, 무능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강재섭 대표와 당 지도부를 강력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총선 지원 유세여부에 대해서는 “제 선거도 있고, 지원유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이 결성한 ‘친박연대’나 ‘무소속 연대’에 대해서는 “제가 그 분들을 지원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 분들은 참 억울하게,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건 간에 잘되기를 바란다. 그분들의 권투를 빈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17대총선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렇게 열망하던 정권교체를 이루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었건만 그동안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함께 노력했던 분들이 이번에는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이유도 모른 채 공천조차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비통한 심정”이라며 “억울하게 희생된 그 분들은, 당 지지도 7%를 50%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손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누빈 사람들이다. 집권 여당과의 선거에서 40 : 0 의 신화를 만든 주역들이고 10년 만에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그러한 공신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당을 나가도록 만들고, 그 뒤에 대고 몇 명 나간다고 당이 안 깨진다, 은혜를 모른다는 말까지 하는 것은 그 분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누가 책임감을 가지고 당을 위해 헌신하고, 어떻게 정당이 발전하겠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야당 때건 집권여당이 되었건 천막당사의 초심을 잃어서는 안된다”며 “지속적인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을 다시 꼭 바로 잡겠다. 그것이 국민과 당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고,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