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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우리말" 알고 보면 "거짓말"(동아)

말글 2009. 2. 28. 13:45

MBC "우리말" 알고 보면 "거짓말"

 

오늘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 밥을 먹으면서 TV를 켰습니다.

  MBC가 나오던군요.

  그러다가 그만,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을 몰랐거든요.)

 

  ‘우리말 나들이’라는 코너에서 북한말을 알려준다고 하기에 밥 먹다가 숟가락을 들고 보았더니 이런 것이 나왔습니다.

 “남한말 미소(微笑)는 북한 말로 볼웃음이라고 합니다. 남한말 보조개는 북한말로 오목샘이라고 합니다.”

 

  이런~오목샘이라~

  도대체 북한 사람에서 최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처음 들어보는 저런 황당한 북한말이 어디서 나왔죠?  누구의 창작품인지 모르겠으나 상상력 한번 끝내줍니다. 그런데 궁금한 거는 보조개 정도를 오목샘이라고 표현하면 도대체 내 몸에는 오목샘이 몇개인거지?

 

  그리고 미소가 볼웃음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입니다. 북한에서도 미소를 미소라고 하거든요. 볼웃음은 "입을 벌리거나 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볼 위에 표정으로 드러내는 웃음"이라는 뜻으로 미소와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코웃음, 눈웃음과 같은 의미죠.

  이것은 "남조선에서는 미소를 코웃음이라고 한다"는 것과 똑같은 식입니다.

 

  지상파 방송이 저런 황당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하도 기가 막히고 북한 언어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발동돼서 컴퓨터를 켜고 저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매일 오전 10시55분과 5시30분에 2번씩 하네요.

  그중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겨레말'이라면서 북한 단어 한개 씩 소개하는 것 같았습니다.

  컴퓨터를 켠 김에 올해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그냥 대충 1년만 본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북한말 쭉 흩어보았습니다. 잘 정리돼 있어서 5분~10분이면 1년 2개월 동안 나왔던 단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한 말들이 많더군요.

  

  입장표→북한어로 ‘나들표’(실제 북한에선 입장권), 스크랩북→오림책과 같은 ‘창작된 말’은 당연히 황당한 것이고...

  내가 북한에 과연 저런 단어가 있었던지 처음 들어서 논평할 수없는 단어도 여럿 눈에 띄였고...

 

  남편은 북한에서 세대주라고 한다는 엄밀히 말했을 때 정확치 못한 정보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남편을 세대주라기도 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게 왜 정확치 못한지 비유를 들겠습니다.  한국에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북한 TV에서 “우리말 아내(북한말로는 ‘안해’입니다)를 의미하는 남조선 단어는 ‘집사람’입니다”라고 하면 틀린 말이 분명합니다. 왜냐면 남조선에서는 아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 집사람을 더 많이 쓰진 않거든요. 즉 북한말 아내→남한말 집사람 이런 식으로 대칭시키는 것처럼 황당한 것입니다.

 

  또 다른 오류도 있습니다.

  반찬(飯饌)의 북한말→ 찔게 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찔게는 북한의 지방 사투리입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고추의 남한말→꼬치

  선생님의 남한말→슨상님

  하고 방송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역시 황당한 일입니다.

 

  남북의 차이점을 좁히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차이점을 더욱 벌이는 이런 프로그램은 없애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 합니다. 북한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알고 그러던 모르고 그러던 어쨌든 수많은 시청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반복적으로 주입해 왔으면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북한말을 잘 모르겠으면 앞으로 제게 미리 메일을 주면 제가 자원봉사로 교정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그까짓 것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을...

 

  그렇지만 이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니 이 부분은 많이 기막혔습니다. 뭐냐면 1년도 안됐는데 같은 말을 새 아이템처럼 또 방영하는 것입니다. 이건 시청자에 대한 사기입니다.

  

  불과 1년 치만 흩어보았는데 그런 사례가 많았습니다.

  

  ‘세대주’는 ‘남편’이란 뜻이라는 것은 2008년 5월 20일에 내보내고 불과 반년 뒤인 2008년 12월 18일에 또 내보냈습니다. 하루 한개 단어만 소개하는데 불과 반년 전에 소개된 말도 기억을 못해서 겹치기 방영하다니...

  

  나를 오늘 쓴웃음 짓게 만든 “남한 ‘미소’/ 북한말 ‘볼웃음’”은 흝어보니 작년 6월 13일에 이미 나간 아이템입니다.

  이 뿐입니까.

  올 1월 9일에 방영된 북한말 ‘오림책’은 작년 2월 15일 방영분,

  올 1월 16일에 방영된 북한말 ‘볶음판’은 작년 2월 22일 방영분이었습니다. 2008년 이전 것을 살펴보지 않아서 그렇지 '볼웃음'이나 '세대주'같은 단어를 도대체 몇 번이나 재탕해 먹었을지 궁금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 코너에서 알고 있는 북한말이(물론 엉터리가 많지만) 도대체 100개는 되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엄청 많거든요. 위의 단어들이 그만큼 중요해서 두 번 세 번 방영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불과 반년 전에 방영된 것도 기억 못한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해이되고 대충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언론에 몸 담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언론은 당연하고, 심지어 일개 블로거도 옛날에 썼던 포스트 그대로 다시 재탕해 포스팅하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공중파 방송에서 그것도 일년 안에 4번씩이나 옛날꺼 반복해 써먹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참 쉽게도 벌어먹는 언론인들도 있구나 하는 부러운 마음에 제작진을 한번 클릭해 본 순간... 저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계속 황당하기만 했네요.)

  5분도 채 안되는 방영분에, 한두 단어의 의미를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을, 거짓 정보 제공에 몇 달 전에 방영된 단어 재탕 또 재탕 방영하면서도 무려 무려 7명이나 이 프로그램에 달라붙어서 만든다는 사실...

 

  제가 방송에 문외한이라 한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최소 인원이 몇명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7명이나 필요할지는 여러분이 직접 한번 보면 판단이 설 줄 압니다. 물론 북한 단어 전문 방영하는 코너는 아니지만, 다른 단어도 크게 품이 들어보이지 않습니다. 저렇게 6개월 전 것을 재탕하는 것 봐서는 크게 정성을 쓰는 것 같지 않고 대충 만드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신뢰가 중요한 가 봅니다.

 

  어떻게 쓰던 말던 MBC 돈이지 내 돈이냐 하고 생각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저기 드는 돈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