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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실거리는 말(김정섭)

말글 2009. 5. 17. 13:05

굽실거리는 말

 

                                                           김정섭(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김정섭 선생님은 우리말 바로쓰기' 회장,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로 '우리말 바로쓰기 사전'(2009. 지식산업사 발간) 등을 펴내신 분으로 다음은 '우리말 우리얼' 4월호(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발간)에 게재된 "틀린말 바로잡기"에서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한때, 고위층이라는 말이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 적이 있었다. 민주화 바람에 휩쓸려 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옛날 임금 앞에서 굽실거리면서 하던 말을 역사 고설이 아닌 우리 나날살이에서 들을 때는 참으로 안타깝기도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말에는 때와 곳과 사람에 따라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쓸 수 없는 것이 있다.

 

내손으로 뽑은 우리의 지도자를 공손하게 섬기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도리다. 그러나 그에게 '권좌'에 앉아 제 마음대로 백성을 짓밟고 쇠사슬로 얽어매도록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스로 짓밟혀도 좋은 '민초'라고 굽실거리면서 눈치나 보고 있다면 '대권'을 쥔 자. 누군들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백성 위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려 하지 않겠는가?

 

'국부'라는 말을 우러러 받들어 올림으로써, 다시 빛을 찾은 우리 겨레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은 한 무리의 든사람들(지식층)은 다시 '위대한 영도자'를 '옹립'하여 기어이 '시해'로 몰아 넣었다. 이제 또 민주화라는 '하사품'에 감읍하여 정승 판서를 꿈꾸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독대, 친정 체제, 수렴청정, 낙점, 간택 따위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민주 공화국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다.

 

나라와 겨레를 다시 한 번 허방에 빠뜨리려는 사람 말고는 누구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대표'를 '왕'으로 '옹립'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알맞은 말이 없으니 비겨서 쓸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도 안 될 말이다. 우리의 목을 올가미로 죄는 말이고 '대표'를 '지배자'로 만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인인 백성을 하찮은 '민초'로 떨어뜨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글깨나 쓰고 말깨나 하는 사람은 다 든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고 난사람(지도층)들이다. 이분들의 말은 거센 바람은 아닐지라도 건들바람쯤은 된다. 바람이 불면 풀들은 고개를 숙인다. 바람 부는 쪽으로 몸을 구부린다. 백성들은 그들을 믿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든사람, 난사람들은 자기가 히는 말이 끼치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나라를 벼랑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고 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도 누가 '민초'라고 한다고 해서 스스로 '민초'라고 앝잡아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표자를 공경은 하되 누가 '국부'라고 한다고 덮어놓고 굽실거리며 따라 '고위층'이니 따위로 불러서는 안 된다.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요 떳떳한 겨레의 한 사람임을 깨닫고 눈먼 망아지 요령 소리 따라 가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쓸 말, 못 쓸 말을 가려서 쓸 줄 아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모든 겨레가 말의 두려움을 알고 말을 바르게 부려 쓸 수 있는 말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누리게 되고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한다.


<정리 - '바른 선거와 깨끗한 나라'  이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