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후원하고 싶은 금배지는?(시사인) |
국회의원 207명이 꼽은 후원하고 싶은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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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8일 (금) 10:43:14
좀 생뚱맞게 들렸겠다 싶다. 4대강 사업이니 복수노조니 예산 심의니, 온갖 대형 이슈가 뒤엉켜 국회가 출구 없는 전쟁을 벌이던 와중에 여야 국회의원들은 뜬금없이 ‘말랑말랑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동료 국회의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당신이라면, 어떤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시겠습니까?”
<시사IN>은 지난 12월8~10일 사흘 동안 전체 국회의원 298명 중 현직 장관 4명과 의장단 3명을 뺀 291명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주고받는 사람이 주종관계로 얽히고 사과상자니 007가방이니 하는 음습한 물건이 동원되는 ‘정치자금’ 얘기가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좋아하는 정치인을 후원할 수 있는 정치후원금 제도 얘기다. 10만원까지는 연말정산 때 전액 세액공제가 되므로 클릭 몇 번이면 국고에서 좋아하는 정치인의 계좌로 10만원을 옮겨담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야 의원 1인당 후원 한도액인 3억원(전국선거가 있는 해 기준. 없는 해는 1억5000만원)을 채우는 데 3000명의 지지자면 충분하다. 국회의원들이 당선할 때 받은 표를 감안해보면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숫자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의원들은 이마저도 보통 일이 아니다. 연말이면 “10만원 어디 안 넣었으면 우리 후원 좀 해 줘”라는 징징거림을 곳곳에서 듣게 된다.
그래서 역으로 물었다. 후원금 달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진짜 줄 만한 의원이 누군지 시민에게 직접 추천해보라고. 자기 당에서 셋, 다른 당에서 셋 안팎을 꼽아달라고 했다. 거의가 당황했고, 많이들 웃었고, 몇몇은 화를 냈다. 중립 성향의 한 여당 의원은 “차라리 4대강이나 세종시 찬반을 물어보는 게 쉽겠다”라며 난감해했다. ‘진짜 패’는 숨긴 채 모든 동료의원에게 끊임없이 호의를 파는 직업인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어떤 의미로는 정책에 대한 찬반보다 더 내밀한 속내를 물어본 셈이다. 207명과 통화가 됐고, “답하기 곤란하다”라고 한 33명을 빼면 174명이 무기명을 전제로 이런저런 응답을 내놓았다. 추천사유도 각양각색이었다. 의정활동을 잘한다, 전문성이 있다, 인품이 훌륭하다, 당론에도 맞설 줄 아는 소신파다, 그 의원 후원금 정말 안 들어온다, 집에 빚이 있다더라, 내 술친구다 등등.
1위 김성식 의원, 21명 후원받아
결과를 받아보니 평상시에 정치권에서 관찰되던 양상과 다른 흥미로운 패턴이 적잖이 보였다. 우선은 초선의 강세가 눈에 띈다. 인지도가 낮은 초선이 후원금을 모으는 데 가장 애를 먹는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우리야 이제 (계좌를) 열어만 두면 차지만, 초선 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당내외 석 장씩 추천권을 초선의원에게 몰아줬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18대 국회의 ‘차세대 유망주’ 그룹이 부각됐다(아래 표). 전체 3위까지가 모두 초선이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모두 21명의 후원을 받아 선두에 올랐다. 한나라당 의원이 꼽은 자기 당 의원 순위에서 13명의 지지를 얻어 1위, 민주당이 꼽은 타당 의원 순위에서도 7명의 지지를 얻어 2위다. 자유선진당에서도 한 표가 나왔다. 여야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셈이다. 지난해 종부세 축소·감세 정책 등 정부 경제정책에 연이어 반기를 들어 한때 ‘당론반대 자판기’로까지 불리던 이력과 “한나라당에서 가장 왼쪽에 있다”는 평가를 떠올려보면, 민주당의 지지보다는 한나라당의 지지가 오히려 이채롭다.
선관위는 정치후원금 제도 홍보에 힘을 쏟고 있지만, 많은 국회위원이 여전히 후원에 목마르다. |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15표로 3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에서 6명, 한나라당에서 7명, 선진당과 민노당에서 1명씩 박 의원을 꼽았다. 동안인 얼굴 탓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박 의원도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차관을 지낸 중량급 초선이다. 어설픈 질문을 던졌다가 역공을 당해 한동안 ‘강의’를 듣고 나왔다는 기자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강단이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에서 차세대 유망주로 첫손에 꼽히는 세 사람이 이번 조사에서 나란히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그간 국회 내에서 떠돌던 평가가 수치로 입증됐다. 대중의 인정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지만, 일단 출발선에 설 자격은 받은 셈이다.
아마도 정당 구분 없이 의원을 추천해달라고 물었다면 결과는 이번 조사와 달랐을지 모른다. 정당의 의석 수와 당내의 인맥관계가 득표를 좌우하는 ‘심심한’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당에서 세 명 추천’이라는 변수가 마법을 부렸다. 정작 자기 당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고도 다른 당에서 추천을 휩쓸어 상위권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민주당이 그랬다.
4위에 오른 정장선 의원은 14표 중 12표를, 공동 7위의 우윤근 의원은 9표 중 7표를 한나라당에서 받았다. 특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대표적 온건파인 정장선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민주당 의원으로 첫손에 꼽혔다. 강경파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결과가 정반대다.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비정규직법과 복수노조 문제에서 연이어 정부와 충돌하는 추 의원은, 본인이 얻은 세 표를 모두 민노당에서 받았다. 정작 민주당에서는 정장선·우윤근 의원에게는 각각 한 표만을 줬고 추 의원은 아무도 추천하지 않았다. 정체성의 좌우폭이 가장 벌어져 있다는 평가를 듣는 민주당다운 결과다.
한나라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을 추천하면서 “합리적이다”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들었다. 반면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소신이 있다”라는 표현을 즐겼다. 생략된 말을 풀어 써보면, “민주당답지 않게 합리적이다” “한나라당답지 않게 소신이 있다”가 될 터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합리적 훼방꾼’과 ‘청와대 거수기’로 바라보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나마도 한나라당은 추천하는 다른 당 의원 상위 5인 모두를 민주당 의원으로 채웠지만, 민주당은 상위 6인 중 단 두 명만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다(표 2). 집권 여당이 제1야당에 보내는 기묘한 짝사랑인 셈이다.
통장을 막았더니 돈 주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의원도 있다. 공동 7위 최문순 의원은 정작 지난 7월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 사퇴서를 던지고 후원계좌를 닫아뒀다. 민주당에서는 자기 당 추천권 석 장을 아예 ‘사퇴 3인방’(천정배·최문순·장세환)에게 몰아준 의원도 세 명이었다.
“일단 박근혜는 해야 되겠지?”
조사결과를 들여다보면 한나라당 친이계와 친박계의 ‘조직문화’ 차이도 엿볼 수 있다. 친박계는 중앙집권조직이다. 좋게 말해 조직력이 끈끈하고 나쁘게 말해 일인지배체제를 연상시킨다. 설문에 응한 친박 의원 중 몇몇은 질문을 듣자마자 “일단 박근혜 전 대표, 그 다음은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박 전 대표를 추천한 이유를 기자가 묻지 않자(사실 그가 박 전 대표를 추천하지 않으면 그게 기사거리였다) 버럭 화를 내며, 박 전 대표의 정치철학과 정치후원금 제도의 취지가 들어맞는 이유를 한참이나 설명했다. 또다른 친박 의원은 질문을 듣자마자 “박근혜는 해야 되겠지?”라며 웃었다.
‘충성경쟁’의 결과는 확연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5명의 추천을 받아 정치후원금이 절실하지 않은 대선주자급 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당내 10위권에 들었다(표 2). 4표 이상을 받은 의원 12명 중 9명이 초선이어서 박 전 대표의 이름은 더 눈에 띈다.
반면 친이계는 각개 약진했다. 친이계의 큰 어른 격인 이상득 의원은 단 한 표를 받았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 계파 보스급 인물들이 원외인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친박계와 친이계의 정서가 다르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확실한 미래권력 후보인 박 전 대표를 향한 충성경쟁이 치열한 친박계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한 친이계 수도권 의원은 “저쪽(친박계)은 박근혜 브랜드 하나로 총선에서 살아남았으니 뭉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그보다야 독자생존이 가능해서 아니겠나”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동료 초선의원들의 이름을 열거하던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중진 이상은 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 양반들은 안 그래도 돈 많은데 뭐”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대놓고 말하기 민망한 것이 돈 문제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면 또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수가 없다. 평소 외부에 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던 의원들은 ‘민원성’ 인터뷰를 <시사IN> 취재팀에게 쏟아냈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은 “나처럼 숫기 없는 의원들은 지역이나 동창회에 가서 돈 달라는 얘기를 도저히 못 꺼낸다”라고 하소연하며 숫기 없는 초선의원 리스트를 추천 명단으로 줄줄이 읊어 희한한 ‘계파’를 만들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후원금 계좌를 채우려면 의정 활동할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희한한 구조가 됐다”라고 한탄했다.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은 아예 ‘후원금 구걸문화’라는 표현을 썼다. 성 의원은 “후원금에 의원이 정력을 낭비하게 하는 대신 국고에서 일정액을 주고, 대신 사용처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입구는 풀고 출구를 막자”는 논의는 국회에서 공감대가 확산되는 추세다.
모든 의원은 초선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초선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 조사에서 많은 의원이 눈에 띄는 초선의원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여성의원의 설움은 같은 여성만 안다. 적지 않은 여성의원이 추천 명단을 말하다가도 “가만있자 그 당에 여성의원이 누가 있더라…” 하며 특별히 챙겼다.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남자의원들은 동창회가 으싸으싸 밀어주는 문화가 있는데 여자의원들은 그런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돈 이야기를 꺼낼 곳이 더 적다는 하소연이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도 같은 당의 여성의원을 추천하며 “너무 맑아서 정치는 못 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설문에 응한 여성의원들은 의정활동의 출발점인 ‘돈 만드는 일’부터 남녀 의원의 출발선이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초선이라서, 숫기가 없어서, 여성이라서…
한나라당의 한 여성의원은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성의원이 주목받기가 너무 힘들다”라며 자기 스스로를 후원대상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 의원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자신을 추천한 의원이 여섯 명 나왔다. “내가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나”라는 ‘자뻑형’에서부터 “후원금을 반도 못 채웠는데 남들 줄 돈이 어디 있나”라고 푸념하는 ‘자학형’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인맥관리에 민감한 의원들이다 보니, 이번 <시사IN> 조사에 대해 경계하는 의원도 많았다. 무기명 조사인지 몇 번씩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야당 의원은 몇 명씩 추천하면서 정작 여당 의원은 추천하지 않겠다고 했다. 친분관계를 챙길 수밖에 없는 여당보다 야당 의원 추천이 마음 편하다는 거였다. 또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한참 기자에게 대답을 하던 도중 갑자기 말을 끊더니 “문자로 보내겠다”고 했다. 주위에 동료 의원들이 나타나자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동료 의원이 있는 자리에서는 대답하지 않으려는 의원이 많아 취재팀은 본의 아니게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웬만해서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기로 악명 높은 국회의원들이지만 이번 조사에는 적극 협조한 의원이 적지 않았다. 특히 취재팀이 정치후원금 기사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욕할 때 욕을 하더라도 일할 힘은 주고 나서 하자는 취지”라고 말하자 많은 의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 놓고 국회를 욕할 자격’을 얻으려면 5분만 투자하면 된다. 선관위는 올해에는 12월22일까지 기부한 정치후원금만 2009년 연말정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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