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개선 국민토론회
(전주=연합뉴스) 지방자치제도가 낳고 있는 각종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여론은 높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2000년에 서울에서 열린 지자제 개선 국민토론회 모습.<자료사진> doin100@yna.co.kr |
표 의식한 행정, 비리ㆍ방만운영으로 이어져
비리연루자 뽑지말자..깨어있는 주민의식 절실
(전주.대전=연합뉴스) 백도인 이은파 기자 = "현재의 정치 구조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겁니다".
관선 군수를 여러 차례 지내고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에는 전북지역의 민선 단체장으로 4년간 일했던 A씨는 "주민을 위한 행정을 고민하기보다는 '표'를 위한 정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선거에 대한 부담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는 관선시절과 달리 표로 먹고살아야 하는 민선시대에는 표를 의식한 '전시적 행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제 도입 이전에는 법과 원칙, 관례 등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행정을 했지만,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부터는 당선을 위해 이를 무시하는 일이 흔했다고 고백했다.
곳간(재정)이 비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보여주기식 사업을 추진하고 특별한 필요성도 없는 축제들을 무분별하게 만들어 개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A씨는 "어지간해서는 일을 해도 잘 표시가 나지 않고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워서 단기간에 내놓을 수 있는 '업적'을 찾는 데 눈길을 돌리게 된다"며 "솔직히 내 돈도 아니고 누가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아닌데, 빚내는 것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과정에서 전임 단체장이 추진했던 좋은 사업이 사장되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특히 전임자와 정적(政敵) 관계일 때는 '자칫 고생만 하고 남 좋은 일 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의도적으로 뭉개거나 흠집을 내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면서 행정의 연속성이 깨지고,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이 낭비된다"며 "결국 단체장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주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에도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A씨는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일부 농촌에서는 아직도 선거기간에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돈을 풀지 않으면 곧바로 표로 '응징'을 한다"며 "돈을 쓰지 않으면 당선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돈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농촌지역의 단체장일수록 주민의 경조사를 지극 정성으로 챙기며 불법으로 부조금을 내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한 구조이기 때문에 단체장이 어떻게 해서든 이 돈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이 비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주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단체장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이제는 주민 무서운 줄 알게 됐고 주민을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게 됐다"며 "이것만으로도 지방자치제는 성공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지방자치의 발전 방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관선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거쳐 민선 대전시장을 2차례 역임한 홍선기(74) 전 대전시장도 "자치단체장으로 일하다 보면 많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고, 저도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웠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자치제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려면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전 시장은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단체장과 지방의원"이라며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뽑아야 지방자치제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고 조언했다.
외형적인 틀을 갖춘 지방자치제에 알찬 내용을 차곡차곡 채우려면 능력 있고 생각이 올바른 사람이 소신 있게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리 연루자를 지방자치 일꾼으로 뽑아선 절대 안 된다. 비리 연루자들의 상당수가 또다시 사고 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느냐"며 "능력 있는 인재가 돈 안 드는 선거를 통해 주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흔들리는 지방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로는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꼽았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누구나 재임 중 번듯한 실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사업의 당위성을 확보하려고 온갖 논리를 들이대며 주민들을 설득하려 한다. 결국,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주민들의 견제와 감시뿐"이라고 덧붙였다.
부족한 지방재정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전 시장은 "충남에서도 천안과 청양의 재정 형편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지방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그 첫 번째로 지방적 성격이 강한 세목을 과감하게 지방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의회가 지자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꼽았다.
홍 전 시장은 "지방의원들이 정당 공천을 받다 보니 민생을 챙기는 일보다는 정당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지방의원들이 집행부를 견제하면서 생활정치를 실천하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sw21@yna.co.kr
doin100@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2/20 07:30 송고
희망정치시민연합 출범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4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알렌관에서 열린 '2010 지방지차 혁신을 위한 희망정치시민연합 출범식 및 기자회견'에서 백종국 대표최고위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0.2.4 jjaeck9@yna.co.kr |
`지방자치의 정치과잉' 사라져야
중앙.지방.시민분야 제도개선.의식변화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50% 수준의 지방자치에 불과했다".
15년째를 맞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중앙정부가 간과했던 지역의 자원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시기였다"는 적극적인 평가도 일부 있었으나 "자율성이 없는 무늬만 지방자치였다"는데 이론이 없었다.
이에 따라 극히 일부에서는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지방자치가 지역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현행 지방자치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선거 올인 지방정치' 혁파해야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의 지방자치제는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혹평한 뒤 "지방자치를 하면서 `미래효과'가 나타나는 정책이 아니라, 득표를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들, 즉 토목공사나 축제계획 등이 남발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염경형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도 "국민은 4년 동안 지방살림을 맡을 `살림꾼'을 바라는 것이지 중앙정치나 넘보는 `정치꾼'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지방자치가 되레 `정치과잉'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낙범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도 "지방자치제는 도입 직후부터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에만 이용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가세했다.
이런 현상을 혁파하려면 현행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상대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정치신인들의 대거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소성규 대진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선거법은 현직에 유리하고 정치신인에게는 불리하게 돼 있다"면서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소 교수는 "돈을 못쓰게 하면서 법정 선거비용 한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 현행 선거법은 이율배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최준영 교수는 "사실 주민들은 시.군.구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면서 "광역단체장 정도는 놔두고 나머지는 다 폐지하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광역.기초단체 3각 정립 필요"
현행 지방자치제가 `무늬만'이라는 혹평을 받게 된데는 중앙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문제가 됐다.
조유묵 마산.창원.진해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으나 중앙정부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예를 들었다.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기 힘든 본질적인 문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힘을 나눠갖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분점을 통한 상호연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낙범 교수는 "국가의 경쟁력을 지방의 경쟁력과 동일하게 보는게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중앙정부는 대외 활동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지자체간 협조와 조율을 통해 해결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국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라는 3자간 역할분담이 잘 돼야 하며, 이것이 바로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못박았다.
◇시민의식 바꾸고 제도개선 이뤄야
지방자치의 정치과잉, 중앙정부의 권한남용이라는 문제점 외에도 `낙후된' 시민의식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과 교수는 "이제는 주민들도 자치단체장들과 함께 지역문제를 함께 풀어나간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주민참여 행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재정 관련 서비스를 공동으로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전시행정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센터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 지자체 예산이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당공천제 등 제도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오재일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가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의 전리품을 나누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황성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간사는 "지방선거 후보가 특정 정당 소속 후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나온다면 단체장들과 의원들이 중앙당의 눈치를 보는 대신 지방행정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손동호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정당공천체 폐지와 함께 "각계 전문가들이 비례대표로 많이 참여해 지역의회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강원 이은파 고은지 우영식 민영규 최인영 홍창진 기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2/21 07:2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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