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한나라당이 8~10일 사흘동안 실시하는 개헌 의원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내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친이계와 친박계는 이번 의총이 잠복 중인 개헌이슈를 부각시켜 개헌 정국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느냐, 개헌의 추진 동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장이 되느냐의 기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이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좌담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한만큼 정치권이 소명 의식을 갖고 개헌을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친박계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이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8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회동 이후 해빙국면을 맞았던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관계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계파간 권력투쟁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대표 안경률)은 6일 이재오 특임장관과 소속 의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회동을 갖고 당 지도부에게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하는 등 의총을 앞둔 바닥 다지기에 나섰다.
이날 모임은 지난달 26일 열린 개헌간담회에 이은 2차 회동으로, 14명이 참석했던 지난 회동과 달리 70여명의 전 회원에게 통지됐다. 김영우·권택기·장제원 의원 등이 발제자로 나서 개헌의 당위성을 강조했으며 이재오 특임장관도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개헌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은 이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이 정치 형태, 이 헌법을 이대로 넘겨주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는 힘들다"며 "다음 정권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나라의 미래가 잘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시대적 임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권택기 의원은 특히 이날 발제를 통해 "2007년 7월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며 "이미 정해진 당론을 뒤집기 위해서는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당내에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3분의 2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며 개헌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을 비롯한 친이계가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 신년좌담회를 통해 개헌 의지를 표명한 데 따른 후속조치이자 최근 친박계로 이탈하고 있는 친이계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이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문제는 친이계의 패배주의"라며 "친이계가 뭉치면 개헌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분석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당내 친박(박근혜)계는 물론 친이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김 지사를 따르는 친이계 의원들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반대하고 있으며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홍준표·나경원 최고위원도 한 발짝 물러나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7일 한 프로그램에 출연, "나도 10년 이상된 개헌론자이지만 이 시점에서 개헌이 과연 가능한지를 생각하면 걱정스럽다"며 "일부 계파가 나서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서 개헌이 되겠는가, 그것이 상당히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구제역, 물가상승, 전세대란 등의 민생현안이 산적해있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개헌론을 자꾸 들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인 이성헌 의원은 이날 "일부 의원들이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일 뿐"이라며 "친이계의 많은 의원들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내일로'가 당내 개헌특위를 구성을 지도부에 촉구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전체 친이계의 의견으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친이, 친박을 떠나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개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권력구조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서 결정하기보다는 지금 정말 개헌 논의가 필요한 지 민생 현안이 중요한 지에 대해 여론 조사를 해서 다수의 국민들이 바라는 쪽으로 일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친이계 일각에서 "개헌이 2007년에 이미 당론으로 결정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당시 한나라당 의원 127명 중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36명에 불과했다"며 "그런 예로 억지를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 이혜훈 의원도 "하고 있던 논의도 잠시 접어두고 치솟는 생활비, 전세대란, 구제역 등을 먼저 해결해야 될 시기"라며 "국민들의 관심이 없는 문제를 굳이 지금 이 시기에 왜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흘간의 개헌 의총 이후 한나라당 친이계와 친박계가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 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pj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