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특수한 상황이 전개되는 까닭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총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 스케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총리' 국정 파트너 모델은 1998년 3월 정부가 출범하고 2년 후인 2000년 4월 총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JP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총리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4월 9일 총선에 나서려면 60일 전에는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박 전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되면 앞으로 4년간 의정활동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공천과 선거운동 기간에 당내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박 전 대표 측이 의심하는 '이 당선자 진영의 공천 학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에도 국무총리 신분으로선 자기 측근들을 구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는 것도 불가능하다. 박 전 대표로선 총리 자리를 맡는 순간 '정치적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대부분 측근들이 총리직에 극구 반대하는 것도 이 당선자 측의 제안에 '암수(暗數)'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 ▲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사진은 이 당선자가 지난달 29일 대선 후 처음 박 전 대표를 당선자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 당선자는 아직까지 박 전 대표에게 총리를 맡아달라는 의사를 직접 전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선자 측근 의견도 엇갈린다. 일부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미 (총리 후보로는) 이미 물 건너 갔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측근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가 총리 후보 1순위다" "(박 전 대표) 본인이 받아만 준다면 좋은 일이다" "정국도 안정되고 (박 전 대표도) 정부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등 말들이 나오고 있다.
박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일 자신이 총리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면서 "정치발전과 나라 발전을 위해 당에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일단은 고개를 저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