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때마다 돈 퍼붓고 당선되면 빚 독촉…'사람잡은 돈 선거'(조선)
울산=김학찬 기자 chani@chosun.com
입력 : 2010.01.27 05:45
작년 말 자살한 前 양산시장… 원인은 '60억 선거 빚'
1998년부터 수차례 선거 나서 그 과정에서 빚 눈덩이로… 결국 뇌물24억 받아 일부 갚아
검찰 "선거 풍토 바꿔야"
악수한 손엔 돈봉투 평소에도 생필품 뿌려… 300억대 땅부자였지만 금융위기로 팔지 못해
"엄청 뿌렸지…. 선거 때 오 시장 쪽에서 돈 봉투 하나 못 받아봤다면 양산에선 바보 축에 속해…."
경남 양산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7)씨는 쉼 없이 얘기했다. 작년 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오근섭(당시 62세) 전 양산시장의 선거 때 돈 씀씀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선거 때는 후보를 쫓아가서라도 악수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 악수한 손에 돈 봉투가 건네지기도 하는데,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앞 한 가게 여주인 박모(48)씨는 "그 양반은 평소에도 치약에, 비누에, 그릇에, 생필품은 안 사도 될 만큼 마이(많이) 뿌렸지예. 학생들한테도 연필 공책 자 책가방 같은 학용품을 수시로 안겼다 아임니꺼. 그 양반한테서 아무것도 받아본 적 없다고 말할 양산시민은 별로 없을 낌니더. 평소에 선거운동 한 거라 봐야지예…."
양산시청의 한 공무원은 "정치권의 '힘있는 분들'에게는 안 봐도 (많이 준 게) 뻔한 것 아닙니까! 아마 몇몇은 가슴이 콩콩거리고 있을 겁니다"고 했다.
◆선거 빚 60억원 어디다 썼나
울산지검은 지난 25일 오 전 시장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60억원이 넘는 선거 빚 상환 독촉에 시달렸고, 24억원의 뇌물을 받아 빚 일부를 갚았다"고 밝혔다.
검찰이 밝혀낸 선거 빚은 약 61억원이다. 2003년 5월 자신의 양산시 상북면 목장부지 50필지(시가 300억원대로 알려짐)를 담보로 양산의 모 저축은행으로부터 59억원을 대출받았다. 주변 3~4곳에서 빌린 돈도 2억원가량이다. 검찰은 "이 돈이 2004년 6월 양산시장 보궐선거 직전까지 집중적으로 지출됐다"며 "앞선 선거에서 누적된 선거 빚 상환과 2004년 선거자금으로 주로 쓰였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앞서 1998년과 2002년 무소속으로 양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국회의원 선거에도 한 차례 나가 고배를 마시면서 상당액의 선거 빚이 쌓였다. 일부 측근은 "2004년 6월 양산시장 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득표율 58%)됐는데, 그 과정에서도 상당한 금액을 썼다"고 했다. 검찰은 그러나 구체적인 자금 용처 공개를 거부했다.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6개월)는 물론 정치자금법 공소시효(5년)도 모두 지났기 때문에 수사 실익이 없어 조사를 중단했다"고만 밝혔다.
양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양산시장 선거 법정선거비용은 1억4400만원이며 오 전 시장은 당시 9179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양산시선관위는 "앞선 2004년 보궐선거는 관련 자료 보존연한(5년)이 지나 공식 확인이 안 되지만 2006년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1억4000만원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양산 인구는 22만여명(현재 25만여명)이었고, 최근 10년 사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빚 독촉에 밀려 뇌물 수렁에 빠지다
그가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되자 "선거 빚은 빨리 갚아야 뒤탈이 없다"는 주변의 상환 재촉에 시달렸다. 6개월 뒤인 2004년 12월 오 전 시장은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사돈에게서 어음 22억5000만원을 빌려 선거 빚 일부를 갚았다. 그러나 3개월 뒤 어음 만기가 돌아왔고, 다시 30년 친구인 건설업자 전모(뇌물공여 혐의 구속 수감 중)씨에게 손을 벌렸다. 전씨는 대신 "부동산사업을 도와달라"고 요구해 약속을 받았다.
전씨는 다른 부동산업자들까지 끌어들여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오 전 시장에게 총 24억원을 건넸다. 대신 오 전 시장은 2006년 1월 전씨에게 "도시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니 재일교포가 주인인 땅을 사라"며 지번을 알려줬고, 전씨 등 부동산업자들은 같은 해 7월 양산시 상북면의 임야 270만9000여㎡를 두 차례에 걸쳐 사들였다. 이 임야 가운데 40% 가까운 103만9000여㎡는 결국 2008년 8월 국토해양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산업단지 조성 예정지역에 포함돼 막대한 개발 차익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소문난 '땅 부자'였지만…
오 전 시장은 당장 급한 빚 독촉으로부터는 한숨을 돌렸지만 검찰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부동산업자 전씨를 비롯해 도시계획 변경을 노리고 뇌물을 건넸던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자신의 비서실장이 소환되는 등 수사망이 좁혀 오자 작년 11월 27일 오전 양산시 상북면 자신의 별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그날은 자신의 검찰 소환일이었다.
오 전 시장은 당시 A4용지 두 장으로 된 유서를 남겼다. 양산의 한 측근은 "현장에서 유서를 본 사람들에게 들으니 유서에 '거물 정치인'의 이름을 밝혀 놓았고, 그에게 자신의 가족과 측근을 보살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얘기"라고 부인했다.
'땅 부자'로 소문났던 오 전 시장은 선거 직후 자신의 목장부지(50필지)를 팔아 선거 빚을 갚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찰은 "땅 판 목돈에 대한 자금 흐름을 추적당할 것을 우려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상환하고 남은 빚 약 39억원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2008년과 2009년엔 목장부지를 필지를 나눠서라도 팔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측근들은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데다 땅 덩치가 커 마땅히 사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오 전 시장의 목장부지는 채무가 완납되지 않은 상태에서 담보로 잡혀 있어 조만간 경매 등 소유권이 넘어갈 처지"라고 했다.
검찰은 "수십억원의 선거 빚이 빌미가 돼 뇌물을 받게 됐고,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돈을 쓰지 않으면 당선되기 힘든 선거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오 전 시장은 양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신문배달·구두닦이 등을 하며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다 양곡상으로 성공, 전국양곡상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40대에 양산대학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내는 등 자수성가한 대표적 인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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