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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의정비 인상 봇물…여론·재정난도 무시[한겨레]

말글 2011. 11. 7. 14:14

지자체 의정비 인상 봇물…여론·재정난도 무시[한겨레]

 

등록 : 20111106 20:56

 

3.5% 인상안도 “높다” 여론인데 7.4% 올리고
보궐선거 비용만 10억 불구 6.1%인상 추진도
합리적 평가자료 시급…행안부, 위법 점검키로

 

» 전남 여수지역 시민사회단체 11곳이 꾸린 여수지역정치개혁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여수시의회 앞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수감된 오현섭 전 여수시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중인 여수시의원들의 사퇴와 내년 의정비 인상 시도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여수지역정치개혁연대 제공

#1. 대전 유성구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7~19일 구민 500명으로 대상으로 한 주민 여론조사에서 구의원 의정비 3.5% 인상안을 물었다. 응답자의 73%가 ‘인상 폭이 높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정비심의위는 내년도 구의원 의정비를 올해 3585만원보다 7.4% 올린 3850만원으로 결정했다. 유성구의회 의원 3명은 지난 9월 예산 1600여만원으로 서유럽 4개국 연수를 가면서 여행사의 ‘프리미엄 관광상품’을 이용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2. 전남 여수시의회는 오현섭 전 여수시장한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의원 26명 가운데 4명이 지난달 의원직을 잃었고, 3명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의원 7명을 뽑을 보궐선거 비용은 1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시의회는 의정비심의위를 통해 의정비를 3529만원으로 6.1% 올리는 안을 두고 주민 여론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와중에 시의원 18명은 사무국 직원 17명과 함께 지난 2일 의정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제주도 2박3일 연수를 떠났다.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힘쓰기보다 의정비를 무리하게 올리려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전국 광역·기초 244곳(광역 16곳, 기초 228곳) 가운데 90여곳이 의정비 인상을 결정했거나 추진중이다.

 

지방자치법 시행령은 민간위원으로 짜인 의정비심의위를 꾸려 주민 여론조사나 공청회를 거쳐 의정비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정비심의위가 의원들의 요구를 그대로 추인하거나, 여론조사를 왜곡하며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충남 공주시 의정비심의위는 주민 여론조사에서 8.6% 인상된 3390만원을 기준으로, 설문 문항을 3360만원에서 3420만원 가운데 고르도록 유도해 현재보다 240만원 많은 금액이 선택되도록 했다. 이를 근거로 올해보다 7.6% 오른 3360만원을 내년도 시의원 의정비로 결정했다. 부산 남구의회는 주민 여론조사에서 2.9% 인상안을 놓고 ‘높다’(49.6%)는 의견이 ‘낮다’(1.2%)를 압도했는데도 ‘적절하다’는 답변이 49.2%라는 점을 내세워 인상안을 그대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 선거의회과 쪽은 “주민 의견수렴 절차에 하자가 있는 경우 재의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외면한 채 의정비를 올리는 의회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재정난으로 추가경정예산을 637억원으로 줄인 경기 화성시 의원들은 내년도 의정비 가운데 고정액인 의정활동비를 뺀 월정수당을 164만원(5.9%) 올렸다. 채무 지급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던 성남시 의원들이 4년째 의정비를 동결한 것과 대조적이다. 6.9% 인상을 결정한 충남 천안시는 최근 3년간 부채로 낸 이자만 250억원이 넘는다. 재정자립도가 13.2%에 불과해 공무원 인건비 조달도 버거워하는 전북 순창군에선 의원들이 전북지역 14개 기초의회 가운데 유일하게 의정비를 2.4%(72만원) 인상했다. 반면 충북은 도의회와 12개 기초의회가 모두 의정비를 동결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의정비 인상과 관련해 논란이 커지자 지방의회의 의정비 결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의견이 적법하게 반영됐는지를 집중 점검해 위반사항이 드러난 곳에는 재심의 등 시정조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 시군구의회의장 협의회는 중앙정부에서 해마다 일률적으로 의정비를 책정해 고시하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며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열어 의정비 인상을 촉구하기로 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 내실화가 최우선이며, 의정비 사용 명세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인 평가자료에 따라 의정비를 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공공행정학)는 “의정비심의위가 내실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사전에 의회와 지자체가 타협한 뒤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공정한 의정비 심의절차를 법률에 더 명확히 규정하는 한편 의원 원내 활동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의정비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대안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전/전진식 기자, 전국종합 seek16@hani.co.kr

 

지방의회 의원 의정비

1991년 지방자치제 시행 때부터 2005년까지 회의 참석에 따른 수당으로 지급되면서 일비·회의수당·회기수당으로 일컬어졌다. 2006년 1월 월정수당으로 변경되면서 유급제가 도입됐으며, 이후 지나친 의정비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과 제도 개선 요구에 따라 2008년 10월 자치단체의 재정력 지수와 인구 등을 고려한 법정 기준액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