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통합진보당, 결이 다른 화법(대자보) |
[정문순 칼럼] 통진당은 홍준표의 통큰 베짱을 배워라 |
“내가 도지사를 1년 6개월만 하고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4년 더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심판해 달라.” 홍준표 도지사의 출사표는 갈기 휘날리는 사자후를 보는 듯 거침없다. 세상에 출마 선언을 이렇게 하는 사람은 처음 본 듯하다. 나를 평가해 달라고도 아니고 심판해 달라니. 한번 더 뽑아주시면 340만 도민에게 엎드려 봉사하겠다 운운하는 겸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심판론은 본디 도전자의 전용 화법이다. 타이틀을 방어해야 할 사람이 자신을 심판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여간한 담력과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힘들 것이다. 홍 지사는 현직 프리미엄을 막강하게 누리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앞서 있으니 자신이 떨어질 리 없다고 단단히 믿고 있는 것 같다. 도정 활동을 빙자한 사전선거운동도 제지받지 않고 실컷 했고, 지난 해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붙일 때도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 홍 지사의 과감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진주의료원 폐쇄로 떠들썩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여 박정희를 ‘좌파 복지’의 원조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에서 박 대통령 아버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홍 지사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때도 그의 자신감은 근거 없이 나온 것은 아니었으며, 홍 지사가 믿는 구석은 박 대통령의 약점이었다. 복지=빨갱이 등식을 창조해 낸 자의 딸이자 복지 정책과 척을 지고 살았던 그녀가, 복지가 아버지의 숙원이었다는 등 선거 때 갑자기 복지에 목 매단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여당 도지사 예비후보의 파격과는 반대로, 야당은 여전히 낯익은, 그 자신을 배제한 심판론에 매달리고 있다. 홍준표는 칼을 자신에게 겨누어달라고 했지만, 야권은 그 칼을 버린 자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의 새누리당 경남당사 앞 기자회견. “헌정 사상 초유의 독재적 탄압 속에서도 독재를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것을 선포한다.” 이 짧은 문장에 ‘독재’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 아무리 다급해도 중언부언은 좋은 글이 못된다. 안타까운 건, 틀린 말은 없지만 통진당의 말은 도무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 상대 정당에 날리는 선전포고라도 너무 살벌하다. 장외에서 싸울 때는 몰라도 날선 발언은 대중정치의 화법으로는 부적격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지 않았는가. 승부의 세계에서 미리 힘을 빼고 나면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권자들은 ‘나를 심판해 달라’와 ‘너를 심판하겠다’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움직일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통진당이 차라리 홍 지사처럼 말한다면 어떨까. 통진당의 성명서 문구를 홍준표 식으로 변용해보면 이런 글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가 진보당 죽이기이자 독재적 탄압이며 진보정치세력의 싹을 완전히 뽑아버리는 폭거이자 보수세력 장기집권을 위한 음모와 조작, 야욕의 발로인지, 아니면 통진당이 툭하면 종북의 광기를 부리며 야당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강제해산을 통해 사라져야 마땅한 정당인지 표를 통해 심판해 주시기 바란다.” 따지고 보면 홍준표와 통진당의 차이는, 가진 자의 여유와 약자의 불안이 빚은 것이다. “나를 심판해 달라”가 머리 좋은 홍준표다운 발언일 수는 있어도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 홍 지사가 통진당 처지였으면 더한 발악을 했을 것이다. 홍 지사는 새누리당이 ‘집권야당’이던 시절 김대중·노무현 정부더러 야당을 탄압하는 독재 정권이라며 툭하면 심판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저격수’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당시 그를 포함한 새누리당 인사들의 심판 발언은 정권을 빼앗겼다는 초조감의 발로였다. 현직을 이용하여 불공정한 게임을 일삼은 자가 부리는 여유와,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의 절박함에 대해 유권자들이 표피만 보지 말고 맥락을 살펴 헤아린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투표권자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통진당이 현직 도지사의 기고만장한 배짱만큼은 배우는 게 좋을지 모른다. * 본문은 경남도민일보 3월 25일자 기고 칼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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