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이름 바꿔 밀어붙이나
입력: 2008년 05월 19일 18:11:55
ㆍ명칭 ‘4대강 정비’로 전략수정 검토…연결사업 단계추진 제기
청와대와 여권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한반도 대운하’의 전략 수정에 나섰다. 4대강을 치수 관리 차원에서 정비하고 연결 공사 부분은 여론을 봐가며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이른바 ‘단계적 추진론’이다. 핵심 공약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명분’을 살릴 수 있는데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을 무마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4·9 총선에서 당선된 일부 측근 인사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정두언 의원이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 치수 관리 차원에서 우선 정비하고 연결 부분은 추후에 논의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자 “그런 방안도 있겠다”는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고 정 의원이 19일 전했다. 정 의원은 당시 이 대통령에게 “한반도 대운하가 당초부터 네이밍(이름짓기)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부른 것 같다. 대운하라고 하니까 마치 맨 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는 4대 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연결부분만 땅을 파자는 것”이라고 건의했다.
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연결부분은 계속 논의를 하되 4대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드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최근까지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추진 강행론’과 ‘무기한 연기론’ 등 다양한 주장이 흘러나왔다. 이 대통령이 추진을 약속한 핵심 공약을 백지화할 경우 신뢰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과, 국민의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국론이 분열돼 다른 국정 과제들마저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단계적 추진론’은 여권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카드로 부상했다. 사실 청와대와 여권의 입장 변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바 있다.
지난달 29일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한반도 대운하를) 우리가 꼭 운하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치수 문제라든지 수질 문제라든지 그런 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대운하 추진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밝혔으나 추진 이유에 대해선 당초 강조했던 ‘물류와 경제성’보다 ‘물관리·이용’에 방점을 찍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7일 “한반도 대운하는 운하가 아닌 수로”라고 개념정리했다. 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도 그 다음날 “한반도 대운하는 물관리와 이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동조하고 나섰다.
대운하를 치수의 개념으로 접근할 경우 특별법을 따로 제정하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사업 타당성 조사, 환경영향 평가 등에 3~4년이 걸리는 부분을 단축하기 위해 ‘대운하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온 바 있다. 그러나 야당 등의 반대 여론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대운하와 관련해 지자체 단체장들도 4대강 치수 사업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년에는 영산강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한반도 대운하는 수질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만큼 이에 기반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여론이 좋지 않거나 사업성이 없다면 땅을 파는 것은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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