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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역할없는 <오마이뉴스>를 떠나며

말글 2008. 12. 3. 20:48

시민기자 역할없는 <오마이뉴스>를 떠나며(대자보)
[토로의 글] 700건의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를 떠난 이유
 
김영조
지난 2000년 2월 한국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터넷전문 매체 오마이뉴스가 창간됐다.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모두가 깜짝 놀란 그 시작이 열린 것이다. 그 한 달 보름 정도 뒤에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열에 합류했다. 나는 원래 글쟁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시민기자가 되었나?

시민기자가 되기 전 나는 생활한복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소비자는 한복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특별한 요구를 했다. 곧 서양옷에서는 요구하지 않는 사철옷이나 반소매 옷을 예사로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비자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지 않으면 생활한복의 판매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은 여기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전통문화를 같이 알려야 한다는, 우리 문화를 통합적으로 사고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책도 강연도 어렵기만 했다. 전통문화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말로 승부를 하려 할까? 대중과 함께 하는 우리 문화가 되려면 좀 더 쉽고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나를 때아닌 글쟁이로 만들었다. 그런데 글쟁이가 뭐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 닷새쯤 글을 써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재미없거나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모두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또 수없는 공연과 학술회의에 부지런히 다니고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와 취재원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한 공연과 학술회의 참가, 그리고 2시간에서 5시간의 긴 인터뷰는 취재원들의 호응을 받게 되었다. 결국, 2년이 돼가던 2001년 12월 살아있는 차의 성인 전남 순천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을 찾아뵙는 1박 2일의 취재여행을 했다. 그렇게 쓴 글은 머리기사로 올랐고 두 달 뒤 창간 2돌 기념식(2002년 2월 22일)에는 10명의 시민기자에게 주어지는 시민기자상도 받았다.  

열심히 쓴 덕분인가? 2004년 여름 초 오연호 대표가 50대 시민기자 3명을 불러 식사를 대접할 때 나는 그 자리에 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업은 2004년에 최악이었다. 빚 독촉에 거의 쓰러질 뻔 하는 순간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우리 문화운동을 하는 것에 도움을 주던 많은 은인에게 실망을 안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극복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글을 써야만 했다. 2005년 한해 나는 100여 건의 기사를 올렸다. 일주일 동안 3개의 공연을 보고,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어려운 상황을 글쓰기와 기사작성을 통해 한해 만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내게 또 다른 삶을 가져다주었다. 만일 내 인생에 오마이뉴스가 없었다면 하는 끔찍한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어느 매체가 아무런 바탕도 없는 일반 시민에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지면을 나눠줄 것인가? 오마이뉴스 덕으로 나는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삶을 접을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나올 수도 있었다.  

이렇게 오마이뉴스와의 밀월은 2006년부터 서서히 금이 가는 불행으로 변했다. 두건의 오마이뉴스 게릴라본부 잘못을 보게 되고 오마이뉴스를 사랑하던 나는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하나는 당시 한 시민기자가 평택에까지 가서 현장 취재와 인터뷰까지 끝내고 기사를 올리려 했지만, 한 상근기자가 제대로 확인도 않고 전화인터뷰만 한 채 먼저 올렸던 사건이었다. 취재원이 분명히 시민기자가 인터뷰를 했다고 알렸지만 상근기자는 이를 뭉개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편집부는 이를 못 본채 징계도 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두 시민기자가 기자게시판에서 감정싸움이 벌어지자 편집부와 가까운 일방의 얘기만 듣고 제대로 소명도 받지 않은 채 한 시민기자를 제명해 버렸다. 이에 나는 나이도 많고 초창기부터 활동한 시민기자가 나서서 적절한 조정을 하고 오마이뉴스가 정도 언론으로 굳게 서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자 게시판에서 시민기자가 먼저 취재한 내용을 확인도 제대로 않고 자기 기사로 올린 상근기자는 명분상으로라도 징계를 하고 제명당한 시민기자는 정당한 소명절차를 통해 억울하지 않게 징계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소박한 주장은 오마이뉴스에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이때부터 나는 오마이뉴스에 미운털이 박혔다. 그전까지 대부분 기사가 버금기사 이상이었지만 이후부턴 대부분 잉걸기사로 추락했다. 또 어떤 경우는 12권 전집 서평이 시의성이 떨어진다며 기사 채택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어쨌든 편집권이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더는 항의할 힘이 남아있질 못했다. 그러던 중 2008년 10월에 기어이 그들에게 빌미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동대문구 비보이대회 고발기사가 표절이라며 징계를 받은 것이다. 

우선 편집부는 내 로그인 권한을 정지시켰고 기사는 올릴 수 없었다. 이러자 내 후원회장을 자처하고 늘 돋고 있었던 김슬옹 동국대 겸임교수가 편집부장을 만나 협의를 했다. 그 자리서 편집부장은 소명서를 제출하면 잘 처리하겠노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표절 대상인 대자보 이백수 기자의 해명서와 함께 당 기사는 공동작품임을 밝히는 소명서를 제출했다. 분명히 밝히지 못한 실수는 있지만 표절이라고 할만한 문제는 아니었고, 먼저 올린 대자보 이백수 기자의 기사를 바탕으로 비보이대회 행사 취재와 촬영, 관련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보태 올렸으며, 공익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허위 사실도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사실도 없으니 잘 처리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자격박탈”이었다. 2년 전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 경고를 받은 적이 있어서 중징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 기사는 오마이뉴스가 우리 문화 관련 기사를 소홀히 하는 듯하여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올렸더니 담당 편집기자가 전화를 해 기사로 채택할 수 없다고 한 기억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 담당자는 “징계”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물론 서면으로 징계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구두 징계도 징계라고 말한다. 징계받은 당사자는 징계 사실을 알지도 못한 것은 물론 근거도 없는 징계를 그들은 들먹였다. 

나는 분노할, 억울해할 기력도 없었다. 시민기자에 의해 발전했다고 누누이 밝혀왔던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를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하나 하는 생각에 허탈감만 들 뿐이었다. 지난 2008년 3월 3일 나는 처음 책을 내면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이때 오연호 대표가 찾아와 축사를 했고, 축하공연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는데, 그런 오 대표의 행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더란 말인가?

오마이뉴스가 정말 정도 언론이라면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될 일이 아닐까? 그리고 시민기자 덕분에 발전했다면 명분 하나로 헌신하는 시민기자들 교육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오마이뉴스는 3박 4일(?)의 유료 기자교육은 한다. 하지만, 생계가 달린 시민기자들이 자신의 일을 젖혀두고 며칠간의 교육을 받기는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하루만이라도 무료교육을 해야 바람직하지 않을까? 

나는 오마이뉴스 초창기를 떠올린다. 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줬고, 그래서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과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열린매체가 이제 그 규모가 커지고 비대해지고 나서는 오히려 시민기자를 푸대접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아울러 현재 수많은 시민기자가 스스로 혹은 징계 탓으로 오마이뉴스를 떴다고 듣는다. 그래서 좋은 기사가 줄어들고 이 때문에 오마이뉴스가 한창 잘 나갈 때에 견주면 독자가 많이 줄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사실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시민기자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오마이뉴스에는 설득력이 있는 소문 아닐까? 

오마이뉴스가 계속 정도 언론으로 성장하려면 초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신문은 존재는 절대적이다. 제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를 쌍두마차로 하는 건강한 오마이뉴스로 오래오래 남을 것을 간절히 비손한다.  

내가 떠나면서 글을 남기는 이유는 오마이뉴스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아닌, 700여 건이나 기사를 올리며 한 때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한 매체에 대한 고언이자 나름대로의 기록이라 생각하여 올린 것이다. 앞으로도 오마이뉴스의 건강한 발전을 기원한다.  

[참고]
1. 기사 “'동대문 비보이 대회', 특정업체 위한 행사 논란 (대자보 20080928)”
 

2. 기사 “2억 원 혈세들인 '동대문 비보이 대회', 졸속 논란 (오마이뉴스 20081006)”
(현재 오마이뉴스는 지웠는지 보이지 않고 다음만 남아 있음) 


3. 소명서 “징계 건에 대한 소명서”(덧붙임 : 이백수 해명서)
관련기사
'동대문 비보이 대회', 특정업체 위한 행사 논란

2008/12/03 [15:57]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