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 연구원 없이 정치 이슈 다뤄… 설 연휴 군부대 방문도 주관
‘뉴타운 공약’ 판결이 대권 도전 갈림길… 자칫 의원직 잃을 수도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몽준(58·서울 동작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정책연구소를 또 하나 차렸다. 서울 여의도에서 2월 6일 문을 여는 이 연구소 이름은 ‘해밀을 찾는 사람들의 소망’이다. 해밀이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정 최고위원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실무는 도미니카 대사를 지낸 인병택(51)씨, 국민당 정책전문위원·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정태용(48)씨,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홍윤오(46)씨 등이 맡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작년 2월 1일 문을 연 정 최고위원의 ‘아산정책연구원’(이사장 한승주)과 별개로, 정책 이슈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능을 맡는다. 정 최고위원의 측근인 안효대(54·울산 동구) 의원은 이 연구소에 대해 “정책 각 분야에 대해 실무적으로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측근은 “국회와 관련된 각종 정책을 개발하고,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아산정책연구원이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면, 이 연구소는 여의도 중심의 각종 정치 이슈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의 행보는 실제로 예사롭지 않다. 18대 총선서 6선 고지를 달성한 그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3일 육군 1사단 전방부대를 방문, 철책을 시찰하고 장병들을 격려한 뒤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이 방문을 ‘해밀’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아직 낮은 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월 22일 실시한 휴대폰 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40.0%의 지지도로 1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7.7%로 2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9.1%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5.8%를 기록, 6.3%를 차지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측근들 “민감하다” 뉴타운 언급 자제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권 의욕을 보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2002년 11월 ‘국민통합21’ 대표로 16대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선 당선이 확실시 됐던 울산 동구 대신 서울 동작을에 출마, 통합민주당 정동영(56) 후보를 꺾고 6선의 영예를 얻었다.
이에 대해 ‘차기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했었다. 정 최고위원 자신도 2008년 3월 16일 동작을 출마 선언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안정된 정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힘들지만 가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며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생각하며, 이제 또 다른 시작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대권가도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 가장 큰 장애물은 ‘뉴타운 공약’과 관련된 법원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5일 그가 지난 총선에서 내걸었던 뉴타운 공약에 대해 민주당이 낸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재정신청은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고소·고발인이 고등법원에 ‘기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 추가 지정에 대해 부동산이 안정화되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설명했을 뿐, 뉴타운 사업에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정 의원은 마치 오 시장이 동작·사당 뉴타운 지정에 동의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점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검찰은 1월 19일 정 최고위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정 최고위원에 대해 “오세훈 시장이 동작·사당지역을 뉴타운으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오 시장께서도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연설해 마치 동작동과 사당동 4차 뉴타운 지정에 동의한 것처럼 발표한 혐의”라고 밝혔다.
이같은 법원과 검찰의 시각은 일단 정 최고위원의 유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재판 결과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정 최고위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돼 대권 가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에게 6선의 영예를 안겨준 뉴타운 공약이 거꾸로 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언론에 “지난해 3월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을 지정하면 집값이 올라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했고, 저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 하락 때문’이라며 ‘뉴타운을 지정하면 집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서울에 구매력 있는 유효수요가 충분하다는 증거이므로 뉴타운을 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설명한 적이 있다”며 “오 시장은 ‘그런 설명은 처음 들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대권 도전 땐 박 전 대표와 대결 불가피
친이(親李) 진영과 ‘러브샷’ 하며 스킨십
정 최고위원 측근들은 이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 측근은 “뉴타운 문제는 법원 판결이 나와봐야 알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른 측근은 “민감한 문제”라며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정 최고위원에겐 ‘친이(親李)’와 ‘친박(親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한나라당 현실도 유리하진 않다. 그가 한나라당 차기 대권 후보가 되려면 현재로선 박근혜 전 대표와의 승부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주이야박(晝李夜朴·낮엔 친이 밤엔 친박)’이란 말이 보여주듯, 친박 진영은 공략이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가장 앞선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구심력이 흐트러지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친이 쪽은 상대적으로 각개전투 분위기가 강한 데다, 아직 차기 주자가 불확실하다. 따라서 정 최고위원은 친이 진영과 손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가 지난해 10월 워싱턴을 방문, 이재오 전 의원과 만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 최고위원 측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 자격으로 미국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간 것”이라며 “정치적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계 복귀를 고려하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과 대권을 꿈꾸고 있는 정 최고위원이 만났다는 점에서 이 방문은 주목을 받았다.
이같은 정 최고위원의 행보에 대해 “정치인이 대권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대통령 임기가 4년이나 남았는데 좀 이른 것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 정 최고위원 측도 ‘때이른 대권 행보’라는 외부의 시각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정 최고위원 측은 “정치인에겐 밥 먹는 것도 정치적 행위로 해석된다”며 “최근 차린 연구소는 그동안 하려고 했던 것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측근 안효대 의원은 “(정 최고위원이)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할 장소가 필요했다”며 “대권 행보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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