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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더부살이라지만… 이렇게 열악할 줄 상상도 못해”
초고층 건물이 둘러싼 빛바랜 임시정부 청사
“이런 곳에서 독립운동한 선조들 열정에 감동”
청사 코앞에서 재개발 “언제까지 보존될지 걱정”
23일 상하이의 풍경은 스산했다.
날씨는 하루 종일 우중충했고 꽃샘추위는 옷깃을 여미게 했다. 1910년대 프랑스 조계였던 옛 도심에서 군데군데 눈에 띄는 낡은 건물들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칙칙한 느낌이 한층 더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수십 층짜리 신식 건물들에 둘러싸여 더욱 빛이 바랜 옛 거리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모습으로 복원된 청사는 낡은 3층짜리 건물. 나라를 잃어 남의 땅에 더부살이를 한 ‘임시’ 정부였다고 해도 ‘정부’라는 명칭을 붙이기엔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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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청사를 둘러본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걸 몰랐다. 이런 곳에서도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으려 애썼던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청사가 언제까지 유지될까 하는 점이었다. 청사가 상하이 시 문물(중국의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상하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공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곳이 재개발되고 있는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 실제 청사 바로 옆 김구 선생의 거처였던 영경방이 있던 곳에는 지금 고층 아파트 건축이 한창이었다.
3년 전 청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강정민 씨(27)는 “그때 없던 고층 건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경태 씨(26)는 “지금은 중국 정부가 이 정도라도 유지를 해주지만 어차피 중국 소유지니까 언젠가는 개발논리에 밀려 없어질지도 모를 일 아니냐”면서 “역사의 현장이 대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최선을 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사 관람을 마치고 나면 들르게 돼 있는 1층 기념품점에서는 중국제 찻잔, 중국 인형 등 이곳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정경한 씨(22)는 “너무 관광지 느낌이 나서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그런 초라한 첫인상에 실망했지만 전시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느낌을 받았다”며 “교과서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최민석 씨(23)는 “왜 임정 청사가 프랑스 조계에 자리를 잡았는지에 대해 신용하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이해하게 됐다”며 “학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정 청사에 이어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소인 훙커우(虹口·현 루쉰·魯迅) 공원과 순국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안장돼 있던 만국공묘를 방문했다. 루쉰 공원은 평일인데도 운동을 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윤 의사의 의거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는 윤 의사를 기념해 세운 정자인 매헌(梅軒)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허유미 씨(20)는 전시물을 보고,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뒤 학교의 역사 교육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윤 의사가 던진 폭탄을 학교에선 도시락 폭탄으로 배웠는데 사실은 물통 폭탄이라는 점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이경태 씨는 윤 의사가 남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장부가 집을 떠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귀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정경한 씨는 만국공묘를 돌아본 뒤 “한국 요인들의 묘석은 다른 외국인들의 묘석에 비해 깨끗했는데 누군가 꾸준히 이 묘석들을 관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 섞인 생각을 해봤다”고 밝혔다.
만국공묘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자 화려한 불빛에 둘러싸인 상하이의 고층 건물들은 더욱 위용을 자랑했다. 그 화려한 건물들 틈 어딘가 비좁은 골목에서 비를 맞고 있을 임정 청사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하이=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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