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의 시련과 도전(신동아) 오·박 연대설? “우리가 바보냐”(오세훈 측)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
● ‘디자인 서울’ 책임자 최근 사임 ● 한나라 의원들 중 ‘안티 오세훈 그룹’ 있다? ● 유인촌 급부상… 차기 공천도 첩첩산중 |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선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한나라당 주자인 홍준표·맹형규 의원이 열린우리당 후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오 시장은 구원투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당 지도부에서 기대한 대로 오세훈 후보 개인이 가진 참신한 이미지가 서울시민에게 먹혔다. 당시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도 표심에 영향을 미쳐 그는 강금실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민선 4기 서울시장이 됐다.
이후 17대 대통령선거와 18대 총선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쳐 다시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오 시장은 이번엔 선발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창의 시정(市政)’을 기치로 재임 중 일궈낸 업적들을 토대로 재선(再選) 도전에 나선 것이다.
‘본선’은 나중 일 그러나 그의 앞길은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것도 첩첩산중이다. 4~5명의 유력 정치인이 선발 자리를 넘보고 있다. 3선의 원희룡 의원, 재선의 공성진·정두언·나경원 의원 등이다. 소장파의 대표 격인 원 의원은 최근 친이-친박 계파 갈등으로 불거진 당 내분 사태를 잠재울 임무를 수행할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항상 외길 행보로 당내에서 세(勢)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최대 약점이었지만 이번에 입지를 강화할 수 기회를 잡은 셈이다.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을 역임한 공성진 의원은 권력 핵심 재진입을 시도하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핵심측근이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6월 ‘권력 사유화’ 발언으로 칩거기를 보냈지만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 이후 사실상 정치적 복권이 이뤄졌다. 나경원 의원은 4·29 재보궐선거에서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가 빠진 자리를 그나마 메우면서 ‘선거의 여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인사 외에 지난 선거에서 오 시장이 그랬듯 여차하면 ‘짠’하고 나타날 거물급 경쟁자도 있다. ‘MB(이명박 대통령)의 남자’로 통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유 장관은 최근 서울시장 출마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생기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진지하게 검토할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유 장관 측근인 선주성 정책보좌관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절대 출마 않겠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미리 준비하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여권 내에선 유 장관의 출마 쪽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오 시장 측은 겉으론 “누가 나오더라도 나오는 것 아니냐”며 크게 개의치 않는 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속으론 적잖이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특히 유 장관이 친이 진영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토를 달았다. 오 시장의 한 핵심 참모의 말이다. “유 장관에겐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유 장관이 친이 의원들과 친할 일이 없다. 현직 장관이 경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당협위원장들과 어떻게 교감을 나누겠느냐.” 다른 참모는 ‘자질론’을 거론했다. “유 장관은 서울시민과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기 어렵다고 본다. 친이 진영이 지원할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친이도 다 갈려 있지 않으냐. 결집이 어려울 거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의 선주성 보좌관은 “유 장관은 출마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장관은 사석에서 ‘더 이상 명예를 얻을 것은 없다, 장관을 하면서 까먹었으면 까먹었지 새로 얻은 명예는 없다’는 말을 한다. 개인적 자부심과 삶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직계인 권택기 의원은 “다양한 후보가 나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중에서 경선을 통해서 좋은 후보를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다른 의원들도 이런 원칙적인 입장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결국 오 시장이 재선 가도를 달리기 위해선 쟁쟁한 내부 경쟁자부터 물리쳐야 한다. 야당 후보와 겨룰 본선 걱정은 나중의 일이다.
그런데 ‘오세훈 위기론’이 나도는 것은 비단 다른 야심가들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안티 오세훈’ 그룹이 있다는, ‘창의 시정’은 혹독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이심(李心·이 대통령 의중)’이 떠났다는 소문들이 서울시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서울시에 어슬렁거리는 소문들 서울지역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모두 40명이다. 야당 의원이 있는 8개 선거구엔 한나라당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이 있다. 이들 48명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자 오 시장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상당수가 오 시장과의 사이에서 사건을 겪었다. 바로 지난해 4·9 총선 직후 불거진 ‘뉴타운 공약’ 파문이다.
총선 때 이들 상당수는 ‘뉴타운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줄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갑작스럽게 지역구를 울산에서 서울 동작을로 옮긴 정몽준 의원조차 “이곳에 뉴타운을 짓기로 오 시장과 얘기가 다 됐다”고 유권자들에게 말했다. 다른 한나라당 후보들도 오 시장과의 친분 관계 등을 내세우며 “내가 당선돼야 뉴타운 사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강북 부동산 값이 들썩이고 있으므로 뉴타운 추가 지정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추가 지정은 없다”가 “10곳 이하로 검토할 수 있다”로, 다시 “불가능하다”로 바뀌었다. 실제로 선거 후 서울에서 새로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역은 없다. 곳곳에서 “속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뉴타운 공약 문제로 한나라당의 정몽준(동작을), 신지호(도봉갑), 유정현(중랑갑), 현경병(노원갑), 안형환(금천), 구상찬(강서갑) 의원이 줄줄이 기소됐다.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내심 오 시장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일부 서울 의원들 사이에서는 “오 시장이 우리 편 맞느냐”는 말도 오갔다고 한다. 특히 정몽준, 안형환 의원은 법원이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법정에 섰다. 정 의원이 ‘허위 공약’ 문제로 재판을 받을 때 오 시장은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48명에게 다 물어봤나요?” 그러나 최근 기자와 만난 오 시장은 자신과 서울 출신 의원들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분석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 보도를 비판했다.
“뉴타운 공약 문제 때문에 관계가 좋지 않다는 식의 기사가 한 번 나가니까, 다른 언론들도 제대로 확인조차 않고 그대로 따라 쓰더라. 제발 48명 모두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기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다 물어보면 그 정도는 아니란 걸 알거다.”
오 시장은 3월4일 법정에 나가 ‘뉴타운 허위 공약’으로 기소된 정몽준 의원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지난해 3월 정몽준 후보와 면담했을 때, 동작·사당 지역도 뉴타운으로 추가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기에 ‘부동산 값이 안정되고 기존 뉴타운 사업이 진척돼 4차 뉴타운을 지정하게 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정 의원이 ‘추가 뉴타운 지정 동의’로 판단했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증언했다. 오 시장의 이 증언은 정 의원이 유리한 판결을 받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의 한 측근은 “정치적으로 죽게 생겼기 때문에 ‘듣기에 따라선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정도의 증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그 외에도 오 시장은 서울지역 원내외 당협위원장 48명 모두를 번갈아가며 3~4차례씩 만나 뉴타운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지역현안들을 챙겼다”고 덧붙였다. 이종현 서울시 공보특보는 “비온 뒤에 땅이 굳은 격”이라고 했다.
권택기 의원(광진갑)은 “전반적으로 오해가 풀린 것이 맞다. 각 지역에서 뉴타운 선언을 하는데 시장 입장에서 ‘검토하겠다’는 말 외에 더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이해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친박 계열인 구상찬 의원은 “뉴타운 문제는 처음에 나도 서운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오해가 풀리더라”고 했다.
“다음에도 오세훈 가장 유력” 그러나 다른 친이 핵심인사 측은 “뉴타운 문제 때문에 오 시장이 여전히 당에서 인기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유 장관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할 무렵에 오 시장이 박 전 대표와 손잡을 것이란 소문이 정가에 돌았다. 뉴타운 문제 등으로 서울지역 친이 의원들과 불화를 겪을 바에야 차라리 ‘오(吳)-박(朴) 연대’를 맺어 지방선거와 다음 대선에서 서로 협력해 윈-윈 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이런 풍문은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를 오랫동안 보좌한 서장은 전 한나라당 서울시당 대변인이 지난해 8월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된 것과 연결돼 구체성을 띠었다. 친박진영과의 연대를 추진하기 위해 오 시장의 고려대 법대 후배인 서 실장을 영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이에 대해 오 시장과 서 실장은 모두 어이없어했다. 한 서울시 관계자의 얘기다. “서울의 당협위원장 48명 가운데 친박은 5명이다. 어느 신문에서 ‘오 시장이 친이 쪽에서 여의치 않자 친박으로 갔다’고 썼던데 참으로 황당하다. 우리가 바보냐. 43명을 놓아두고 5명에게 승부를 걸 게….” 서장은 실장도 “친이다, 친박이다 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말이 안 된다. ‘서울연대’라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공보특보를 지낸 구상찬 의원은 “오 시장이 다음번에도 제일 유력한 후보 아니냐. 국회의원과 시장을 지내면서 검증됐다”면서 “개인적인 호감은 있지만 친박 진영과의 연대 문제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박근혜 대표가 신촌에서 오세훈 후보 지원유세를 하다가 피습을 당했었다. 친이 세력이 분열되면 친박진영과 손잡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오 시장의 시정 운영에 대한 짠 평가도 있다. 임기 초반엔 “시장이 안 보인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서울시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이었다. 전임 시장인 이 대통령의 치적과 비교되곤 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늘어놓았지 뚜렷한 성과물이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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