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강병한 기자
입력 : 2010-06-04 18:26:07ㅣ수정 : 2010-06-05 00:57:12
6·2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특별한’ 선거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를 무용화한 표심의 반란,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폭발, 해묵은 지역주의의 균열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근저에는 한층 강화된 세대별 투표 현상, 사회경제적 조건에 기반을 둔 계층투표와 지역색 탈피 등 새로운 표심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3대 투표 흐름의 변화를 짚어봤다.
■ 계층투표 심화
교육·복지 실생활 ‘이해’ 따라 강남-강북 양분
6·2 지방선거에서 서울 강남
강남권의 부유한 보수층 결집에 타 지역도 ‘맞바람’으로 가세하고, 선거쟁점이 개발에서 교육·복지 등의 실생활 이슈로 이동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계층투표 성향은 도드라진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단 0.6%포인트 격차에 불과하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격차는 강남 3구에선 서초 14.7%포인트, 강남 25.6%포인트, 송파 8.2%포인트로 확대됐다. 특히 강남의 경우 한 후보 득표(34.3%)는 오 후보(59.9%)의 반 토막 수준이다.
반면 한 후보는 성북(48.8%)·강북(49.7%)·은평(50.0%)·관악(54.2%)·금천(51.0%)·구로(49.6%) 등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오 후보를 크게 앞섰다. 특히 서민층이 많은 관악과 금천의 경우 14.9%포인트, 7.5%포인트의 큰 격차였다.
기초단체장이나 교육감 선거도 유사하다.
기초단체장 ‘21(민주) 대 4(한나라)’가 웅변하듯 한나라당이 완패한 가운데서도 강남 3구에선 한나라당 후보들이 각각 20.5%포인트(서초), 14.9%포인트(강남), 3.6%포인트(송파)의 격차로 크게 앞섰다. 반면 서·북부 권역에선 민주당 후보들이 관악(19.3%포인트), 강북(18.7%포인트), 금천(14.8%포인트) 등 5~19%포인트의 차이를 내며 압승했다.
교육감 선거도 강남 3구에선 보수 이원희 후보가 서초(42.6%)·강남(44.3%)·송파(36.4%) 등 자신의 서울 전체 득표 33.3%보다 훨씬 높은 득표를 한 반면, 관악(39.8%)·노원(36.2%)·마포(38.8%)·서대문(36.4%) 등에선 진보인 곽노현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 지방선거 표심에 계층적 이해관계가 크게 반영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08년 총선의 경우 뉴타운 등 개발 욕망으로 서울 서·북부의 강북권까지 한나라당식 ‘개발·성장’ 논리에 힘을 싣던 것과 달리, 이번엔 초·중등생 전면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교육·복지 의제가 작동한 결과라는 점에서다.
이들 복지 의제가 결국 ‘큰 정부, 증세’ 등과 연결되는 점에서 부자 구로 통하는 강남 3구의 보수화는 더욱 짙어졌다.
반면 강북권은 이들 의제가 실생활과 직결된 것인데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중심’ 정책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향신문 지방선거보도 자문위원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과거 학연·지연이나 반공주의 등 자신의 사회경제적 요구와 무관한 투표가 많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경제적 이해와 요구에 따라 투표하는 방식이 뚜렷해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 세대투표 뚜렷
‘양극화 피해’ 불만 폭발… 젊은층 대거 투표소로
6·2 지방선거의 특징적 양상은 젊은 유권자들의 폭발적 ‘분출’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명확히 다른 정치 인식과 표심을 표출하면서 선거 결과를 바꿔 놓았다. ‘비정치적 세대’로까지 평가되던 이들 20~30대의 정치사회화는 청년실업 등 사회·경제적 곤경과 경쟁 위주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배경으로 풀이된다.
촛불정국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한층 강화된 이 같은 억눌림이 첫 전국 단위 선거에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세대별 표심의 ‘분리’는 현격하다. 정반대로 갈린 여야 지지 성향은 과거보다 한층 강화됐다. 단적으로 피말리는 접전을 벌인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표심은 40대를 경계로 갈라졌다. 방송 3차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56.7%, 30대 64.2%, 40대 54.2% 등 40대까지는 압도적으로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특히 20~30대의 경우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 비해 22.7~36.4%포인트 더 많은 몰표였다. 반면 50대는 57.6%, 60대는 71.8%가 오 후보를 지지했다. 이 같은 현상은 경기지사, 인천시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 벽을 깨트린 이변의 뒤에도 세대별 표심의 차이가 근인으로 존재한다.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의 승리는 20대(66.5%), 30대(70.1%), 40대(63.9%)의 압도적 지지가 동력이었다. 경남이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지역이고 보수적임을 감안하면 경이에 가까운 득표율이다. 반면 김 후보는 50대와 60대에선 46.2%와 28.6%를 얻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20~30대 젊은층의 투표율 폭등과 표심이 ‘지방선거 이변’의 원인이 된 셈이다. 실제 이들은 총유권자의 39.3%에 달하는 우리 사회의 몸통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세대별 표심의 분리 강화는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사회화’가 배경으로 보인다. 한때 정치적 무관심층으로까지 비판받았지만, 정치참여 계층으로 전환된 점에서다. 청년실업, 경제적 양극화 심화 등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삶의 조건 악화가 이들의 정치사회화의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점에서 반공주의 등 전통적 이념의 틀에서 ‘성장 대 복지’ 등 이들 세대의 이념 틀 자체가 달라진 점도 엿보인다. 동시에 촛불 여중생 등 촛불정국과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500만 조문객의 중심이 바로 이들인 점도 중요하다. 특히 20~30대의 경우 과거 권위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란 점에서 시민의 자유 제한 등 최근 민주주의 후퇴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경향신문 지방선거보도 자문위원인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천안함 긴장고조로 인한 불안과 김제동씨 논란, 인터넷상 의사표현 제한 등 성장하는 동안 경험하지 못한 냉전적·권위적 정치환경에 대한 불만감이 표출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광호 기자>
■ 지역투표 완화
지방권력 독점 폐해 경계… 영호남·충청 몰표 사라져
6·2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 투표 경향의 완화가 뚜렷했다. 영·호남의 견고한 ‘지역 몰표’ 성향은 물론 충청 지역주의도 다소 허물어졌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구도 혁파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다.
지역 색채 완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한나라당 강세가 공고했던 경남이다. “더 이상 경남은 영남이 아니다(한나라당 전여옥 전략기획본부장)”라는 표현대로 비한나라당 후보들이 약진했다. 그 상징은 경남지사 선거의 무소속 김두관 후보로 53.5%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후보를 눌렀다. 김 후보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획득한 25.4%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광역의원은 민주당 3명, 민주노동당 5명 등 비한나라당 후보 16명(29.6%)이 당선됐고, 비한나라당 기초의원도 101명(39.1%)이나 탄생했다. 2006년 선거에서 비한나라당의 광역·기초의원 비율이 각각 11.3%와 23.9%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지역주의 투표 경향이 밑바닥부터 허물어졌다는 방증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44.6%를 득표, 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는 10.8%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당의 ‘철옹성’ 호남에서는 거꾸로 한나라당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전북, 전남, 광주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각각 18.2%, 13.4%, 14.2%를 얻어 ‘마의 두자릿수’ 득표율을 올렸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의 각각 7.8%, 5.9%, 4.0% 득표와 비교하면 놀라운 상승이다.
자유선진당 강세 지역인 충청에서 민주당의 약진도 눈에 띄는 점이다. 민주당은 3개 광역단체장 중 충북과 충남지사를 차지했고 기초단체 33곳 중 9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권력 독점화’의 폐해에 대한 주민의 냉정한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영남·호남·충청에서 한 정당이 지방정부와 의회를 모두 독점하면서 발생한 재정파탄, 부패비리, 난개발 등에 주민들이 염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특히 4대강 사업(경남), 세종시(충청) 등 유권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정책 의제가 지역별로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되면서 지역구도는 ‘종속 변수’로 밀린 측면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사회경제적 의제가 부각되면서 지역기반 투표 행위가 대폭 완화된 것”이라며 “향후 지역구도를 이용한 정치가 쇠퇴하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문화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강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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