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시민사회서 운동 결실…제3정당 출현 예상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동호 기자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사회 출신 박원순 변호사의 당선을 두고 정당정치에 맞선 생활정치의 승리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교육비 증가와 전세난 등 민생고가 날로 더해지고 있지만 여야를 막론한 기존 정당정치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담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20~30대는 물론 과거 '386 운동권'에서 이제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된 40대가 박 변호사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생활정치 욕구가 정당정치 눌러 =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선거에 관한 토론을 하고 정보를 수집했다는 회사원 정모(28)씨는 "박원순이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면 아마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20∼30대 유권자층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씨는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이 제시하는 정책과 프레임에서도 더는 미래를 볼 수가 없다"며 "시민단체 출신인 박원순이라면 민생과 동떨어진 정치공학이 아니라 나 같은 일반 시민의 관점으로 일을 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진보진영 시민사회는 정치제도 개혁 등 거시적 문제뿐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생활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박 변호사가 몸담았던 참여연대가 대표적인 예다.
참여연대는 2001년 이동통신 요금 인하 서명운동을 벌여 엄청난 호응을 얻었으며 이후 최저생계비 현실화 캠페인, `반값 등록금' 운동 등 민생과 직결되는 운동을 잇달아 진행하면서 시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뿐 아니라 각 지역 주민의 삶 개선에 초점을 맞춘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여럿 생겨난 것을 비롯해 무상급식, 청년실업, 자치단체 예산 감시 등 시민과 밀착한 현안을 다루는 방향으로 시민사회 운동이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라면 시민사회에서 자신의 이력 대부분을 쌓은 박 변호사가 '정당 후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이번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는 분석이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지 확충 등 삶의 질을 높이라는 생활정치적 욕구를 기존 정당정치가 충족하지 못했다"며 "이번 선거는 이념 대립 구도에서 생활정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바뀌는 흐름을 탄 결과"라고 말했다.
◇새로운 바람 '안풍'(安風) = 박 변호사를 지지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존재도 이번 선거 결과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백신 박사'로 잘 알려졌을 뿐 아니라 공정한 사회를 촉구하고 `청년 콘서트' 등을 통해 평소 청년들에 대한 멘토(조언자)로 나서면서 대중의 인지도와 호감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여기에 기성 정당과 거리를 두는 등 때묻지 않고 참신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박 변호사에게 상당한 후광으로 작용했다.
그에 비하면 박 변호사는 '안풍'을 업기 전까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미한 지지율을 보이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다. 후보로 나선 뒤 '박 변호사의 인지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불안감이 한때 시민사회에서 나오기도 했다.
회사원 이모(37)씨는 "사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시장 일을 잘해낼지 의구심이 있었지만 기존 정치권에 발 담그지 않은 안철수에 대한 기대로 표를 던졌다"며 '안풍'이 자신의 투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선거 초반 범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기꺼이 박 변호사에게 넘겼고, 막판에 박 변호사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은 편지 한 장을 건넸을 뿐이지만 단 두 차례의 '안풍'이 선거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제3정당' 등장할까 = 이렇듯 시민사회 출신 인사가 정치 무대에 본격 진입했고 그 추동력 역시 기성 정당이 아닌 시민사회였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표심이 '대안 정치세력' 형성에까지 이를지에 관심이 쏠린다.
'세금혁명당' 등 인터넷상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이들의 모임이 급속히 늘어나는가 하면 SNS를 매개로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행위가 일상화하면서 정치가 더는 기성 정치인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1990년대 유럽에서 녹색당이 등장해 높은 지지를 받은 것처럼 기존 좌ㆍ우 이념틀에서 벗어난 '제3의 정당'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세력화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원순도 민주당에서 출마하면 당선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지만 기성 정치권에 마음을 못 주는 20~30대 부동층의 바람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렇게 정치적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실험이 시작된 이상 이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정치권에 뛰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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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28 15:09 송고
지난 26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제2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자료사진) |
취업·보육·노후·물가·전세값 고통 항의
양극화 현상 심화에 투표로 기성 정치 질타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김효정 기자 = 20~40은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조용한 분노를 표로 말했다.
박원순 범야권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 이 과정에서 드러난 20~40대의 표심은 '조용하지만 무서운 분노'로 요약된다.
길거리로 떠들썩하게 나서기보다 투표장에서 조용히 표로 여당을 외면했다.
지난 15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서울을 점령하라' 시위는 오후 10시께 대한문 앞에서 끝났다.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라는 구호를 앞세운 이 집회는 애초 밤새워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시간을 채우지 못했고 종료 당시 참가 인원도 경찰 추산 600여명, 주최 측 추산 1천명 수준이었다.
이 시위는 전 세계 80여개국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양극화 시대 하층부의 분노 표출 시위가 한국으로까지 번질지를 살펴볼 만한 중요한 시위였지만 예상과 달리 조용하게 끝난 셈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거리로 나섰던 20~40대는 우리나라에선 조용히 투표장으로 움직였다.
20대 대학생들은 등교에 앞서 아침 일찍 투표소에 들렀다. 투표 인증샷을 지인들에게 보내 투표를 독려했다.
30~40대 넥타이 부대는 퇴근 후 대거 투표소로 몰려 박 후보의 시장 당선을 결정지었다.
방송3사의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에 나타난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투표장에 대거 나타난 20~40대의 표심이 정부·여당에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20대 중 박 후보 지지율은 69.3%로 나경원 후보(30.1%)의 배를 넘었다.
30대와 40대의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도 75.8%, 66.8%로 압도적이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0대 42.5%, 30대 40.4%, 40대 50.6%로 모두 정동영 후보를 크게 앞섰다.
그랬던 20~40이 '바꿔보자'며 투표소로 몰린 이유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현상에 원인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20대는 취업, 30대는 보육, 40대는 퇴직과 노후 문제 등 이들 세대를 어렵게 하는 변수는 도처에 널려 있다.
물가 급등에 따른 식비 상승, 전세난에 따른 주거비 급등은 서민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이구백(20대 90%는 백수), 메뚜기 인턴(인턴만 옮겨다니는 젊은 세대), 취집(취업 대신 시집), 삼초땡(30대초 퇴직), 동태(한겨울에 명퇴),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등 이들 세대가 자신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신조어는 날로 늘어만 간다.
2000년대 학번인 20대는 대부분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이지만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실업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는 세대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려다간 휴학을 밥먹듯이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은 이제 사전에서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30대는 오히려 20대보다 야당 성향이 강하다. 최근 진행된 역대 선거에서 야당에 가장 강한 지지를 보낸 세대 중 하나다. 90년대 학번인 이들은 학창 시절에 워드 프로세서를 활용해 리포트를 처음으로 작성했다. 최근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효율적으로 다룬다.
40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1980년대 말 민주화 시위의 경험이 있다. 한때 저항을 주도했던 세대다. 경제 호황기에 직장은 어렵지 않게 들어갔지만 전셋값과 물가 급등,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고통을 몸으로 겪으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20~40대 연령층이 처해 있는 삶의 조건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며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조사 결과, 시민이 가장 중요시하는 정책과제로 일자리, 교육격차, 주거불안 등의 문제가 꼽혔다. 이 문제들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 이들 연령층"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 문제들에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를 표방하는 후보에 호감을 가지는 반면 특권층만을 위한 정치인이라고 인지되는 순간 지지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나경원 후보의 '억대 피부관리설' 등은 개인의 도덕성 차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전반의 문제로 인식됐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도 "20~40대는 50~60대에 비해서 정치적인 관심이 높지 않고 이념적으로도 분명한 방향을 갖지 않은 세대임에도 거의 몰표가 나왔다"며 "먹고사는 문제가 직결된 이들 세대의 어려운 삶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했다. "결국에는 '경제도 못 잡고 서민도 못 잡은' 현 정부의 실정이 밑바탕에 있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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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28 15:0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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