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청장 유 덕 열
지난 12일 주말을 맞아, 모처럼 아내와 함께 친구 내외와 부부동반으로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 택시운전사 영화를 관람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리는 내용은 짐작하고 극장을 찾았는데 막상 영화를 감상하다보니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눈가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택시운전사가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독일의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의 부탁으로 광주로 향하던 80년 5월 그날 필자는 부마사태 주동 관련자로 수배령이 내려져 몇 개월을 피신하던 중 5.18 확대계엄 후, 5월 28일 아침 9시경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김삼오라는 친구의 집에 숨어 있다가 수사관 3명에게 붙잡혔다.
서소문 서울지구 보안대로 끌려가 저녁까지 조사를 받고 그날 밤 비행기로 10시경 부산지구보안대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해 36일간의 고문과 구타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그때 보안대 수사관들은 동아대 정외과 3학년인 필자에게 "너 임마 김대중에게서 얼마 받고 데모했어,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주지만 거짓말하면 광주에서처럼 전라도 새끼들은 씨를 말려야 돼."라며 사람이 질리도록 구타를 했다.
필자는 "김대중 씨를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고 더구나 돈을 받은 일은 더더욱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이 10여일간 잠을 재우지 않고 온갖 고문과 구타 등 개돼지만큼도 취급하지 않고 계속 조사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숨을 돌려가며 20여일 정도 끊임없이 괴롭혔다. 대략 조사가 마치는 듯하여 정신이 드는가 했더니 그때부터는 밤 시간이 되면 다른 취조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필자는 보안대에 끌려간 지 36일 만에서야 헌병대 영창으로 내보내졌다. 매일같이 주야로 수많은 사람들을 취조하느라 비좁은 보안사 지하실. 조사해야 할 사람이 넘쳐 나도록 많기 때문에 조사가 끝난 사람 중 경미한 사람은 석방하고 구속시킬 사람은 헌병대 영창으로 보내면 될 텐데, 몸에 구타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헌병대로 보내지 않고 외상이 다소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그들도 다소의 인간성은 남아 있었던지 광주에서처럼 죽이지는 않고 그래도 마지막 목숨만은 살려줬다. 그해 5월 28일 보안대에 끌려와 7월 2일에야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연산동의 15헌병대로 이첩되었다. 구속영장도 없이 무려 36일간을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받은 모진 고문과 구타와 견딜 수 없는 치욕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참혹한 상황이었다.
헌병대에서는 하루 종일 삼청교육을 받았는데, 이곳은 눈만 깜박거리고 숨만 쉬면서 명령대로 따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이 대했다. 화장실을 갈 시간과 자유조차 주지 않는 감옥영창, 참으로 견디기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필자는 한 달여의 헌병대 삼청교육을 받고 대학생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통해 학장동에 위치한 민간구치소로 이감되어 계엄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어보니, 대학교는 퇴학 처분되어 동아대학교 졸업에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부산, 마산 지역에서 5.18시국사건으로 수백 명이 보안대 조사를 받았으나, 구속된 사람은 대학생 8명과 민간인 20여명으로 참으로 이 분 들의 운명도 가혹했다.
그들도 어디선가 영화를 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37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묘한 회한이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서 영화도 보고, 필자는 또 이렇게 동대문구청장이라도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밀려오는 시대의 아픔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감정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필자는 그래도 구민을 위해 봉사하는 맡고 있는 사명이 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 한 몸 바스러져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구민들을 잘 살피는 것이 필자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다. 37만 동대문구민의 소중한 꿈과 희망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본다.
201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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