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주민들의 반발을 샀던 지방의회 의정비가 결국 크게 올랐다. 2월 12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08년 지방의원 의정비 지급기준 현황' 자료에 따르면 광역 자치단체 의정비는 평균 13%, 기초자치단체는 평균 36% 인상됐다. 이는 지난해 제시한 38% 인상안에서 단지 2%가 낮아진 수준이다.
지난해 말 행자부는 의정비 인상율이 지나치게 높은 44개 자치단체에게 인하를 권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교부세 감액, 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 공모·평가 시 감점 등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중 9개 자치단체는 보란 듯이 인상을 강행해 지역주민의 피해만 키웠다.
서울 노원·강북·금천·관악·중랑·은평의회와 울산 중구·동구의회는 재정자립도가 2008년 기준 15.1~41.8%에 불과한데도 모두 53~75% 의정비를 인상해 5000만원 안팎의 연봉을 확정했다.
이들이 행자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아 깎일 예상액은 서울지역의 경우 9954만 원에서 1억4190만 원에 이르며, 경기도 의회는 7252만 원의 연봉을 확정해 5억3312만 원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주민 없는 지방 자치... 지역 토호들의 장악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정비를 올리는 것이 지금 지방자치의 현주소이다. 통상 규모가 큰 집단보다 규모가 작은 집단에서 사회적 참여와 협동이 잘 이뤄지지만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선거 중 가장 투표율이 낮은 게 지방선거다. 근본 원인은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8장에는 국가와 지방 사이에 권한을 배분하는 지방자치제도를 명시하고 있으나, 관련 내용은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조직에 대한 내용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분권은 지방정부의 자율성에만 중점을 둔 단체자치에 머물러 지방정부의 정책과정에 주민이 적극 개입하는 '주민자치' 수준은 크게 미비하다.
또한 지방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종친회나 향후회 등과 같은 친목단체와 민주평통자문회의·새마을운동조직·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자유총연맹 등에 얽히고 설켜있는 지역 토호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지방자치가 진정한 지역공동체를 건설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정비 인상을 주도한 한나라당을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
주민들을 얕보는 지방의원들의 독선을 차단할 수 있는 대안은 주민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주민자치'를 만들어내는 길 뿐이다. 주민자치는 제도적 틀과 결합된 주민운동을 통해 시작할 수 있다. 주민운동은 절실한 동기, 분명한 목표, 실현 가능한 방법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지난해 주목을 받았던 하남시 주민소환운동이나 2003년 부안 핵시설 반대운동 등은 주민자치를 보여준 맹아라 할 만하다. 하남시 주민소환의 경우 비록 투표율이 2.2% 부족해 시장 소환에는 실패했지만 2명의 시의원은 사상 처음으로 소환되었다. 그러나 이를 실패로만 포장한 언론 때문에 전국적인 주민소환 움직임은 한풀 꺾이고 말았다.
18대 총선을 앞둔 지금, 주민을 대변하겠다는 정치세력들은 엉뚱하게 내부 분란에 빠져 의정비 인상에 반발하고 있는 주민들의 분노를 대변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의정비 인상을 반대해온 주민들이 의정비 인상을 주도한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주민과 국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찾아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