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전인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는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생태지평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해 운하를 현지조사한 뒤 10여차례에 걸쳐 기획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는 '제1 공약' 경부운하를 내세워 물류혁명을 이루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취재 결과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경부운하의 허실을 집중적으로 취재해온 김병기 기자를 미국현지에 파견, '생태지평' 전문가와 함께 미국 주요 운하들의 현재 상황을 조명해보는 2차 해외탐사보도 '미국운하를 가다'를 기획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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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리키 교수가 프리젠테이션을 보아가며 카트리나 폭풍해일의 피해 규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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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GO(Mississippi River Gulf Outlet:미스터고) 운하는 지난 40년대부터 해군과 선주, 해운업자들이 로비를 벌여 60년대에 완성됐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그곳을 완전 폐쇄한다. 당시에도 막대한 건설비용이 들었지만, 복원 비용은 무한대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운하건설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운하건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사망했다."
폭풍해일 모델링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산 마시리키 미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수(수문 모델링, 물의 흐름 전공)가 '이명박 운하' 찬성론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이다. 지난 58년부터 65년까지 8년여에 걸쳐 뉴올리언즈 인근 습지를 통과해 멕시코만과 뉴올리언즈를 이은 122km의 MRGO운하가 곧 폐쇄될 운명에 처했다. 아니, 지금도 배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운하로 인한 피해를 뉴올리언즈 주민들이 짊어져야 했고, 이를 폐쇄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도 미국 국민의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 "국민 세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경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다.
국민 세금 한 푼도 들이지 않겠다고?
당시 MRGO 운하의 총 공사비는 9200만달러(약 920억원). 개발 찬성론자들은 소위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마시리키 교수는 "환경이 파괴되고 나서야 환경의 가치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생태지평연구소 박진섭 부소장과 함께 지난 2월 29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배튼루즈시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주립대 마시리키 교수를 찾아갔다. 통역은 같은 대학의 '허리케인센터' 연구조교인 양영석씨가 맡았다.
우선 지난 2005년 미국 전역을 강타한 악몽부터 떠올려보자. 카트리나는 시속 233km의 속도로 '재즈의 도시'인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즈를 급습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 주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당시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났다. 하지만 재난을 키운 원흉이 '운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다. 이를 주목한 국내 언론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MRGO운하와 GIWW(Gulf Intra-Coastal Waterway. 걸프만연안수로)운하로 인해 운하건설 이전보다 6~7배에 달하는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왔다. 운하는 폭풍해일이 급습했을 때, 바닷물을 육지로 실어나르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운하의 건설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했던 대규모 습지가 사라졌다."
마시리키 교수의 말이다.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카트리나와 경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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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GO운하와 연결된 산업운하의 갑문. 이 갑문을 확장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나, 카트리나 사고 이후 중단됐다. |
ⓒ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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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뉴올리언즈의 카트리나 피해사례를 경부운하에 직접 대입하기는 어렵다. 경부운하가 건설되고 선박 통행을 위해 낙동강 하구에 대규모 준설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이와 비슷한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이를 예견할만한 구체적인 지형-기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학자들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소위 '이명박 운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마시리키 교수의 말은 귀담아들을 대목이 많다. 우선 양영석씨의 배경 설명을 들어보자.
"MRGO 운하 찬성론자들의 논리는 구불구불한 미시시피강을 따라 하구까지 배가 다니는 것보다 뉴올리언즈에서 멕시코만으로 직선 운하를 뚫어 약 64km의 운항 거리를 단축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박들이 통행료를 지불할 것이고, 따라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운하를 파는 기간에 한해서 5000~15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초기 준설작업을 하면서 지역 소득 증대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운하 찬성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형 수출선은 통과할 수 없었고, 뉴올리언즈 일대의 해상 교통의 3%만을 담당했기에 경제적 이익은 계속 감소했다. 1998년의 경우 MRGO 운하를 이용한 바지선은 하루 평균 4.8대에 불과했다.
반면 운하 유지비는 계속 증가했다.
"허리케인이나 큰 비가 오면 토사가 쌓였습니다. 연간 220억원의 준설비용이 들었습니다. 98년 허리케인 '죠지'로 인한 준설비용은 417억원이었습니다. 배 한척당 하루 평균 유지비용이 1260만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까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60년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의 MRGO 운하 찬성론자들의 판박이인 셈이다. 현재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운하가 경제적 측면에서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 건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된 것이다.
MRGO운하 갑문 확장 프로젝트 중단... 폐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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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석씨가 만든 그래픽. 카트리나 급승 당시 운하를 통한 '깔때기 효과'를 보여준다. |
ⓒ 양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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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시리키 교수의 카트리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렇듯 경제성이 희박한 운하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카트리나였다. 우선 MRGO운하와 GIWW운하가 폭풍해일로 사나워진 바닷물을 양쪽에서 유입시키는 수로 역할을 하면서 제방이 붕괴돼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즉 양쪽에서 깔때기 형태로 들어오면서 유속이 한층 빨라진 바닷물이 제방을 덮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시리키 교수는 "미시시피 강변에 높은 제방을 설치해 본류로부터 분류 하천으로의 민물과 토사 유입이 차단됐다"면서 "MRGO 운하의 경우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큰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운하의 폭이 넓어졌고, 바닷물이 그곳으로 유입되면서 나무 숲이었던 습지는 짠물에 적응력이 있는 갈대 숲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우리 일행에게 카트리나 급습 당시 습지가 살아있을 때를 가정해 만든 시뮬레이션 형태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폭풍해일의 완충작용을 해야할 습지가 갈대 숲으로 변한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결국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큰 배가 운행할 수 있도록 MRGO 운하와 미시시피 강 사이 갑문을 확장하는 프로젝트가 공병공사에 의해 진행됐지만 카트리나 급습 이후 중단됐다. 이곳의 운하를 관리하는 정부 관계자는 카트리나의 피해를 키운 것이 운하였다는 마시리키 교수의 분석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다. 하지만 오는 2009년까지 MRGO운하의 중간 지점에 댐을 만들어 짠물과 함께 배의 통행을 차단키로 결정했다.
마시리키 교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년대만 해도 40-50마일에 걸쳐 있는 습지와 숲이 보호됐습니다. 그런데 선주들이 로비를 해서 걸프만 연안수로를 만들었습니다. 또 미스터고 운하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까지 미스터고 운하의 중간 부분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차단하여 운하 건설 이전 환경을 모방할 예정입니다."
그는 이어 "운하를 다시 다 덮어서 원래 상태로 되돌리면 좋은 데, 막대한 복구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완전 복구를 하지 못하고, 현재처럼 파놓은 상태에서 그냥 방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 주민들은 15년-20년전부터 운하 폐쇄를 원하고 있지만, 이곳에 접안 시설을 해놓은 업자 등이 반대해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면서 "미시시피 강물의 지류를 되살리는 등 민물을 습지로 공급하기 위한 습지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경부운하? '빨리 빨리'하지 말라... 건설은 쉬워도 복구는 어렵다"
그는 '이명박 운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에게 운하를 둘러싼 '한국적 상황'을 전달하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미스터고 운하 건설 당시 환경론자 등이 운하 건설로 인한 피해 우려를 제기했으나, 운하 찬성론자들은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국은 토목 기술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터널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 지 몰라도 터널 지역 기반암인 석회암이 물에 녹아 붕괴되는 사건이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뮬레이션은 해보았는가. '빨리 빨리'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측면을 검토해야 한다. 30-40년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면밀하게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건설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복구는 어렵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돈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은 데 그건 믿을 게 못된다"면서 "전세계적으로 그런 사람의 주장이 주류를 이루어 왔는 데, 개발을 찬성하는 연구자 뿐만 아니라 개발을 반대하는 연구자에게도 똑같이 (연구비를) 지원해 면밀한 연구를 거치는 것이 건강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카트리나 피해 당시 폭풍해일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간 '10년동안 운하를 연구한 100명의 학자'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는 이런 학자는 없는 것일까. 온갖 정보와 데이터를 밀실에서 독식하고 있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왜 아직도 구체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마시리키 교수와 1시간여동안의 인터뷰를 마친 뒤 오크나무가 울창한 루지애나 주립대 교정을 걸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뉴올리언즈=김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