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이 의장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시의원 30명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부산시의회도 하반기 의장단 선거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다시 차떼기 이미지가 되살아날까봐 전전긍긍해 하는 한나라당은 김귀환 의장만을 징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 또 부산시의회 금품살포 의혹과 관련해서는 경찰이 '무혐의 내사 종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지방의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면에서 그냥 단순한 징계 또는 수사흉내만 내는 식으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사건은 개인의 비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난 구조적 사건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들이대지 않는다면 이와 유사한 사건이 전국 지방의회에서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
▲ '돈봉투 제공' 김귀환 서울시의장 영장 의장 선거를 앞두고 동료 시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뿌린 혐의(뇌물공여)로 경찰이 서울시의회 김귀환(59) 신임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한 가운데 13일 오후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김귀환 신임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 연합뉴스 김현태 |
| |
공공연한 시의회 뇌물파동, 유권자를 뭘로 보기에
지방의회 의원은 국민들이 직선으로 뽑는 선출직 공직자 중에서 정치적 무관심의 정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대선이나 총선 등의 투표율도 낮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적 관심도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관심이 상당히 떨어지고, 그나마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에는 누가 출마했는지 이름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인물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정당 선호도에 따른 쏠림 투표 현상이 벌어지면서 전국의 지방의회는 적게는 70%, 많게는 90%의 의석을 제1당이 차지하는 기형적인 의석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시와 부산시의회의 경우는 그 정도가 전국에서도 심한 편으로 서울은 94%, 부산은 87%가 한나라당 소속이다.
이러한 의석 구조 하에서는 의회 자체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회를 기준으로 외적으로는 단체장을 견제해야 하고 내적으로는 소수 정당이 다수 정당을 견제하는 구조가 되어야 하지만, 현재 지방권력은 다수당의 싹쓸이와 지방의회 절대 다수당과 단체장의 일치로 내적인 견제나 외적인 견제가 모두 무장해제가 되어버린 상태이다.
현재 지방권력은 대의제가 그들을 뽑은 주민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루소가 이야기했듯 유권자인 주민들은 선거일 딱 하루만 주인이었다가 4년 내내 노예로 살게 된 형국이다. 유권자를 노예 취급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공공연히 의장단 선출에 돈 봉투가 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을 위한 대의제의 장치들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직접민주주의이다. 지난 몇 달간 이어져온 촛불 정국도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고, 국회가 이를 적절하게 견제하지 못하는 공간에 촛불이 자리한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광장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정치와 정당정치가 중심인 대의제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의제의 기능이 상실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타개책에 대한 논의였다.
논란의 와중에도 촛불이 참여민주주의로서 대의제에 대한 구원투수 기능을 했다는 것에는 모두가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복마전이 되어버린 지방의회를 향해서도 유권자들은 또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까?
부패한 지방의회를 향해서도 촛불 들어야 할까
촛불이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유효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방의회에서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지방권력에는 도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의제에서 도입할 수 있는 직접민주정치 제도는 3가지 정도다.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이 그것이다. 현재 지방정치에는 이중 국민투표와 국민소환에 상응하는 주민투표 제도와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이미 주민투표제도는 혐오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정부의 주도로 여러 차례 실시된 바 있고, 주민소환선거도 비록 시장 소환에는 실패했지만 경기도 하남시에서 전국 최초로 실시된 바 있다. 역사적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계점도 없지 않다. 주민투표의 경우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보다는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도구로 사용된 면이 없지 않았고, 하남시에서 실시된 주민소환도 광역화장장 유치를 둘러싼 논란이 하남시장에 대한 소환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님비(NYMBY) 현상과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의 경험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끼치는 의미가 결코 작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명백한 불법에 대하여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 명백한 비리가 발견된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에는 지극히 당연하게 주민소환이 추진되어야 한다.
|
▲ 하남시 선거관리위원회가 공표한 주민소환투표청구요지. |
ⓒ 하남시선거관리위원회 |
| |
지방권력엔 촛불보다 강력한 '주민소환제'가
현재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소환 사유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주민들에게 폭넓은 주민소환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묵과할 수 없는 비리는 1차적 소환 사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적 당위에도 실제로 주민소환이 추진될 지와 실제 선거에서 주민소환이 이뤄질 지의 여부는 하남시의 사례로 볼 때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 전국적으로 주민소환이 추진된 사례는 많지만 실제로 투표까지 이뤄진 것은 하남이 유일하고, 그나마 주 타깃이었던 시장소환은 투표율 미달로 개표 자체가 무산되어 버렸다.
광역화장장 유치라는 주민들의 직접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압도적으로 소환여론이 높았음에도 투표율 미달로 소환에 실패한 사례는 직접민주정치가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서울시의회 김귀환 의장 돈 살포 파문의 경우도 일반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자아내 오히려 정치 무관심을 더 높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95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다루는 지방의회의 이런 부패상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중앙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직접적 견제장치가 없는 곳에 촛불이 피어났지만, 직접적 견제장치가 있는 지방권력에 대하여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정치 냉소만이 자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중앙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와 제어가 제도적 한계로 어려웠다면,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지방권력에 대해서는 시민사회가 주민소환이라는 견제장치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만한 지방권력에 멋진 카운터펀치를
주민소환은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지만, 역으로 주민소환을 통하여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환기시킬 수도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불거진 촛불시위와 이번 지방의회의 의장단 선거 비리 등 대한민국의 대의제 시스템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근원에는 제어되지 않은 권력의 오만한 질주가 자리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는 행정권력에 의회권력까지 개헌선을 넘게 완벽하게 장악한 보수 권력이 있고,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에 금품이 오간 추악한 비리는 다수당이 90% 가량을 싹쓸이한 비정상적 권력 집중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권력의 독주를 촛불이 막았다면 지방권력의 독주는 주민소환제가 막을 수 있다. 제도화된 장치라는 측면에서 촛불보다 더 효과적인 견제 수단이 주민소환제다. 대한민국의 시민사회가 정치 무관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소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위기라고 생각되는, 87년 6월 항쟁 이후에 차곡차곡 쌓아온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만한 지방권력에게 주민소환이라는 멋진 카운터펀치를 날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