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칼럼]국어부터 제대로 사용하라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나라 중 영어를 잘하는 나라는 잘산다. 그러므로 한국인 모두 영어를 잘하도록 하자.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이라고 이명박 당선인은 말했다.
당선인의 거룩한 뜻을 시비하면 바로 ‘정치 쟁점화’되는 것인가? 게다가 그 정치란 모조리 나쁘다는 것인가? 왕년의 저 무시무시했던 독재자들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가 하는 모든 말처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실 여부는 따져 보아야 하지 않겠나?
도대체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 영어를 잘하는 나라 중에 잘사는 나라로 정말 어떤 나라가 있단 말인가? 필리핀인가, 인도인가, 파키스탄인가, 케냐인가, 레소토인가, 짐바브웨인가, 우간다인가? 여하튼 한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나라가 아닌데도 그런 영어 공용어 나라들을 들먹이며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로 설명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니 ‘영어 공용어’ 따위는 빼고 다시 따져보자. 세상에 잘사는 나라 중에 영어가 국어인 나라 외에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잘사는 나라가 과연 어디 있는가?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 그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모두들 자기 나라 말로 잘살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 제 나라 말로 잘살아
그 어떤 나라에서 지금 당선인이나 인수위가 하자는 식으로, 마치 정복군이나 점령군이 쳐들어와 말을 아예 영어로 바꾸자는 식의 무자비한 외국어 정책을 강요하고 있는가? 설령 그런 나라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벌써부터 영어 식민주의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서, 영어 물신화로 인해 국어가 위기인 나라에서, 제 나라 말로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치겠다니 무슨 소린가? 도대체 어쩌자고 전 국민 영어교육 강요를 신앙처럼 외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교육을 자율성과 다양성 원칙으로 한다면서 영어교육을 획일적으로 전 국민에게 강요한다니 도대체 무슨 자율이고 다양인가? 대학입시도 그렇게 한다면서 다시 본고사는 절대 없다느니 교과서 공부만 하면 된다느니 하는 것도 자율과 다양을 부정하는 소리 아닌가?
경제도 그렇게 한다면서 한반도 대운하라는 황당무계한 소리 말고도 대중의 인기를 좇아 매일매일 우왕좌왕 쏟아대는 각종 선심정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도리어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위원회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모두 대통령 직속으로 삼는다는, 타율화와 획일화가 본질 아닌가?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바친다고 했던 당선인은 이제 대한민국을 하나님에게 바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벌써 영어 신앙에 바쳐버린 것은 분명한 듯하다. 나아가 미국 시장이나 미국 정치나 미국 군대 따위에 대한민국을 바치고, 내심으로는 아예 미국의 제51번째 주로 바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망상까지야 하겠는가?
창조적 실용주의니 신발전체제니 화합적 자유주의니, 친기업 아니라는 기업친화니, 요란스럽게 떠들지만 확실한 것은 모조리 미국주의, 영어주의, 물질주의, 경제주의, 효율주의, 생산주의, 금전주의 따위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인 듯하다. 기껏 그런 정도로 그렇게도 무능했다고 비난했던 앞 정권을 능가한다고 야단법석이니, 그 능력은 아직 잘 모르지만 과시욕에 설쳐대기는 더욱 더 극심한 듯하다.
함부로 영어 지껄이지 마라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할 수도 없다. 당선인이야 영어를 잘하는지, 잘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아니 대통령이라면 곁에 완벽한 통역도 많겠고, 자신이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통역을 통해 하는 것이 대통령은 물론 한국인으로서의 체통이 서는 일이니 제발 그 자신도 함부로 영어를 지껄이지 마라. 대신 우리 말이나 우리 글부터 제대로 사용하는 최소한의 기본부터 갖추어라.
〈 박홍규 / 영남대교수·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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