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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 상인들 “관광명소는 무슨…굶어죽을 판” (경향신문)

말글 2008. 11. 20. 23:37

풍물시장 상인들 “관광명소는 무슨…굶어죽을 판”
입력: 2008년 11월 20일 11:59:57
 
“오늘 2만원 벌었나? 요즘 개시 못하는 날이 허다해요.”

동대문에서 신설동으로 이전한 ‘풍물시장’은 입점준비 미비와 경기불황,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더욱 한산한 모습이다.

서울풍물시장(Seoul Folk Flea Market)이 개장한 지 7개월.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만들겠다던 당초 서울시의 공언과 달리,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 시절만 못하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짓기 위해 지난 4월 그 자리에 있던 벼룩시장을 신설동 옛 숭인여중 부지로 옮겼다. 80억원을 들여 총면적 7941㎡에 2층짜리 철골 구조물을 세운 것. 1층에는 민속품과 골동품·토산품 등을, 2층에는 잡화와 전자·공구 등으로 구분했다. 개장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꼭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 상인들 “1200만 관광객? 서울시 약속만 믿었는데…” = 현재 풍물시장은 갑자기 불어 닥친 한파에 어수선한 분위기다. 상인들은 두터운 점퍼를 입고 개인용 난방기에 의지해 몸을 녹이고 있었다. 미처 난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데다 1층 한쪽 벽은 아예 트여있기 때문이다. 청계천의 이미지를 담아 한자로 川(천)자를 형상화한 건물이라지만, 상인들은 “노점과 다를 바 없다”고 한탄했다. 손님들의 발길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지만 상인들은 대부분 오후 4시30분께부터 문을 닫는다. 서울시가 내놓은 장밋빛 청사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사가 안 끝났으니까 이렇게 춥지. 난방도 안 되고. 원래 서울시에서 다 해주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해주질 안잖아요. 입점한지 8개월이 다 됐는데도 이 모양이니 손님들이 구경이나 오겠어요? 매출이요? 말도 말아요. 서울시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이전준비가 안됐는데도 들어왔는데 답답해요.”


 


토속품을 팔고 있다는 ㄱ씨는 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말했다. 동대문풍물시장 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가 공개한 ‘서울풍물시장 이전을 위한 협약서’에는 공사완료 시점이 방범, 방풍을 위한 개폐형 투명외벽과 냉난방 시설 완료시점으로 돼 있었다. 개장한지 7개월이 지났지만 서울풍물시장은 여전히 공사 중인 셈이다.

볼멘소리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동대문운동장에 비해 상권이 없고 외진 위치상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신설동역에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야 풍물시장에 도착하는데 다른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며 “택시기사들도 풍물시장 위치를 모르더라”는 것이다.

서울시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자치위는 서울시가 ▲풍물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해 지속 협의 ▲주변의 여유 공간을 이용해 이벤트성 영업행사 허용 ▲올해 12월 중 숭인여중 부지교환 완료 등을 약속했지만 하나도 지켜지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4만원 선에서 합의했던 임대료를 지난 1일 서울시가 1층은 7만원대, 2층은 6만원대로 책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풍물시장 2층에는 한 상인이 ‘죽어있는 풍물시장 사용료 부과 절대 반대’ ‘오 시장은 약속이행을 즉각 실천하라’ 등을 요구하며 지난 11일부터 단식 농성 중이다.

“신설동으로 이전한 것은 우리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에요. 서울시 정책 때문이었지. 우리는 대안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전한 건데, 엄동설한이 왔지만 뭐가 돼 있나요. 풍물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초기에 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주차장도 공사한다고 막아놓고 실제로 공사는 하지 않고. 주차장이 없어서 돌아가는 손님들이 태반인 판에 이게 과연 활성화인가요.”

상인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상인 ㄴ씨는 “많은 물건 속에서 보물을 찾는 게 풍물시장의 묘미인데 서울시는 ‘이런 디스플레이는 안 된다’ ‘이 상품은 안 된다’ ‘나이 먹은 사람은 안 된다’고 제재만 한다”며 “그렇다면 이게 풍물시장인가, 백화점이지”라고 비판했다.

황학동 시절부터 동대문을 거쳐 신설동까지 10여 년 동안 구제품 장사를 해왔다는 ㄷ씨는 “풍물시장이라면 사방이 트여야 하고 조금 자유분방하게 물건도 진열돼 손님들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장한지 5개월만에야 외국인 관광객을 봤을 정도인데 이게 어디 오 시장이 말하는 1200만 관광유치 사업인가. 홍보라도 제대로 해 달라”고 답답해했다.

◇ 서울시 “할만큼 했다…상인들이 각성해야” = 서울시 가로환경개선추진단 풍물시장관리팀 이병근 팀장은 상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치위가 주장하는 협약서 내용에 대해 “법적인 효력이 없다. 직인이 찍혀야 법적인 효력을 갖는 것이다. 이전과정에서 주고받은 대화일 뿐이고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일 뿐”이라며 “풍물시장은 공설시장이다. 그러나 진열방식 등을 규제한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현재까지 진행 중인 공사에 대해 “풍물시장을 지을 때부터 고정된 성냥갑 개념이 아니라 노점과 상가의 중간 형태로 계획한 것”이라면서 “곧 전열기 30~40대 설치하는 공사에 들어가고 자동차 104대를 수용할 주차장 공사도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장사가 안 된다’는 상인들의 불만에 대해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상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손톱과 머리카락 등 매무새를 깨끗이 하고 친절도를 높이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버스·지하철 광고부터 개장행사, 한가위행사, 팸플릿 제작 등 안한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