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망원렌즈가 긴 칼 일까.
칼은 베는 물건인데 바로 망원렌즈가 세상을 벨 수 있고 사람(사진기자)을 세게 벨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크고 무거운 렌즈를 어깨에 매고 가는 사진기자들을 얼핏 보면 어디 유람가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딴판일 데가 많다. 외국의 파파라치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는 사진들 대부분이 다 초망원렌즈 덕에 얻어진 사진인 걸 보면 사진기자에게 망원렌즈는 자신을 지키주고 먹여살려 주는 '유용한 칼'이기도 하다.
사진기자는 누구나 칼을 가지고 있다. 와이드 렌즈가 단검이라면 300mm이상의 렌즈는 장검에 속한다. 24-70mm렌즈와 70-200mm렌즈는 허리에 차는 칼 정도 일 것이다. 어떤 기자는 단검을 잘쓰고 어떤 기자는 장검을 잘쓴다. 대개 스포츠를 전문으로하는 스포츠지 사진기자들은 망원렌즈를 쓰는데 능하다. 축구를 전문으로 찍는 기자들에게 기본렌즈는 300mm이지만 400mm,500mm렌즈를 손오공이 여의봉 다루듯 척척 다룬다. 300mm의 화각은 표준렌즈 화각의 1/6정도다. mm수가 늘어날 수록 화각은 작아지는데 500mm렌즈로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잡아낸 사진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이나 중요 시합 말고는 장검의 경연장은 드물다. 경연장이라 칭하는 것은 뉴스 밸류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전의 결과가 당시 한국의 톱 뉴스였고 얼마전 한국과 북한의 월드컵 예선전의 결과도 마찬가지 였다. 검객들이 장검을 들고 일합을 겨루는 기회가 적기에 스포츠 기자들은 억울하다. 실력을 알아줄 관중이 적기 때문이다. 일간지 기자들의 경우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뉴스는 파도가 밀려오듯 온다.
단검에의한 승부가 나기도 하고 아주 간혹 장검에의해 승부가 난다. 장검은 쓸 기회가 적기에 장검을 사용한 사진이 만약 특종일 경우 그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모든 뉴스 미디어가 장검에 의해 베어진 모습을 보여주기에 바쁘다.
필자의 기억에 최근 십 수년간 장검이 파문을 일으킨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다 세상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세상은 그 장검을 휘둘렀던 검객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 장검에 맞았던 사진기자들과 다른 언론사들은 아프디 아팠을 것이다.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기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검찰에 소환됐던 전두환 노무현 전대통령이 장검에 쓰러졌고 위장막을 보란 듯 벗겨낸 북한의 해안포 역시 장검의 제물이됐다.
사진제공=중앙일보 김경빈 기자
세상사가 궁금했던 것일까. 서울 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두환씨가 구속된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란혐의로 기소된 날인 1월23일(1996년) 오전 9시 12분 세수를 한 뒤 환자복차림으로 검게 선팅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全씨의 표정에는 잔뜩 호기심이 어려있다. -중앙일보 1996년 1월24일자 1면 사진 설명.
내란 혐으로 기소 된 전두환 전대통령의 모습이 구속 후 처음 세상에 알려졌던 사진이다. 이 사진은 현 중앙일보 사진부 김경빈 차장이 무려 6일동안 잠복하며 찍었던 사진이다. 김차장은 130m-140m 정도 떨어진 7층 건물에서 니콘 1700mm렌즈를 이용해 전두환씨를 3컷 찍었다. 그가 사용한 렌즈는 지금도 한국에는 3대 밖에 없는 초망원렌즈로 길이만 대략 1m20cm에 남자 성인이 혼자 들지 못하는 '무거운 기계'라 해도 될 만한 덩치를 가졌다.
김차장의 사진에 세상은 놀랐다. 합천에서 서울구치소로 직행한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전두환씨의 모습이 김차장의 사진에의해 알려졌기 때문. 이 사진은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주는 보도사진 대상을 수상했다.
김차장은 이 사진을 찍은 후 제일 먼저 확인했던 것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씨의 병실을 조준했던 타사 사진기자들의 촬영 여부였다. 큰 칼을 제대로 휘둘렀기에 궁금했을 것이다. 또 두 사람이 휘두른 큰 칼은 가치가 없다는 걸 너무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검찰조사까지 받겠다고 밝힌 가운데 9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사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심 깊은 표정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4월9일자 발행 캡션.
이 사진 역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진이다. 연합뉴스 김현태 기자의 역작으로 4월9일 10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 사진을 1면에 올렸을 뿐 아니라 방송들도 김기자의 사진을 시간 날 때 마다 화면에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제 검찰 조사를 받을지 모르는 마당에 노전대통령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것인가는 모든 미디어의 관심사였다.
김기자의 특종은 현지 주재기자의 조언과 행운이 따른 결과였다. 노전 대통령이 아침에 산책을 한다는 사실을 주재기자로부터 들어 봉화산에 올랐던 것은 협업의 산물이었고 다른 기자들이 먼저 산에 진을 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기자만이 이 사진을 찍은 것은 김기자의 일진이 대길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장검이지만 그다지 큰 장검에 베이지 않았다. 김기자는 300mm렌즈로 노전대통령 부부를 찍었는데 촬영 거리가 무려 250m나 되었다. 그 거리라면 1000mm이상의 렌즈가 있어야 하나 훨씬 짧은 300mm렌즈로 촬영에 성공한 걸 보면 핀트를 제대로 맞췄기 때문이다. 기본기의 충실은 사진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김기자가 웅변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취재 중인 많은 사진기자들은 이 사진으로 크게 당했다. 그들은 만회를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들면서 반격을 노려 비슷한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했지만 처음 만큼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서해 대연평도에서 직선 거리로 12km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부포리 일대의 군 관련 시설이 동아일보 카메라에 처음으로 잡혔다. 왼쪽 점선 안의 검은 사각형 점은 북한국이 방사포와 해안포 등을 배치한 동굴 진지이고 그 옆에는 군 막사로 보이는 시설과 경비정이 있다. -동아일보 2009년 2월 16일자 사진 설명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의 특종 사진이다. 전기자는 캐논 500mm의 렌즈에 1.4X,2X의 컨버터(배율을 높여주는 어댑터)를 연달아 부착해 이 사진을 찍었다. 칼이 작자 더 크게 칼을 만들어 보기 좋게 휘둘러 대물을 베었던 것이다.
북한군의 해안포는 보통 위장막에 가려져 있는데 대남 관계의 긴장을 높이던 북한이 NLL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연평도 부근의 섬에서 위장막을 보란 듯이 벗겨냈는데 그게 전영한씨가 휘두른 칼에 걸린 것이다. 12km면 30리인데 1400mm렌즈로 북한의 해안포 기지를 찾아낸 전기자의 끈기와 좋은 눈이 놀랍기만 하다. 만약 필자가 저 현장을 갔었다면 벗겨진 해안포 위장막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사진이 보도 된 후 연평도는 국내외 보도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각기 비슷한 사진을 찍어 보도했지만 구문에 불과했다.
사진을 통해 사진기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매일 찍는 사진중에는 특종 사진도 있고 낙종 사진도 있으며 평범한 사진도 있고 잘 찍은 사진도 있다. 존재감의 큰 부각은 특종사진일 때가 많다. 그것이 세상을 뒤 흔들고 기자들의 마음에 울림으로 남을 때 사진기자들이 세상에 그렸던 모자이크 무늬는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큰 무늬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무늬를 그린 사람이 큰 무늬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은 사진기자들이 추는 검무에 놀라고 기뻐하고 울컥하며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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