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0-12-02 오후 08:18:38 기사수정 : 2010-12-02 오후 08: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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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청와대가 보여준 행태는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어렵긴 하지만, 틀렸다고 생각진 않는다. 청와대가 이를 꾸준히 밀고 나갔다면 찬반논란은 일었을지언정 요즘처럼 조롱거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몇 차례나 말을 바꾸고, 뜬금없이 ‘이 모든 게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하다가, 그다음엔 오로지 초강경으로만 일관한다. 사람들은 더 의구심을 갖게 됐다. ‘대북정책에 대해 고민을 하긴 했던가’, ‘청와대 시스템이 저 정도로 엉성한가’, ‘앞으로 청와대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고. ‘정직하고 무능하면 쓸모가 없고, 정직하지 않고 유능하면 위험하다’ 했는데, 이 정부는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공군 점퍼를 입고 나오는 대통령, 보온병을 포탄으로 안 여당 대표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고 우스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 우리 사회에서 군복무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정당한 이유에 의한 군면제자들에 대한 또다른 차별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 당일, 새벽 3시50분에 연락을 받고 곧바로 새벽 성명을 낼 것을 지시하고,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의 대응기조야말로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쪽에 충실했다. 문민사회에선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이 군을 통솔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런 차원에서 군대를 가지 않은 대통령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연평도 포격 이후, 청와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대통령이 군대를 안 갔다 왔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단 전임 정부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한 채 원점에서 시작해 준비가 부족한 것이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정부는 연속성이 있어야 발전이 있는 법인데, 이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버리기에 급급했다. 정권교체 역사가 오랜 미국에선 정권이 변해 정책 방향이 바뀌더라도 하루아침에 모든 걸 뒤엎진 않는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지만, 당장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키진 않았다. 이전 정부가 대북정책을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바꾸려 한 이유가 비단 ‘이념’ 때문만은 아닐진대, 이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바꾸더라도 서서히 바꾸는 게 합리적이었다.
또 ‘매뉴얼 사회’로 일컬어지는 미국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규범을 만들어 전한다. 대통령이 자신들의 측근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들어오는 엽관제가 전통인 미국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 요직의 얼굴들도 한꺼번에 바뀐다. 이들 중 일부는 공직 경험이 없는 이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맡은 일이 삐거덕거리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 대한 학습이 부족한 것 외에도 이 정부의 또다른 흠결은 맹목적 ‘강경파’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명박 청와대를 출입한 경험에 비춰볼 때, 청와대에는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외곽으로 밀리거나, 파편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이명박 정부는 ‘와이에스’나 ‘디제이’ 시절의 동지애나 노무현 정부의 이념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다. 이 정부 초기의 ‘벤처취업 정부’라는 지적은 결과를 놓고 볼 때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지도자의 생각을 그대로 좇는’ 사람이 혜택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강경’해야 한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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