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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운하네 짐을 맏기랴?(경향닷컴)

말글 2008. 1. 13. 12:34

누가 이 운하에 짐을 맡기랴

서울에서 부산까지 4~5일 걸리고 화물을 옮겨실어야 하는 경부운하, 물류 경쟁력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은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우리나라 물동량의 80%가 운하를 이용하게 될 것이고, 국가 물류비를 연 4조5천억원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부운하는 과연 물류대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까? 현재 비용편익비율(B/C) 지표를 동원해 경부운하의 경제성을 따진 연구보고서가 몇 개 있으나 순수한 물류효과만 추산한 연구는 없다. 이 당선인 쪽이 관광효과와 건설투자·일자리 창출 효과 등도 내세우지만 ‘물류효과’가 경부운하 사업의 추진 여부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 경부운하는 도로·철도에 비해 화물운송 경쟁력이 있을까? 독일 RMB운하의 한 갑문으로 바지선이 들어오고 있다.

왜 화물주들은 도로운송에 몰릴까

 

물류효과는 도로·철도·연안해운 등 기존 물류수단에서 담당해왔던 화물 수송량의 어느 정도를 경부운하가 분담하게 될 것인지, 또 경부운하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의 물동량이 향후에 크게 증가할 것인지 등에 달려 있다. 물론 경부운하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류효과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경부운하의 규모와 형태 등에 따라 물류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헌구 인하대 교수(물류학)는 “운하가 건설된다면 얼마나 넓고 깊게 만들어지느냐, 그래서 얼마나 큰 배가 운항하게 되는지가 물류효과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수 있다”며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배가 클수록 화물운임 단가도 크게 낮아져 경제성이 생긴다. 물론 그렇게 큰 운하를 만들려면 투자비도 더 많이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효과 측면에서 경부운하가 성공하려면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늘게 될 것이란 얘기다. 경부운하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배로 가는 데 4∼5일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배가 커질수록 수송 소요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

 

화물주들이 도로·철도·연안해운·내륙운하 중 어떤 것을 물류수단으로 선택할지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건 ‘시간’(신속성)과 ‘비용’ 그리고 ‘안전’(파손 우려)이다. 도로· 철도 등 다른 물류수단에 비해 경부운하는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 수송수단별 단위수송비(1t 화물을 1km 수송하는 데 소요되는 경제학적 비용)는 영업용 화물차를 이용한 도로수송비 385.7원, 항공 176.4원, 철도 54.4원, 수상 16.8원으로 도로운송이 가장 비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국토공간이 500km 내로 협소하기 때문에 도로운송이 절대우위를 갖고 있다. 도로가 막혀도 화물주들은 대부분 도로운송으로 몰리고 있다. 도로를 이용한 화물운송은 운임은 비싸지만 문전(도어투도어) 서비스가 가능하고 어디서든지 접근이 쉽다.

 

운송수단의 경제성은 수송수단 자체가 가진 특성과 네트워크망에 따라 결정된다. 철도운송이 도로운송을 못 따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도는 연결 네트워크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화물을 철도 구역까지 옮겨 실어야 한다. 2차 운송수단이 필요한 것인데, 이렇게 화물을 자꾸 옮겨싣다 보면 운송비용과 시간도 길어지고 화물 파손 우려도 커지게 마련이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철도나 운하는 운송 네트워크가 (도로에 비해) 조밀하게 짜여 있지 않아서 물류 경쟁력이 떨어진다. 도로운송에 화물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운하는 화물을 대량 수송하기 때문에 수송 단가는 크게 낮아지겠지만 수송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운송의 완결성(다른 운송수단으로 화물을 환적할 필요성이 없는 정도)이 떨어지기 때문에 물동량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도 가벼운 품목으로 바뀌어

 

운하의 경우 곳곳에 화물터미널을 지어 환적한 다음 다른 수송수단을 통해 최종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현재 부산항~인천항 간 연안운송의 경우 해상운송 시간은 28시간 정도지만 컨테이너가 물류기지에 체제하는 시간 등을 포함하면 총 3일8시간이 걸린다. (주)한진 관계자는 “포스코, 로템 등의 부정기적인 수요 외에는 연안해운 수요가 없다”며 “화물주들은 생산과 납기일을 맞춰 운송수단을 선택하는데, 철도의 경우 도로운송에 비해 운임 경쟁력이 있긴 하지만 의왕, 양산 복합화물터미널 등 여러 단계의 추가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 화주들이 도로운송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운하의 경우 수많은 갑문을 통과할 때마다 대기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질 수 있다. 반면에 도로는 화물뿐 아니라 여객 수요도 담당하기 때문에 같은 비용이라면 운하 건설보다 도로 확충의 효과가 훨씬 크다. 게다가 현재 국내 물류의 적체 현상은 부산~서울 등 장거리 지역 간 문제보다는 ‘지역 내’ 도로 문제가 훨씬 크다. 즉 경부고속도로 내부보다는 수도권과 부산의 도심 진입 구간에서 물류 정체가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굳이 운하를 새로 놓을 게 아니라 도심에 인접한 짧은 구간의 도로를 몇 개 확충하는 방식으로 물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도로·철도·운하 중에서 어떤 물류 경로를 이용할 것인지를 좌우하는 또 다른 변수는 물류 대상 품목이다. 운하를 이용해 큰 배로 대량 수송하게 되면 화물 1개당 운임 단가가 도로에 비해 훨씬 낮아지겠지만, 운하를 통해 수송될 만한 품목은 농산물과 중량화물이다. 허재완 중앙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운하가 막상 건설되면 화물주들이 화물운송 스케줄을 지금보다 더 길게 잡아 싼 비용으로 운하를 통해 수송할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나 갈수록 업체마다 상품 생산과 출고 시점을 빡빡하게 잡아 재고를 줄이고 있고, 수출 품목도 전자제품 등 가벼운 물건들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가벼운 품목들은 전체 비용에서 물류비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운임 경쟁력을 비중있게 고려해 운하를 이용할 까닭이 없다. 하헌구 교수는 “정보기술(IT) 제품 등 경박단소형 산업구조로 변화함에 따라 국내 화주들이 (운임보다) 시간을 선호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며 “도로·철도보다 운하가 화물운송에서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부운하라는 새로운 물류수단이 필요할 정도로 향후에 우리 경제의 물동량이 급증할까?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국내 물동량이 확 늘어났다는 증거도 없고,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물동량이 크게 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경부운하는 부산까지 수출 화물을 실어나른다는 게 핵심인데, 부산항의 컨테이너 처리 실적은 1997년 전체 국내물량의 95%에서 2006년에 75.4%로 낮아졌다.

 

운하의 물류효과는 운하 운영에서의 수익성 문제와 직결된다. 기술적으로 운하 건설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수익성은 매우 불투명하다. 경부운하는 BTO(민간이 투자해 시설을 건설하고 직접 운영)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GS건설 김병국 부장(토목사업부)은 “정부가 돈이 없어서 민간이 대신 5년, 10년씩 자기 돈 들여서 하는 사업이라면 시설운영 리스크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줘야 한다”며 “민간기업이 물류효과 등 경부운하 수요까지 예측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정부는 경제성뿐 아니라 정책적 판단도 고려하겠지만 민간기업은 오직 수익률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주택 건설이나 해외 플랜트 등 다른 투자사업의 수익률이 더 높다면 운하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류효과 없다면 재정에 큰 재앙

 

허재완 교수는 “단순히 운하 하나 새로 건설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화물터미널도 운하 곳곳에 만들어야 하고 운하에 접속할 도로·철도도 새로 놓아야 한다”며 “이처럼 운하는 연관 파급 분야가 엄청나기 때문에 물류수단으로서 실패할 경우 한국 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똑같은 돈을 들였을 때 물류효과 면에서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하나 더 놓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부운하 사업이 실행될 경우 당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집단·계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부운하 추진의 핵심 명분인 물류효과가 거의 없다면, 비록 일자리 창출과 관광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운하는 장기간 국가 경제와 재정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