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영어몰입교육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오마이뉴스)

말글 2008. 3. 21. 07:17

"영어몰입교육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이 대통령,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몰입교육 백지화' 선언
최경준 (235jun)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전 대전시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보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이명박

[기사보강 : 20일 오후 5시 35분]

 

한나라당이 경부운하와 함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4·9 총선 공약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 몰입교육 백지화'를 선언해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영어 몰입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며 "모든 과목을 몰입해서 영어로 한다든가, 이런 과도한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어 몰입교육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슬그머니 발을 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중 하나다.

 

영어몰입교육은 먼 훗날 얘기... 그러나 영어교육은 계속

 

이 대통령은 "지난번 인수위 때 잘못 알려졌다"며 "영어로 몰입교육을 한다…, 모든 학교들이 이렇게 돼서, 우리 아이들을 영어 과외 더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적절한 학년에서 영어시간을 좀 더 하자, 일주일 한 시간 두 시간 하던 것을 좀 더 늘려서, 조금 더  효과적으로 수업을 하자…(는 것)"이라며 "그거 때문에 학부모들이 자칫 오해해서, 미리 영어 과외 더 해야 한다는, 심화됐다는 이야기 듣고 있는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분명히 정책을 확정지어서 발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영어몰입교육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30조원 가량의 사교육비 가운데 15조원 가까운 것이 영어 과외에 들어간다"며 "영어라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경쟁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영어수준이 상당히 차이가 많다"며 "영어공부는 과외받지 않더라도, 학교가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라도 편안한, 재밌는 영어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안을 만들어서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교육부도 업무보고에서 초등 3~6학년 영어수업시간을 확대하고 영어 친화적 교육환경 구축을 위해 영어전용교사제 도입, EBS 영어전용방송 공공채널화 등의 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특히 교육부는 업무보고에 영어 몰입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학교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어·국사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더니...

 

   
대선후보 시절인 2007년 10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노원구 하계동 중평 초등학교를 방문, 방과후 교실 영어 프로그램장에 들러 학생들에게 '사랑합니다'란 제스처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영어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영어 몰입교육 백지화'를 천명한 것은 4·9 총선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및 대통령직 인수위가 추진한 정책을 총선 공약에서 배제한 것도 국민적 반발 여론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먼 훗날의 얘기"로 치부한 영어 몰입교육 방안은 불과 2개월 전에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반을 뒤흔들만큼의 핵폭풍을 몰고 왔다. 특히 핵폭풍의 진원지가 다름아닌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창해, 이미 영어 몰입교육 추진을 위한 불씨를 만들었다. 불씨를 이어받아 키운 사람은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로 상징되는 이경숙 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 22일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과목에도 영어수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영어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의 뒤에는 새 정부 교육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이주호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 있었다.

 

이주호 수석은 한 발 더 나아가 사흘 뒤인 25일, "세계사나 과학에 대해서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면서 "몰입교육의 경우 일시에 실시하기는 힘드니 농어촌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일주일 뒤, 이 대통령은 "과거 관습이나 자기 이해를 따지고 해서 반대와 저항은 어디나 있다"면서 "이들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해 당초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경숙 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이 나왔던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 공청회 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서다. "인수위가 방향은 잘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 중 일부다.

 

"요즘 신문을 보니깐, 대형 교통사고가 났는데, 대부분 역주행을 하더라. 역주행을 하면 무슨 일이든 사고가 나게 돼 있다. 왜 요즘 역주행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저는 현재 변화하는 모든 것이 신속하게 변화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항상 반대가 있다. 반대 없이 변화하는 것은 없다. 과거 관습이나 자기 이해를 따지고 해서 반대는 어디든 있다. 이것을 설득하고 동참시켜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어쩔 수 없지만 이해가 부족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열심히 설득할 책무와 의무가 있다."

 

물론 당시 인수위는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자, "영어교과 이외에 다른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이른바 '몰입교육'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나 여전히 영어 몰입교육은 이명박 정부의 추진 대상 과제였던 셈이다. 당시 인수위는 오는 2010년부터 전국 고교에서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총선을 앞두고 '영어 몰입교육 백지화' 방침을 선언했지만, 새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로 남아있다. 이 대통령 또한 자신의 평소 소신을 정치적 이해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2008.03.20 16:54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