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미국운하를 가다 ③] "운하 4년 만에 완공?

말글 2008. 3. 22. 19:08

컨테이너선 하나 없는 세인트루이스
300명 정원에 15명 탄 유람선 한척뿐
[미국운하를 가다 ③] "운하 4년 만에 완공? 한국은 가능할지 몰라도 미국은 불가능"
김병기 (minifat)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는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생태지평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해 운하를 현지조사한 뒤 이를 10여 차례에 걸쳐 기획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는 '제1 공약' 경부운하를 내세워 물류혁명을 이루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취재 결과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경부운하의 허실을 집중적으로 취재해온 김병기 기자를 미국 현지에 파견, '생태지평' 전문가와 함께 미국 주요 운하들의 현재 상황을 조명해보는 2차 해외탐사보도 '미국운하를 가다'를 기획했다. <편집자주>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인 게이트웨이 아치.
ⓒ 김병기
세인트루이스

 

이명박 대통령은 경부운하에 컨테이너선을 띄워 물류혁명을 이루겠다고 해왔다. 하지만 미국 3대 내항중의 하나인 세인트루이스의 미시시피강에는 단 한 척의 컨테이너선도 다니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부운하에 유람선을 띄우면 관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미시시피강에는 단 한 척의 유람선만 떠다녔다. 정원 300여 명인 배에 승객 15명 만을 실은 채.

 

이명박 대통령은 553km의 경부운하 구간 곳곳에 내항이 만들어지면 지역경제에 생기가 돌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미시시피 강변 곳곳에는 창문이 다 뜯긴 채 볼썽사납게 서있는 빌딩과 창고가 즐비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미시시피강과 미조리강의 합수 지점인 세인트루이스 내항. 운하의 도시로 성장해 미국 최대의 중심도시로 부상했다가 도로와 기차에 밀려 쇠락해가는 세인트루이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이명박 운하'의 거짓말이었다. 

 

   
멜빈 프라이스 갑문(Melvin Price Locks and Dam)
ⓒ 김병기
멜빈프라이스 갑문
   
원유를 실은 바지선.
ⓒ 김병기
경부운하

 

지난 7일,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과 기자는 미 육군 공병단 세인트루이스 지부로부터 아주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 이날 오전 공병단 생태복구팀 브라이언 존슨(Brian L Johnson)씨에 이끌려 처음으로 간 곳은 멜빈 프라이스 갑문(Melvin Price Locks and Dam). 배가 6m 수직 상승해 미시시피강 상류로 이동하는 이 갑문에는 우리 일행을 위해 띄운 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당초 미 공병단측이 "보트를 띄우겠다"고 전해왔을 때만해도 조그마한 고무보트 정도를 떠올렸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눈앞에 있는 것은 음파를 발사해 미시시피강의 수심을 재고, 바닥에 장애물이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는 이른바 '탐침선'.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 배를 타고 우리 일행은 2시간여 동안 미시시피강을 따라 하류쪽으로 내려가면서 취재를 했고, 선상 인터뷰를 병행했다.

 

시속 9km로 나가는 '거북이 바지선'

 
물살은 빨랐다. 눈 녹은 물이 상류쪽으로 쏟아져 들어와 수문을 개방한 탓이다. 여기저기서 밑둥째 뽑힌 나무들과 나뭇가지가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온통 흙탕물이었다. 눈이 녹으면서 상류에서 토사가 유입된 탓도 있겠지만 강바닥의 흙을 헤집는 배의 스크류도 흙탕물을 만드는 데 한몫 하고 있었다. 이튿날 만난 씨에라클럽 세인트루이스 지부의 한 관계자는 "배가 지나다니면서 스크류로 흙탕물을 만들기 때문에 정수 비용만 더 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운하에 배를 띄우면 스크류가 돌아가 물 속에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수질이 개선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심 표시계
ⓒ 김병기
경부운하

배는 우측통행을 했다. 중앙선이라고 할 수 있는 표식은 군데군데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낸 녹색 부표. 중앙선을 기준으로 90여m 떨어진 양쪽 지점에 빨간색 부표가 떠있다. 그 바깥쪽은 뱃길이 아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배는 시속 12마일(시속 19km)로 이동했다. 물길을 따라가는 항로여서 비교적 빠른 속도라고 한다. 10여분 정도 흘렀을까? 멀리서 바지선 한 척이 다가왔다.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탱크가 16개 실린 것으로 보아서 석유를 실어나르는 바지선이다. 육안으로 보아도 우리 일행의 배보다는 느려보였다.  

 

"우리 배는 빠른 겁니다. 이곳을 운항하는 바지선의 속도는 배의 종류와 물량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보통 6~7마일(시속 9~11km)입니다."

 

테리 베퀘트(Terry J. Bequette) 선장의 말이다. 순간 경부운하에서 최대 속도 32km까지 운항할 수 있다는 찬성론자들의 발언이 씁쓸하게 떠올랐다. 수심을 확인하는 모니터에는 56.3피트(16m)라는 숫자가 떴다. 경부운하 계획 수심인 6~9m보다 훨씬 깊다. 경부운하보다 더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알았다.

 

"배는 엔진의 성능에 따라 더 빨리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선이 있습니다. 가령 10마일 속도로 달린다면 1마일의 제동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의역하면 배가 곡선 구간과 교량, 그리고 갑문을 통과하려면 일정 정도의 제동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속력을 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즉, 속력을 내면 낼수록 그만큼 속도를 줄여야 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하지만 배의 속도를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였다하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 그들은 아마 자동차의 성능좋은 브레이크가 배에도 장착된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갑문 통과 시간은 1시간...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이상한 셈법

 

   
'Locks & Dam 27'. 갑문이 열리고 있다.
ⓒ 김병기
경부운하

출발한 지 40여 분 정도 흘렀다. 우리 일행은 '체인 오브 락 리치'(Chain of Rock Reach)라는 이름의 운하로 진입했다. 폭 90m에 깊이 3m로 설계됐다는데, 수량이 많아져서 더 깊어 보였다. 이곳은 구비진 미시시피 강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9마일 정도 길이의 작은 운하다. 미시시피강 바닥에 돌이 많기 때문에 매번 준설하기가 어려워 이 운하를 만들었단다.

 

우리 일행은 또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았다. 1m정도 수직 하강할 수 있는 갑문인 '락스앤댐(Locks & Dam) 27'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시동을 끈 채 갑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배는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곧바로 앞쪽의 갑문이 서서히 열리고, 우리 일행을 태운 배는 바깥쪽으로 유유히 빠져 나갔다. 갑문을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30여 분.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갑문 통과시간 20분보다 조금 길었다.

 

10여 분 차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주장 중에도 믿을만한 게 있는 것일까?'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테리 베퀘트 선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지선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갑문을 통과하는 시간은 보통 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한 배가 갑문을 통과하는 동안 맞은 편에서 오는 배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갑문 통과 시간이 20분이라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셈법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교각 사이 간격은 195m... 우리나라 교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배를 타고 미시시피강을 2시간 남짓 내려가면서 '이명박 운하'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 일행을 태운 배가 지나쳐 온 교량은 4~5개 정도. 한강을 가로지르는 교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각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베퀘트 선장에게 교각 사이의 간격(경간장)을 물었다. 그는 우리 일행에게 다음과 같은 '체스터 하이웨이 브리지'(Chester Highway Bridge)의 도면을 보여줬다.

 

   
미 육군 공병단 세인트루이스 지부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표.
ⓒ 김병기
경부운하

650피트. 미터로 환산하면 195m다. 하지만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17m폭의 5000톤급 배가 통과하려면 배폭의 1.5배인 23m만 확보하면 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 상황을 좀 더 이야기해보자. 

 

경부운하 통과 구간에 설치된 교량은 총 115개. 이중 경간장이 가장 넓은축에 속하는 가양대교가 140m이다. 반포대교는 24m, 양화대교는 35m이다.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선진국의 운하' 기준으로 재건축 교량을 계산하면 대체 몇 개의 교량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교량 14개만 교체하면 된다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1시간에 1대꼴로 바지선 운행...컨테이너선은 없다

 

우리 일행은 이날 2시간여 동안 2개의 바지선과 마주쳤다. 1시간에 1대꼴. 미국의 3대 내항이라는 화려한 수식과 현실은 이렇게 달랐다. 아니, 운하가 번성했던 시대와 철도-도로에 밀려 쇠락해가는 현재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그런데 왜 컨테이너선은 보이지 않을까? 강변에 정박한 배들이 온통 바지선인 것을 유심히 지켜본 박 부소장이 물었다.

 

"여긴 컨테이너선은 다니지 않습니다. 바지선만 다녀요. 컨테이너선은 뉴올리언즈에서 멤피스까지만 다닙니다."

 

브라이언 존슨씨의 말이었다. 박 부소장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 물었다. 왜 컨테이너선이 없는건가?

 

"컨테이너선은 빨리 운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곡물과 석탄 등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주장과 전혀 달랐다. 좀 더 부연설명하면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0월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의 힐폴슈타인 갑문에 서서 제1공약으로 '경부운하'를 발표하면서 이를 통해 물류 혁명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운하 찬성론자들이 제시한 물류혁명의 내용은 553km의 경부운하에 석탄과 석유, 유연탄 등을 실어나를 바지선을 띄워 도로 물동량을 분산하겠다는 것.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석탄과 석유 등 벌크화물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경부운하와는 반대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보도하자 바지선이란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 뒤 이명박 운하 찬성론자들이 주장한 것은 부산항에 내리는 컨테이너 물류를 운하를 통해 운송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시시피강변에 정박해 있는 바지선
ⓒ 김병기
경부운하

 

경부운하 4년 만에 완공? "미국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브라이언 존슨씨의 말은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말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보여준다. 운하 반대론자들이 해왔던 주장, 즉 컨테이너를 운하로 운송할 화주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운하를 관리하기에 운하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 상태에서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공병단 생태복구팀 브라이언 존슨(Brian L Johnson)씨
ⓒ 김병기
경부운하

-운하로 인한 환경피해는 없는가.

"(운하가 만들어졌던) 1953년에는 환경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법이 있다. 만약에 지금 운하를 만든다면 수질 오염과 습지 파괴, 물고기 등의 생태 문제 등을 검토해야 한다. 가령 습지에 손상이 간다면 그에 대처할만한 습지를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럼 현재도 운하를 만들 수 있나.

"가능하다. 하지만 운하는 습지를 막아서 만든 것이다. 최소한 1평의 습지를 없애면 2평의 습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훨씬 힘들다. 1950년 이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 전에는 운하를 마구 만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운하가 있나.

"물길은 이미 정착이 되어 있다. 지금은 없는 것같다. 뉴올리언즈에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운하가 여전히 경제적이라고 판단하나. 트럭과 기차 운송수단에 비해 어떤가.

"요즘은 공병대가 사업을 하려면 1불을 투입해 3불 이상의 수입이 들어와야 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승인이 안된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강 주변에 유물과 유적이 있다. 여긴 어떠한가.

"인디언 유적지가 많다. 운하를 판다면 거기를 피해가야 한다."

 

-유적지는 어떻게 조사하나.

"공병대와 고고학자들, 그리고 주에서 조사한다. 최소한 1~2년은 걸린다. 아주 철저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553km의 운하를 4년만에 완공한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나.

"(웃음) 한국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불가능하다. 많은 그룹들과의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미 공병단이 운하 관리? "우리의 중요 임무는 습지 복원이다"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흙탕물이 일고 있다.
ⓒ 김병기
경부운하
   
우리 일행을 태운 미 공병단의 배.
ⓒ 김병기
경부운하

우리 일행을 태운 배는 습지를 복원하는 현장도 지나쳤다. 존슨씨는 "이 사업이 우리의 핵심사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7만2천 에이커 규모다.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습지 복원 비용만 대략 200~500만 달러라고 한다.

 

그는 "지금 공병단의 중요 임부가 습지 복원 사업"이라면서 "그 전에는 환경 문제는 고려사항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경제성과 대등한 비중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운하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었고, 운하 관리보다 그를 복원하는 게 미 공병단의 주요 임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운하'를 본받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친환경 운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운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컨테이너선을 운반해 물류혁명을 이루고 있는 '장밋빛 운하'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배 위에서 본 거대한 다리와 철교에는 대형 화물을 실은 트럭과 기차가 쉴새 없이 들락거렸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려 나뭇가지가 둥둥 떠다니는 흙탕물을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심난해졌다.

 

(세인트루이스 후속편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2008.03.21 14:57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