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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녕대군. 드라마 <대왕세종>. |
ⓒ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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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도 대단하고 오지랖도 넓은 충녕
그동안 <대왕세종>을 보면서 충녕대군의 이미지에 혼란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종래의 일반적 표현인 세종대왕을 '대왕세종'으로 바꾼 데다가 드라마 속 충녕대군이 숨은 야심도 대단하고 오지랖도 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이 같은 시각을 대변하듯, 그동안 이 드라마에서는 충녕대군의 본색을 질타하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왕세종> 제18회(3월 2일자)에서 상왕 정종이 내뱉은 말이었다.
초궁장과의 연애행각이 탄로나 위기에 처한 형(양녕대군)을 구하려고 충녕이 정종에게 설득작업을 벌이자, 그런 충녕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정종이 쏘아붙인 한마디였다.
"너는 참으로 영악한 놈이구나!"
너한테 손해될 일도 아닌데 네가 뭐 하러 이렇게 나서느냐는 일침이었다. 부모님과 큰형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들 자신의 숨은 야심을 한편으로는 일깨워주고 한편으로는 경계하는데도, 충녕은 그에 아랑곳없이 언제나 '오브 더 피플'(백성의), '바이 더 피플'(백성에 의한), '포 더 피플'(백성을 위한)을 입에 달고 산다.
자기는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 그렇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말 하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있을까? 그런 그를 지켜보면서 장영실도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충녕에게 한마디 던졌다.
"앞으로는 백성을 끔찍이 위하는 척 하지 마세요."(제28회)
도대체 평소에 어떻게 처신을 했기에, 좋은 일은 혼자 다 하면서도 남들한테서 항상 진심을 의심받는 걸까? 물론 드라마 속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데 충녕 때문에 더 복잡하네...
이러한 충녕대군의 이미지 때문에, 그동안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중무장한 고려황실 잔존세력, 반군에 가담한 장영실 등등 기존의 통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획기적 장치들 때문에 안 그래도 복잡한 이 드라마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이 바로 충녕이란 존재였다.
'세종대왕이 정말로 저랬을까?'
'하긴 저럴 수도 있지.'
'드라마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저런 세종대왕을 과연 존경할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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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녕의 뒷모습. 서울시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의 뒷모습이다. <대왕세종>에서는 충녕의 뒷모습(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었다.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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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4월 6일에 방영된 제28부를 계기로 충녕의 이미지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충녕의 이미지가 명확해진 게 아니라, 충녕의 이미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명확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충녕의 실체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하의 글에서는 그 같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로 한다.
드라마 대본이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방영된 내용을 기준으로 할 때에 <대왕세종> 작가의 의도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대왕세종> 작가는 충녕의 부정적 측면(정치적 야심, 주제넘음 등등)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제28부에서 제시했다. 그 이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충녕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최초의 조선 군주'라는 점이다.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은 최초의 조선 군주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왕세종> 제27부(4월 5일자) 말미에서는 고려황실 잔존세력 처형장과 '망나니 충녕'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날 충녕의 이미지는 왕자나 학자가 아니라 분명히 '검객'이었다.
'충녕이 부왕의 명령대로 정말로 반군 책사 전판석의 목을 벨 수 있을까?' 그런 시청자들의 의문을 대신하듯이 드라마 속 등장 인물들이 한마디씩 했다. "목을 벨 것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별 수 없는 칼잡이의 아들이지."
그렇게 27부가 막을 내리고 28부의 막이 올랐다. 시청자들의 주목을 한껏 집중시킨 상황. 칼을 높이 쳐든 충녕.
칼은 결국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우리에겐 이 자를 처형할 자격이 없습니다!" 칼과 피로 일어선 조선왕조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고려황실 잔존세력을 처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저는 왕자를 포기하겠습니다!" 꼭 80년대 운동권 대학생 같은 충녕 왕자님이었다.
그러고 나서 충녕은 북삼도(평안도·함경도·황해도)로 유배를 떠났다. 손에 피를 묻히면서까지 대권에 좀 더 접근하기보다는 대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결코 백성의 피를 묻히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동안 충녕에게 냉소적이었던 경녕군이 한마디 했다. 그대에 대한 오해를 거두었다고 말이다.
이 장면은 충녕대군에 대한 <대왕세종> 작가의 평가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비록 형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에 대한 욕심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있었지만, 충녕은 백성을 끔찍이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결코 태조·정종·태종처럼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에 오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태평성대를 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평가 말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최초의 군주 세종대왕. 그래서 그는 정통성 있는 군주라고 하는 <대왕세종>의 관점이 드러난 또 다른 대목은 세자에 대한 황희의 충언이었다. 제28부에서 황희는 세자에게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최초의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간언했다.
이 말은 형식적으로는 세자에 대한 말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충녕에 대한 말이었다. '정통성 있는 군주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군주'라는 작가의 관점을 담은 이 말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등극한 최초의 군주는 충녕이었으므로 결국에는 충녕에 대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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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환 그룹은 결코 충녕의 손에 의해 진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녕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대왕세종>. |
ⓒ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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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세종>의 이 같은 극적 장치는 드라마 속 충녕의 등극이 임박한 상황에서 그의 이미지를 메이킹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혼란스러운 충녕의 이미지를 정리하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최초의 조선 군주'로 세종대왕의 이미지를 압축하기 위한 의도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야심적이기는 해도 오로지 백성을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군주들과 달리 결코 피를 묻히지 않은 '정통성 1호 군주' 세종대왕의 이미지가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더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28부의 극적 장치는 그 같은 '대권 행보'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충녕은 조선왕조의 원죄와 무관한가?
이와 관련하여 고려황실 잔존세력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일 아침밥'은 조선왕궁에서 먹기 위해 비밀통로를 통해 경복궁에 침투하는 고려황실 잔존세력. 이방원에 의해 진압될 것이 너무나 뻔한 그들의 운명.
이런 스토리는 고려황실 잔존세력이 완전 소멸되어 충녕이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한 드라마 작가의 '배려'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고려황실 잔존세력은 충녕에게 '장애물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폭의 길을 떠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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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를 손에 묻히지 않은 ‘정통성 1호’. <대왕세종>에서 앞으로 본격화될 세종대왕의 이미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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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대왕세종>이 시청자들에게 대답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충녕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하여 그가 조선왕조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충녕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세운 게 아니라 '칼잡이' 이성계와 이방원의 나라를 계승한 것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왕세종> 제28부에서 전판석이 처형장에서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충녕의 '부담'을 덜어주긴 했지만, 고려황실 잔존세력을 포함해서 관련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한 주인공은 충녕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드라마 속의 충녕은 그런 아버지의 나라를 계승하게 된다.
자신이 직접 피를 묻히지 않은 사람은 왕조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대왕세종>은 시청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자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