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투기세력 "한국 환율성(城)은 내 먹잇감(?)"(머니투데이)
외환당국 "만만히 보지 마! 매운 맛을 보여주마"
-베일에 싸인 환투기세력, 그들의 정체는
-방어능력이 약해진 틈을 이용
-수법: 협공, 다단계 차익실현 등 다양해져
외환당국과 환투기세력이 최근 '한국 환율성(城)'(서울외환시장)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초기 탐색전을 펼친 끝에 기어이 전투에 돌입했다. 외환당국은 적의 예봉을 효과적으로 분쇄하는 '초강신공(超降神功)'을, 환투기세력은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는 '만용둔갑술(萬容遁甲術)'을 펼치고 있다.
2기 경제팀은 초반 환투기세력의 선공에 눌려 우왕좌왕하는 듯 했지만, 이내 전열을 재정비했다. 환투기세력은 예상보다 강력한 당국의 의지에 일순 당황한 모습이다. 오히려 외환당국의 어눌함이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략'일 수도 있다며 후회하고 있다.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고, 그만큼 외환당국의 반격이 매섭다는 얘기다.
양측의 전투 때문에 원/달러 환율의 변동 폭이 더욱 커졌다. 6일 환율은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했다. 외환당국의 개입, 수출업체 네고물량이 환투기세력의 공격을 어렵게 물리친 하루였다.
◇환투기세력의 정체는= 환율성(城)을 틈날 때마다 공격하는 환투기세력의 정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이들은 일시에 몰려들어 먹잇감을 실컷 유린한 뒤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환투기세력은 주로 역외세력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홍콩 뉴욕 등 한국성의 바깥에 마련된 외환시장에서 활약하는 무리들(법인)이다. 역외 선물환(NDF)시장은 차액만 결제하면 되는 선물시장이어서 투기거래의 좋은 활동처가 된다. 주식선물시장처럼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 거액의 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지금처럼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뒤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을 이용하면 효과는 극대화된다.
역외세력에는 거액의 '헤지펀드'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헤지펀드는 운영특성상 한꺼번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강력한 헤지펀드들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지만, 오히려 많은 손실을 본 만큼 한국 환율성을 공격해 재기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외환거래에는 매수·매도시 이렇다할 '꼬리표(거래 실명)'가 붙지 않는다. 환투기세력은 이를 이용해 환율성(城) 내부에 자신의 하수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성 내부의 대리인을 통해 주식이나 채권에 원화로 묻어둔 뒤 필요할 때 동원한다. 대리인을 통해 '개인 투자자'로 위장하는 방식이다.
◇환투기의 수법들= 역외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한 뒤 현물시장을 주무르는 방식을 즐겨 쓴다. 역외 시장에서 매수 주문을 쏟아내 뒤이어 열린 현물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고점에서 차익을 실현하면 된다.
일단 환율이 급등세로 확인되면 "더 오르기 전에 사둬야 한다"는 추종세력이 따라붙는다. 그럴수록 상승세와 투기세력의 힘은 동시에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평균 역외선물환거래(외환스와프 제외) 규모는 79억달러 가량으로, 전체 선물환의 하루 평균거래(95억1000만달러) 중 83.2%를 차지했다. 역외선물환이 전체 선물환 시장을, 이어 현물환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 역외세력은 특히 선물환 시장의 강자인 조선업체 등 국내 수출업체들이 최근 고전하는 틈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안팎에서 '협공'하는 방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환투기 역외세력은 국내은행이나 외은지점을 '작전비용(마진)'으로 유혹해 연합작전을 펼친다. 환율이 오르면 샀던 달러를 팔면서 시세차익을 거둔다.
환투기세력은 수익으로 거둔 원화를 다시 환투기에 동원하기도 하지만 다단계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국내 주식이나 채권으로 매수해 가격상승을 부추긴 뒤 다시 팔아치우기도 한다는 것. 이들은 이중으로 거둔 원화를 달러로 바꿔 국내를 떠나면서 다시 환율상승 압력을 높인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 언론들이 한국위기설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환투기세력에 호재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외국 언론들이 환투기세력과 결탁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왜 공격당하나= 한국 환율성(城)의 방어능력이 약해졌다. 국내 외환시장의 지난해 현물환 하루평균 거래량은 전년(185억2000만달러)에 비해 6.3% 증가한 196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에 149억7000만달러를 기록, 전분기 대비 28%나 감소했다.
이에 비해 4분기 선물환의 하루평균 거래량은 79억8000만달러로, 전분기 대비 19.2% 줄었다. 현물환 거래가 더 많이 위축되면서 선물환거래의 영향력이 커졌다.
게다가 환율城의 최대 방어무기인 외환보유액은 지속 감소했다. 지난해 1월 2618억7000만달러에서 올 2월 2015억4000만달러로 600억달러 이상이 줄었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외국계 입장에서 한국시장은 아시아 시장의 인디케이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거래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차익을 실현하기 좋은 금융시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한국 외환시장은 몇 억달러 정도면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환투기세력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승제 기자, 박상주 기자 | 2009/03/06 15:47 | 조회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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