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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지나 싶더니… 한강물 또 비상(조선)

말글 2010. 2. 10. 06:49

맑아지나 싶더니… 한강물 또 비상(조선)

입력 : 2010.02.10 03:02

10~15년만에 수질 최악
수질개선에 20조원 썼는데 '도루묵'
정수 과정 거치더라도 상수원으로 못쓸 정도…
비료살포 선진국의 10배 과도한 수도권 개발 때문

2300만 수도권 주민의 젖줄인 한강의 수질이 10~15년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단일 상수원(上水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히는 팔당호부터 하구(河口) 가까이의 행주대교까지 60여㎞ 되는 한강 본류 전체가 종이컵 반잔 정도 물에 대장균이 많게는 10만마리가 넘게 득실대는 '수질 비상'에 걸린 것이다.

9일 환경부의 '2009년 하천 수질측정 자료'에 따르면, 작년 팔당호의 연평균 수질은 COD(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 4.0ppm(피피엠ㆍ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으로, 환경부가 통계를 작성한 1994년(2.9ppm) 이후 가장 나빴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수질기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는 2005년(1.1ppm) 이후 4년째 상승하면서 1.3ppm을 기록, 약 1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1999~2005년까지 팔당호 수질개선을 위해 3조원가량을 써 BOD 수치를 0.3ppm 낮췄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만에 BOD 수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수질개선 대책이 허사가 된 셈이다.

수도권 주민들이 먹거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수돗물의 약 40%는 팔당호에서 물을 취수해 정수 처리 과정을 거쳐 공급된다. 그런데 이런 상수원의 나머지 60%를 차지하는 한강 본류의 수질 악화 상황은 팔당호보다 더 심각했다.

서울·경기도 주민들의 수돗물 원수(原水)로 공급되는 광진교 인근 한강물은 BOD·COD가 각각 2.5ppm과 5ppm으로 1994년 이래 최악이었고, 암사동 인근 한강물은 COD 4ppm으로 1998년 이래 가장 나빴다.

상수원으로 쓰이지 않는 나머지 한강물도 하류로 내려갈수록 나빠져 가양·행주대교 근처에선 COD가 7ppm을 넘겼다. 이 역시 1998년 이후 최악의 수치다. 수질관련 법령에 따르면 COD 7ppm을 초과한 4등급 물은 생활용수로는 못 쓰고 농업용수나 '고도(高度)로 정수 처리해야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한 수질 전문가는 "2000년 이후 팔당호를 비롯한 한강 수질개선에 20조원 넘는 돈을 투입해 BOD는 어느 정도 감소시켰지만 COD 등 다른 수질지표를 보면 한강물은 사실상 엉망인 상태"라며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물 속에 든 각종 병원균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강원대 김동욱 교수(환경공학)는 "현재 한강 수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장균으로 인한 오염"이라며 "이런 상태를 방치할 경우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것은 물론 수영·뱃놀이 같은 친수(親水) 활동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한해 동안 팔당호~행주대교까지 한강 11개 지점에서 검출된 대장균 수는 100mL(종이컵 반잔 정도)당 평균 3만8466개로 2000년(9277개)보다 4.2배 증가했다. 한남대교 아래의 한강물이 13만2333개로 가장 오염됐고, 상수원으로 쓰이는 성수대교 인근 뚝섬과 암사동 주변 한강물에서도 각각 9만1967개와 9893개의 대장균이 검출됐다. 현행 수질기준은 대장균이 100mL당 5000개를 넘을 경우 '등급 외'로 분류하고 있는데, 한강 11개 지점 중 팔당호·광진교를 제외한 9개 지점이 수질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상태다. 〈그래프

김동욱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 기준에 비추면 이런 물은 아예 상수원수로 써서는 안될 물"이라며 "소독·살균 같은 고도의 정수 과정을 거치더라도 병원균들이 100% 죽지도 않을뿐더러 소독 과정에서 염소가 많이 투입돼 발암물질 등이 부산물로 수돗물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강물이 이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원인으로 수도권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부의 정책 오류 등 문제를 지적한다. 고려대 윤주환 교수(환경시스템공학)는 "수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상류를 비롯한 한강 유역에 대한 개발로 음식점·호텔·휴양지 같은 위락시설과 도로 등지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강으로 흘러든 것이 COD 등을 증가시킨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 수질정책이 BOD를 낮추는 데 집중했을 뿐, COD나 대장균 같은 다른 수질지표에 대해선 사실상 손을 놔 왔다는 지적도 있다.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환경공학)는 "상수원으로 쓰이는 물은 COD·대장균 등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수질 정책은 이를 간과한 것이 사실"이라며 "상류지역의 축산 규제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보다 10배 이상 과다 투입하는 농경지 비료 살포 같은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원대 김동욱 교수는 "현재 가동되는 하수처리장은 주로 BOD 수치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하수처리장 방류수의 대장균 수질 기준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최근 "2012년부터 하수처리장 수질 기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여기에는 총인·총질소 같은 오염물질만 포함됐을 뿐 대장균이나 분원성 대장균 수질기준 강화는 제외돼 있다.

 

☞ BOD
(Biochemical Oxygen Demand·생물학적산소요구량)=미생물이 물 속의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산소의 양

☞ COD
(Chemical Oxygen Demand·화학적산소요구량)=화학물질로 물 속의 유기물질을 분해할 때 소비되는 산소의 양